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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라 2

환라 2

은하담 | 동아 | 2021년 01월 1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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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444g | 128*188*30mm
ISBN13 9791163024422
ISBN10 116302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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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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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선은 늘어진 매를 뒤로 던지며 양야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날카로운 손이 양야의 등줄기를 훑었다.
“꼴을 보아하니 인간이 다 되었구나.”
양야가 일어나 몸을 돌리며 백호선의 손을 쳐 냈다. 백호선은 양야가 물러서기 전에 반대쪽 손을 뻗었다. 호랑이의 발톱처럼 날카롭고 단단한 손이 환라의 머리를 쥐려 했으나 양야는 몸을 뒤로 날려 피했다.
백호선이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노란 안광이 희번덕였다. 그녀는 배고픈 호랑이처럼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양야의 주변을 배회했다.
“양아. 품에 안은 것을 내려놓으렴.”
달콤한 목소리와 달리 공기는 더 날카로워졌다. 바람이 살을 엘 듯이 휘몰아쳤다. 양야는 환라가 해를 입지 않도록 온몸으로 그녀를 감쌌다. 강한 바람과 정기에 휘청이던 몸이 아래로 툭 떨어지듯 주저앉았다.
훌쩍 다가온 백호선이 양야의 머리를 잡아 뒤로 꺾었다. 그녀의 시선이 양야의 목젖과 턱선을 핥듯이 훑으며 올라오다가 무궁화에 닿았다. 환라의 귓가에도 똑같은 자리에 무궁화가 꽂혀 있었다.
백호선의 한쪽 눈썹과 볼이 불쾌하게 들썩였다.
“귀엽군. 아주 귀여워.”
백호선은 양야의 귓가에서 무궁화를 뽑아냈다. 이내 고운 꽃잎이 백호선의 손아귀에서 짓이겨졌다. 양야는 새파란 불길에 휩싸이는 하얀 꽃을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증오스러운 눈으로 백호선을 응시할 뿐이었다.
“양야.”
그녀의 손이 양야의 볼을 타고 흘러 그의 턱을 쓸어내렸다.
“내 여우.”
“전 상선(上仙)의 것이 아닙니다.”
“300년 가까이 내 곁에 있던 네가, 내 것이 아니면 누구의 것이냐? 네 품에 잠들어 있는 인간의 것이더냐?”
사람의 모습을 한 호랑이가 허리를 젖히고 웃음을 터트렸다. 양야는 새하얗고 긴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맞습니다. 전 이 사람의 것입니다.”
“하하하! 재밌구나. 재밌어. 그럼 언제 너를 다시 취하러 오면 될까? 인간은 천수를 누린다 해도 100세를 넘기기 힘드니 80년 뒤에 오면 되겠느냐?”
“그 뒤에도 상선의 여우가 되진 않을 겁니다.”
“양아. 아가. 멍청하게 굴지 말려무나. 지금 네 몰골을 보렴.”
백호선은 양야의 주변을 돌며 그의 머리카락을 들어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고, 어깨와 팔뚝을 바람처럼 어루만졌다.
“인계에 내려온 지 100년도 되지 않았는데 넝마가 다 되었구나. 하찮은 인간에게 붙어 기생충처럼 정기를 뽑아 먹는 꼴이라니.”
제 몸을 만질 때는 가만히 있던 양야가 백호선이 환라를 만지려 하자 매섭게 그녀의 손을 쳐 냈다. 백호선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양야의 앞에 섰다. 그녀의 손에서 희미하게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특한 기운이 양야의 얼굴에 훅 끼쳤다.
양야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백호선이 흘린 사기가 얼굴에 닿자 양야의 동공이 세로로 찢어지며 주황색으로 빛났다. 환라의 정기로 인해 금세 검은색으로 돌아왔으나 백호선은 그 눈을 보고 난 뒤였다. 그녀는 깔깔 웃고는 상냥한 낯빛을 하고 손끝으로 양야의 목덜미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조그만 사기에도 여우의 눈으로 변하는 것을 보렴. 양아. 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니? 아마 이 인간이 죽기도 전에 너는 요괴로 변해 버릴 테지. 짐승의 모습도, 인간의 모습도 아닌 채로 욕망에 휘둘리며 살고 싶은 게냐?”
“상관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내게 오렴. 귀하게 여겨 주마.”
“설령 요괴가 된다 해도 뇌동산으로 돌아가진 않을 겁니다.”
“그럼 어찌해야 돌아오겠느냐?”
백호선의 손끝이 환라의 팔뚝에 닿았다. 양야가 놀라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내가 이것을 죽이면 돌아오겠느냐?”
양야는 조소했다.
“상선께서는 못 하십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신선은 하늘의 명령 없이 인계의 일에 개입할 수 없다. 만약 이를 어기면 신선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천벌을 받은 뒤 힘과 산을 잃게 된다.
양야는 알고 있었다. 백호선은 양야를 가지기 위해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백호선의 얼굴에서 미소가 달아났다. 그녀는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양야를 보았다.
“내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너를 가져야겠다면?”
“못 하십니다.”
양야는 환라를 안아 들고 몸을 일으켰다.
“환이 죽으면 저도 따라 죽을 테니, 상선께서는 무슨 짓을 하셔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실 겁니다.”
백호선은 천천히 물러나 양야를 지그시 응시했다. 바람이 서서히 잦아들고 구름이 걷혔다. 눈처럼 흩날리던 무궁화 꽃도 서서히 내려앉았다.
백호선의 눈빛 또한 돌연 부드러워졌다.
“진심이구나.”
양야는 대답하지 않고 백호선을 경계했다. 백호선은 허공에 앉아 다리를 꼬고 양야를 내려다봤다. 그녀는 허파에 봄바람이 깃든 것처럼 따사롭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내가 도와줘야겠구나.”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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