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독회의 역사적인 첫출발을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1711-1788)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녹려잡지』(鹿廬雜識)에서 시작했습니다. 『녹려잡지』는 철학성이 높은 미번역 저작으로 강독회의 취지에 아주 잘 부합했습니다.
임성주는 율곡학파의 맥을 이은 도암 이재(李縡, 1680-1746)의 제자로서 조선 성리학 육대가의 한 명으로 평가받는 인물로 조선 성리학의 또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임성주는 『녹려잡지』에서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중국과 조선의 성리학자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임성주의 사유를 엿보는 것은 물론이고 성리학 기본 개념을 재검토해보고 토론하는 유익한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 「발간의 글」 중에서
만리(萬理)가 만상(萬象)이고, 오상(五常)이 오행(五行)이고, 건순(健順)이 양의(兩儀)이고, 태극(太極)이 원기(元氣)이라는 것은 모두 기(氣)에 나아가 그것을 명명한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항상 이일분수(理一分殊: 이치는 하나이고 나뉨에 다르다)를 이동기이(理同氣異: 이치는 같고 기는 다르다)로 이해하는데, 이치가 하나인 것이 저 기가 하나인 데에서 드러남을 전혀 알지 못한다. 만약 기가 하나가 아니면 어디서 그 리(理)가 반드시 하나임을 알 수 있으랴. 이일분수라는 것은 리를 주로 하여 말한 것이니 분(分) 자 또한 마땅히 리에 소속되어야 한다. 만약 기를 주로 하여 말한다면 기일분수(氣一分殊: 기가 하나이고 나뉨에 다르다)라고 말해도 안 될 것이 없다.
--- 「기일분수라고 해도 안 될 것이 없다」 중에서
사람의 선함은 물이 아래로 흐르고 불이 위로 타오르는 것과 같다. 지금 사람의 기(氣)가 악하지만 그 본성은 본래 선하다고 말한다면 이는 물이 위로 흐르지만 물의 본성은 아래를 향한다 말하고, 불이 아래로 타내려가지만 불의 본성은 위를 향한다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과연 무슨 말이 되겠는가? 동자(董子, 동중서: 기원전 179-104)가 이르기를 “본성은 타고난 성질[質]이다” 했는데, 그것은 반드시 전수받은 바가 있을 것이다.
--- 「본성의 선함은 그 기질의 선함이다」 중에서
주자가 『맹자』의 ‘인지이어금수’(人之異於禽獸: 사람이 금수와 다르다) 장을 논하여 말하길 “‘위대하신 상제가 아래 백성들에게 치우침이 없는 덕[衷]을 내려 주셨다’, ‘백성들이 떳떳한 도리를 잡고 있다’, 이런 대목이 바로 금수와 다른 곳인데, 서민은 이를 내버렸고 군자는 이를 보존하니 모름지기 이 다른 곳을 보존해야만 비로소 금수와 다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꿈틀대는 중생들 모두 불성이 있으니 우리 자신과 똑같다고 말하면 안 된다” 했다. 【『어류』의 ‘공도자문성’(公都子問性) 장에 보인다.】 정암(整庵, 나흠순)이 매번 주자를 논할 적에 하나로 정해지지 않았고 명도(明道, 정호)와 관점이 다르다 했는데, 지금 이 조목을 가지고 보면 명도의 설과 무슨 미세한 차이가 있는가? 진서산(眞西山, 진덕수: 1178-1235)이 『대학연의』(大學衍義)에서 『맹자』의 이 장을 해석하여 말하길 “사람과 사물 사이의 차이가 또한 먼데도 맹자가 사람이 사물과 다름이 드물다고 한 것은 사람과 사물이 모두 하나의 마음을 가졌는데, 사람은 능히 보존하지만 사물은 보존하지 못하여서 다른 바가 단지 이것일 뿐이다” 했다. 농암(農巖, 김창협: 1651-1708)이 변론하여 말하길 “이른바 사람과 사물이 모두 하나의 마음을 지녔다면 어떤 마음을 가리키는지 모르겠다. 만약 인의예지의 마음이라면 금수가 태어남에 원래 이 마음을 온전히 가질 수 없으니 사람과 균일하게 지녔다고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지각과 호오의 정(情)을 가리킨다면 비록 금수일지라도 또한 이 마음을 없앨 수 없으니 사물은 잘 보존시키지 못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이 말이 명석하다.
--- 「사물에도 미발의 중이 있다는 나흠순의 주장은 옳지 않다」 중에서
녹문은 통(通)·국(局)이 각각 리와 기에만 분속되어 이통(理通)·기국(氣局)만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기가 통(通)이면 리도 통이고, 기가 국(局)이면 리도 국(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녹문은 이기의 관계를 불리(不離)·부잡(不雜)의 관계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통국론은, 일원·분수처에서 상호 불리·부잡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이기가, 일원처에서는 이통[理一]·기통[氣一]으로, 분수처에서는 이국[理萬]·기국[氣萬]으로 드러나는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원처의 이통·기통은, 분수처의 이국·기국을 정초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리의 보편성뿐만 아니라 기의 보편성까지 드러내 놓고 논하고 있는 녹문의 이기관은,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 「녹려잡지 해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