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구원이자 투쟁이기도 하다. 증언자는 기억을 부인하고 왜곡하는 가해자, 동조자, 방관자에게도 맞서야 한다. 1991년 8월 14일 실명을 건 첫 공개 증언 이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한일 기억 투쟁의 최전선에 서왔다. 대한민국 정부에 피해 사실을 등록한 240명 가운데 남은 생존자는 이제 16명(2020년 8월 기준). 그러나 증언자의 기억은 소멸하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는 엘리 위젤을 추모하며 그에게서 들은 잊을 수 없는 한마디를 되새겼다.
“기억은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의 신성한 의무가 되었습니다.”
--- pp.23~24
1980년 몽상가라 불리던 서구의 가수가 피살당했다. 반전과 평화를 꿈꾸는 그의 노래에서 잃어버린 봄을 위로받고 다시 상상할 힘을 얻은 동구의 청년들은 그를 추모했다. 프라하 외딴곳 휑한 벽에 그의 얼굴을 그리고 노랫말을 적었다. 당국은 좌시하지 않았다. 접근 금지. 청년들을 몰아내고 벽을 덧칠했다. 그러나 다음 날이면 또다시 자유와 저항의 메시지로 가득했다. 그렇게 반복되기를 몇 해. 낙서조차 용납하지 않는 정권에 시민들은 점차 분노했고 벽으로 운집했다. 레넌 벽은 벨벳혁명의 출발선이 되었다.
2014년과 2019년 홍콩에서는 자유의 열망을 담은 색색의 종이들이 빼곡하게 붙으면 어디든 레넌 벽이 되었다. 꿈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홍콩의 꿈은 프라하의 레넌 벽에도, 전 세계 곳곳 도심 한복판에도 흘러들었다. 함께 꿈꾸는 자들이 벽을 세운다. 꿈을 일으킨다. 이 꿈은 몽상일까?
우리가 모두 같이 꾸는 꿈은 현실이다.(존 레넌)
--- pp.79~80
실패 스토리를 공유하는 움직임이 있다. 2002년 미국 과학자들이 만든 학술지 《생물의학에서의 부정적 결과에 관한 저널Journal of Negative Results in Biomedicine》은 실패한 연구 사례를 싣는다. 자신의 실패 사실을 알리고 또 다른 실패를 방지하며 풍부한 실패 경험을 통해 새로운 연구 업적을 성취하려는 취지다. 2008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페일콘Failcon ’은 벤처 사업가들이 모여 실패담을 공유하는 행사다. 실패를 주제로 한 회의는 프랑스, 이스라엘 등 다양한 나라에서 열린다. 학계에서도 실패를 존중하려는 시도가 있다. 2010년 10월 13일 핀란드에서 시작된 ‘실패의 날’은 시간이 지나면서 핀란드 인구 4분의 1이 지켜보는 국가적 행사가 되었다. 학생, 교수, 창업자 들이 모여 서로의 실패를 축하해주는 이 행사는 핀란드 정부와 기업,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자들이 가세하면서 세계적인 운동으로 번져나갔다.
--- pp.112~113
350년 전 영국 왕립학회에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던 찰스 2세와 당대 최고 학자들이 모였다. 왕은 물고기가 죽으면 무게가 변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항 속에 살아 있는 물고기를 넣으면 무게가 변하지 않지만, 죽은 물고기를 넣으면 무게가 변한다는데 왜 그런 것이오?”라고 물었다. 확신에 찬 질문이었다. 만약 왕이 틀린 것으로 밝혀진다면 불경죄에 처할 수도 있었다.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요?” 한 젊은 학자가 제안했다. 실험 결과 살아 있는 붕어가 들어 있는 어항과 죽은 붕어가 들어 있는 어항의 무게는 같았다. 왕이 틀렸다. “기묘한 물고기로군Odd fish .” 찰스 2세는 짧게 답했다. 이후 기묘한 물고기는 ‘특이한, 남과 같지 않은 사람’을 의미했다.
왕립학회는 왕의 말이라도 실험을 통해 증명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실험을 통해 증명된 일이라면 종교, 국가, 직업 불문하고 지식으로 인정했다. 흥미로운 발견을 하면 누구나 왕립학회에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 당시 무명 과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 번개가 전기적 현상임을 발견한 미국의 인쇄공 벤저민 프랭클린, 미생물을 발견한 네덜란드의 현미경 학자 안톤 판 레이우엔훅, 전자기 유도 법칙을 발견한 영국의 제본소 수습공 마이클 패러데이 등 기묘한 물고기들의 편지가 왕립학회에 쇄도했다.
“우리의 목적은 유용한 지식을 모으고 쌓는 데 있다. 종교, 국가, 직업의 차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왕립학회의 설립 취지다. 왕립학회는 자유로운 지식의 항구가 되고자 했다.
--- pp.156~157
2011년 5월 25일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록’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등재기록물은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군과 중앙정부 등 국가기관이 생산한 자료, 군 사법기관의 수사기록·재판기록,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기록, 시민성명서, 사진·필름, 병원 치료 기록, 국회 청문회 회의록, 피해자 보상 자료, 미국 비밀해제 문서 등 4,271개의 기록 문서철과 필름 2,017개 등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록’ 등재는 불의한 국가권력에 저항한 광주 시민의 고귀한 희생정신에 대해 국제사회가 공인한 것으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민주 평화의 정신은 전 세계인이 공유하고 계승해야 할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제주 4·3사건에 대한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발생해 당시 제주도 인구의 약 10퍼센트에 해당하는 3만여 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1987년에 시작된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노력은 2000년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이 이루어졌다.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4·3사건 발생 55년 만에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을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사과했다. 해방 이후 과거사에 대한 국가 차원의 사과는 처음이었다. 정부가 2003년 10월에 발간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제주 4·3사건의 기록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4년에 4월 3일을 ‘제주 4·3사건 희생자 추념일’로 지정해 제주도민뿐 아니라 국가적 기념일이 되었다.
--- pp.201~202
역사적으로 기록은 지배권력 또는 힘을 가진 자의 것이었다. 고조선 ‘8조법’과 ‘함무라비 법전’부터 『조선왕조실록』에 이르기까지 역사 기록은 통치를 위한 기록 또는 어떻게 통치했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물론 이런 기록은 과거를 알고 이해하게 해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평범한 백성들의 기록이 공유되거나 후대에 전해질 통로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 특히 디지털문화가 발전하면서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기록이 아는 사람, 나아가 모르는 사람들과도 공유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이웃들의 관찰이 공존을 위한 의사소통의 시작이라면, 관찰의 기록 그리고 그 기록의 공유는 본격적인 의사소통의 진행 과정이자 공존 행위다. 사람과 이웃, 자연과 사회에 대한 따뜻한 관찰과 기록은 동시대에는 자신과 이웃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나아가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는 역사와 문화가 될 것이다.
--- pp.282~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