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노동조직이라고 상상하는 것을 사회 전체의 통치로 확장하려는 의지는 오늘날에도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모델을 바꾸었을 뿐이다. 법치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는 기계론적 시계 모델 위에 사이버네틱스의 컴퓨터 모델이 겹쳐졌다. 이제 노동조직은 노동자를 단순한 톱니바퀴로 취급하는 질량과 역학의 상호작용으로 착상되지 않는다. 그 대신, 프로그램에 따라 전달받는 신호들에 반응할 수 있는 단위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제어시스템으로 착상된다. 이 모델은 ‘신공공관리’ 이론에 의해 공적 영역에 도입되었다. 신공공관리 이론의 적용은 광범위한 정치적 합의를 이루었으며, 아마 고스플랜(Gosplan) 또는 구소련의 계획경제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연방국가계획위원회의 이론가들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 p.48, 「제1장 통치기계를 찾아서」 중에서
‘자본주의’라는 말을 만든 독일의 위대한 역사학자 및 사회학자인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에 따르면, “자본주의와 복식부기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이 둘은 상호 간에 형식과 내용으로 작동한다”. 복식부기의 발명과 함께 다른 법기술들도 발명되어 함께 발전한다. 예를 들어 환어음, 할인, 배서, 신탁 등이 있다. 이 법기술들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모두 제삼자 보증인의 원리에 의거해 신용거래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시장경제를 떠받치는 도그마적 기초들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숫자의 규범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복식부기는 확실히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복식부기의 발명은 대수학이 유럽에 도입된 것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 p.131, 「제5장 계량화의 규범적 활용」 중에서
법경제학은 초기에는 산업과 무역을 규제하는 법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만을 시도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널리 법질서 전반을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이러한 확대 경향은 좀 더 일반적으로는 경제학 그 자체의 확대 경향에 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학은 더 이상 부의 생산과 분배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오늘날 경제학은 방법론으로 정의된다. 이 방법론은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근본 동력을 밝혀내고, 마침내 그 행동을 설명해주는 규칙 체계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개리 베커가 제목 자체에서 방향 설정이 명시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인간 행동의 경제학적 분석』이라는 책에서 이론화했다.
--- p.194, 「제7장 계산할 수 없는 것을 계산하기: 법경제학 비판」 중에서
지표를 구축하는 작업은 기술적 합리성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일체의 민주주의적 논쟁에서 벗어나는 권력투쟁의 문제가 된다. 코린 에로(Corinne Eyraud)는 고등교육의 성과지표를 정의하는 주제를 둘러싸고 프랑스 재무부 공무원들과 교육부 공무원들 사이에 벌어졌던 격렬한 협상 과정을 묘사한다. 교육부 공무원 신분인 대학교수들은 입학생 수와 같이 예산의 유지에 가장 유리한 지표들이 채택될 수 있도록 힘을 썼다. 반대로 예산을 감독하는 지위에 있는 재무부 공무원들은 (예를 들어 학부졸업률처럼) 가장 달성하기 어렵고 “프로그램 수행자들”의 비효율성을 명백하게 드러낼 수 있는 지표들을 채택하고자 했다. 이러한 연금술적 과정을 거쳐 대학교육과 연구는 숫자로 전환되고, 그에 따라 공공지출의 방향이 결정된다. 연구 분야의 「연례성과보고서」에서 채택하고 있는 지표들을 보면, 벤치마킹이라는 허구적 과정을 위해 실제를 몰아내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 p.258, 「제9장 숫자에 의한 협치가 빠진 궁지」 중에서
기능의 소작 현상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모두에서 나타나며 공과 사의 경계선을 희미하게 만든다. 이 현상은 민간 기업의 경영에서 먼저 확인되었다. 경제의 금융화에 따라 기업들은 사업을 비용 단위와 이윤 단위로 분리하고, 이 단위들이 수익 증대의 요구에 따라 운영되도록 만들었다. 이 자율화 조치와 쌍을 이루는 것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능을 외주화하는 것 그리고 이른바 ‘핵심 분야’ 즉 금융시장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분야에 기업의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오늘날 기업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즉 통합적이고 위계적인 ‘포드주의’ 조직 모델에서, 생산에 필수적인 사업 부문을 다른 기업에 양도하는 그물형 기업 모델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 p.326, 「제11장 인치(人治)의 재부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