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01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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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590g | 170*210*16mm |
ISBN13 | 9788960787308 |
ISBN10 | 8960787302 |
발행일 | 2021년 01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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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590g | 170*210*16mm |
ISBN13 | 9788960787308 |
ISBN10 | 8960787302 |
1. 나는 23년째 입산 중이다 사람의 시간, 하늘의 시간 11 지리산에서 빈집 구하기 16 “나는 루저다!” 행복한 반란 23 태어나기 좋고 죽기에도 좋은 곳 26 몽유운무화, 나도 꽃이다! 30 별들의 여인숙, 나의 ‘별나무’ 38 섬진강 첫 매화 ‘소학정 매화’를 아시나요 46 “꽃만 말고 매화향을 찍어봐” 할매화, 할(喝)매화! 51 ‘노예’, 노동하는 예술가들 55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인다 59 친구,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 65 사진가 고 김영갑 형, 그대 몸속의 지수화풍! 71 2. 야생화가 나를 살렸다 섬진강, 문득 돌아보는 당신의 눈빛 89 할미꽃, 봄비 따라 길 떠나는 꽃상여 95 봄은 속도전이다 102 ‘붉은 립스틱’ 물매화와 금강초롱꽃 109 심봤다! ‘조선 남바람꽃’ 자생지 발견 118 중국 황산의 ‘몽필생화’가 부럽지 않다 132 진도 자란과 반려동물 천도재 140 벚꽃 그늘 아래 ‘밭두렁 사진전’ 152 ‘땅 한 평 구하기’ 인터넷 사진전의 기적 159 3. 살아 춤추는 지상의 별 별빛은 어둠에 예의를 갖추고 189 ‘별사냥’, 은하수를 찾아서 193 지리산 천년송과 강원도 자작나무숲 203 ‘별사냥’과 작은형 212 대륙여행, 영하 30도의 바이칼 호수와 몽골 220 “봄꽃이여, 너는 이미 다 이루었다!” 235 폐사지의 석탑과 천년의 별빛 242 바이칼 호수 은하수 아래 단체사진을 찍다 251 반딧불이, 살아 춤추는 ‘지상의 별’ 259 칠월칠석 밤하늘의 UFO를 찍다 268 섬진강 첫 은하수 278 수경 스님의 공양게송 283 미얀마의 야자수 밀키웨이 293 반딧불이 혼인비행 301 은하수와 만성 두드러기 304 시여, 그러나 나는 아직 너를 모른다 309 |
2019년 6월 28일 인사동에 가서 시인을 만났다. 별 볼 일 없는 세상, 별을 보여준다며 ‘별나무’ 사진전을 하고 있는 자리다. 시인은 서울에서 며칠 있었더니 날짜도 헛갈리고 정신을 자꾸 놓는다고 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스무 해가 넘도록 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시인은 최근 밤하늘에 무성하게 빛나는 별과 지상의 나무를 한 화면에 넣는 ‘별나무’ 작업에 집중했다고 한다. 한동안 야생화에 빠져들더니 이제 별나무다. 하늘에 뜬 별빛을 반짝이게 하고 지상의 나무에 핀 꽃도 환하게 하려면 도시가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별빛의 밝기와 나무에 꽃 피는 시기가 들어맞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 한 그루를 몇 년씩 살펴봐야 하고 해를 걸러 열매 맺는 감나무를 한 번 실패하면 다다음 해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시인의 설명을 들으며 사진을 보고 새로 나온 시집 2권을 사서 서명을 받았다.
사진 산문집에는 야생화와 별나무, 그리고 반딧불이 이야기가 담겼다. 시인이 찍은 사진은 아름답다. 야생화와 별나무, 그리고 반딧불이 사진을 찍기 위한 고투가 숙연하다. 야생화는 마치 지상의 꽃이 아닌 듯 싶고, 별나무는 오히려 지상에 깊이 뿌리 박은 듯 싶다. 하늘과 지상이 한 화면에 담겨 있고 거기에 꽃나무가 우뚝 서 있어 별나무에 마음이 더 간다. 봄날 즐비하게 피어 있는 벚꽃길과 별 총총 하늘의 조화, 흰 목련꽃이 소담스레 달려 있는 목련나무와 까만 하늘에서 빛나는 별빛의 어우러짐, 폐사지에 나무처럼 우뚝 서 있는 하늘 위로는 은하수가 흐르고, 겨울날 도드라지게 익어 있는 주홍빛 감을 달고 있는 감나무와 밤하늘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반딧불이는 또 얼마나 역동적인지. 그 아름다움에 이르는 여정과 깨달음이 마음을 울린다. 치열한 몸과 정신이 도달한 곳이라서 그러리라.
내게 또 한 분의 문학적 스승이 있다면 그는 여전히 하내리에서 구멍가게를 하던 맹인 김씨 아저씨다. 그는 언제나 안 보이는 눈으로 하내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겨울밤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듣고는 그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마을 길을 쓸고,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자전거와 경운기 엔진 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다 알아채고는 먼저 인사를 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갔을 때, 일부러 먼저 인사를 하지 않고 “담배 한 보루 주세요” 했더니, 그 안 보이는 눈을 깜빡이더니 “원규? 이실네 막내아들 원규 아이라?” 되묻는 것이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린 시절의 내 목소리까지 기억해내는, 시각의 결핍이 오히려 승화된 ‘하내리의 신’을 만난 것이다. (63쪽)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시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그가 다니던 모든 길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드나들던 고추밭과 고구마 밭으로 난 길이 희미해진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귀속골로 이어지던 길 하나가 지워지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로 이어지던 길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어쩌면 돌아가시면서 이 세상의 길들을 하나씩 지워버리는지도 모른다. 고속도로며 인터넷 뻥뻥 뚫리는 시대에 문득 우리가 길을 잃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101쪽)
어느새 섬진강에 큰고니와 독수리가 돌아오고, 눈발이 몰아친다. 천적일 것만 같은 독수리와 까치들이 악어와 악어새처럼 어울리기도 하고, 아침마다 물까치가 날아와 나의 늦잠을 깨워준다.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감나무의 대봉감 홍시 다 어디 갔느냐”고 난리를 친다. “야, 이 자식들아, 너희들이 다 먹었잖아! 나는 반의 반도 못 먹었다구” 냅다 소리를 치려다말고 참는다. 우리 집의 살아 있는 자명종들에게 미안했다.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아직 저희들의 잠을 단 한 번도 깨워 준 적이 없었다. (1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