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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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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0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46쪽 | 294g | 135*190*20mm
ISBN13 9791190526272
ISBN10 119052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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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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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땅을 밟았다. 부신 눈을 추스르며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30m 정도쯤 앞 대각선 쪽으로 보신각이 눈에 들어온다. 보신각이 중심에 있지 않았다면 이곳이 어딘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밀치며 옆으로 온갖 사람들이 부산하게 지나갔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우선 내 모습을 보고 싶어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였다. 두어 걸음 앞에 제일은행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입구가 검은 색 대형유리로 되어 있다. 정면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유리에 비치지 않았다. 나는 양팔을 흔들었다. 역시 안 보였다. 아무래도 시선을 끌지 않는 롯데리아나 맥도널드 같은 곳에 가서 거울을 봐야겠다.

맥도널드는 보이지 않고 열 걸음 정도면 탐엔탐스에 닿을 것 같았다. 입구로 가는 벽면이 검은 유리로 되어 있었다. 내 앞사람의 모습이 비추다가 없어지고 바로 내 뒷사람의 모습이 비친다. 다시 보아도 내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유리를 만지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검은 유리에 내 모습은 없다. 깜짝 놀라 급한 마음에 내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어디에도 내 그림자는 없었다.
---「종각역」중에서

슬슬 영업 준비를 하려는 G를 보며 S와 나는 집에 가려고 커피 잔을 그러모으고 있었다. 오늘이 첫날밤이네. G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 인형 말이야. 결혼하고 첫날밤. 굳이 결혼식이 아니더라도 그 영감은 도대체 평생 새로운 상대와 시작하는 첫날밤이 몇 번이나 될까. 생각만 해도 징그럽다. 그 말에 나는 몸서리가 쳐졌다.
---「닭집 언니」중에서

뭔가 차별당한 기분이다. 기계로부터의 차별은 사람 못지않게 불쾌했다. P의 화면에 쌓여 가는 달러를 K는 시큰둥하게 바라보았다. 혼자 신이 나서 히히덕거리던 P는 겨우 눈치를 채고 K를 그 자리에 앉혔다. K가 시작하자마자 그동안 쌓였던 P의 달러는 모래시계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K는 당황했다. 이건 비단 쇼핑백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 센서는 개인의 지갑 속까지 꿰고 있단 말인가. K가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다 보니 결국 ‘Money Tree’의 잔액은 0이 되고 말았다. K가 사과하자 P는 그저 웃고 말았다. P는 기계에 돈을 넣는 순간 이미 남의 돈이라고 했다. K는 역시 돈복이 없는 놈은 기계조차도 알아보나 싶어 더욱 주눅이 들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중에서

삐아프는 왠지 미안해서 화숙에게 아침밥을 챙겨 줘야 될 것만 같았다. 좁은 주방 구석에 놓인, 삐아프의 키보다도 작은 냉장고 안은 너무도 빈약했다. 삐아프는 밖에 나가 장을 보고 싶었지만 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우선 있는 대로 몇 개 안되는 계란을 프라이하고 식은 밥은 김치를 넣고 볶았다. 아주 기본적인 식단이었지만 화숙이는 무척 고마워했다. 그러고 보니 삐아프는 누군가와 함께 아침밥을 먹어 본 지가 얼마만인지 몰랐다.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데 삐아프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화숙이도 덩달아 눈물이 글썽했다.
---「빨간 머리 삐아프」중에서

여러 장소 중에서 나는 왜 굳이 한강 변을 걷고 있을까. 나의 무의식 속에 아버지의 한이 전달된 건 아닐까. 아버지의 사십 대, 그 꿈은 모래 사업으로 성공하는 것이었다. 한강의 모래는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 자수성가했다는 기둥을 붙잡고 있었다. 거칠고 모진 사람들에게 터지고 베인 아버지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평생 재기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나약한, 아니 어리석은 모습은 가족에게 절망과 포기를 안겨 주었다.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은 집안에서 소리가 사라진 것이다. 말소리는 물론이고 TV나 라디오를 비롯한 전자음, 심지어 마루를 걸을 때조차 예전 같지 않았다. 소리 내는 인간은 죽여 버리겠다고 누군가 협박문을 벽마다 붙여 놓은 듯 밥상머리에서도 주방에서도 모든 소리는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국수를 먹을 때조차 숨을 멈춘다, 국수를 말아 입에 넣는다, 소리 없이 씹는다는 ‘국수 먹는 법’이 있는 듯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집에서 키우던 잡종견조차 소리를 삼켰던 것 같다.
---「삐이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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