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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뒷모습에 어머니가 있다

내 뒷모습에 어머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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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133*205*20mm
ISBN13 9791186545911
ISBN10 118654591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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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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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의 폭설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 아무렇게나
시커먼 재를 뒤집어쓰고
눈물로 후회하며 웅크린 채로

산 위에 들판에 나무 위에
위풍당당하게 군림하더니
지금은 길가에 무너져 내리는 눈

허공을 가르며 내릴 때에는
백색의 정복을 꿈꾸었었지
발길에 차여 버린
실패한 쿠데타

허물어진 몸과 함께 날아가 버린
허망하구나 한낮의 꿈
---「봄눈」중에서

낙엽 한 잎을 들여다본다
봄부터 가을까지의 작은 목숨
오만 가지 삶이 다 들어 있다

밝은 듯 어두운 듯
오묘하게 그려진
한 생애의 지도

벌레 먹은 구멍도
병든 부스러기도 보인다
낙엽은 말없이 떨어져 누웠지만
해마다 늘어나는 내 나이테

거울 앞에 서면
내 삶의 뒤뜰에
조용히 떨어지는 고운 추억들
---「낙엽을 들여다보며」중에서

산 위에, 하늘 아래
단정한 무덤 하나

살았을 적엔 살아갈 욕망으로
남모르는 번민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모두 지난날일 뿐

마음이 기쁠 때도 슬픔의 순간에도
흐트러짐 없이 살고 싶었을 거야
그러나 지금은 한 채의 무덤
산비탈에 돋아난 한 개의 사마귀
---「산 위에, 하늘 아래」중에서

하나가 더 많은 듯도 하고
하나가 더 모자란 듯도 하여
나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무언가 숨겨 놓은 듯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
그리움에 그리움을 더하게 한다

어디론가 금방 떠나려고 하는가
누군가와 함께 다시 찾아오듯이
두고 온 제자리로 돌아오려 하는가

세상을 절반 차지했지만
언제나 불청객 같은
채워지지 않아서 쓸쓸한 홀수

너와 나 합하여
세상 하나 다시 이루어 볼까
살 만한 낙원 하나 만들어 볼까
짝수가 아닌 홀수 그대로
---「홀수의 비밀」중에서

커다란 유리창 너머
어머니 누워 계신다
볼연지 곱게 바르신
그 모습은 우주의 평온

오래 묵힌 삼베옷 단정하게 차려입고
빨강 새 고무신 나란히 신겨 드렸다

파르스름한 옥빛 기와지붕 너머로
흰 배꽃 흩날리는 사월 어느 날
호랑나비 날갯짓에 홀리어
돌부리에 걸려 벗겨지던 고무신

아흔을 넘겼어도 아까운 삶을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놓고
봄날의 꽃, 가을 단풍 뒤로한 채
어머니 하늘로 가신다
빨강 고무신 예쁘게 신으시고
---「어머니 하늘로 가신다」중에서

엘리베이터 삼면경에 뒷모습이 보인다
구부정한 어깨의 내 어머니가 있다

아직 젊은 나이에 내가 홀로 되자
쓸어 내도 헹구어도 여전한 슬픔으로
마주하던 밥상머리 빈자리를 바라보며
나보다 더 아프던 당신
여위어 가는 볼 위에 흐르던 눈물

몽땅 업으라 해도, 마다하지 않으실
일곱 자식 어디 가고
텅 빈 거실 소파에
덩그런 쿠션으로 남으신 어머니

베란다에 밝아 오는 아침을 헤아리며
꽃 피던 시절은 언제였던가
이제는 시어 버린 묵은지 같은 내 모습
둘러보면 내 뒤에 어머니가 계신다
---「내 뒷모습에 어머니가 있다」중에서

하얀 눈 잔뜩 이고
나무들 서 있다
나무는 눈을 이기지 못해 비스듬히 누웠다

시장 난전에 토시 낀 할머니
나무처럼 굽은 허리
섰다가 앉았다가 생선을 판다

단골손님 찾아오기 어렵겠네
사나운 날씨
등허리에 쉼 없이 날아 앉는 흰 눈
날은 이미 저물어 파장할 시간이다
---「파장할 시간」중에서

마음에 쌓인 먼지를 씻어 볼까 하여
졸졸 물소리 따라 걸음을 옮겼다
순간 내 눈도 마음도 휘둥그레진다

맑디맑은 몸에 하얀 거품 뒤집어쓰고
무거운 듯 천천히 흐르고 있는 물
졸졸졸 노래가 아니라 신음이었다

지구의 병이 깊었음을
조그만 수챗구멍에서 보았다
나도 함께 죽어 가고 있음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수챗구멍 속 지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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