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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버리는 날

나를 버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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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220g | 153*224*20mm
ISBN13 9791165120252
ISBN10 1165120259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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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고요하고도 성스러운 날,
달도 별도 없는 바깥은 묘하게 밝다.
흰 꽃잎 떨어지듯
가만히 묵음 속의 속삭임을 찾아내 듣는다.

미세한 바람은 어서 따라오라고
영혼을 담은 백白빛 먼지를
흩뿌리며 잘도 날아간다.
저기 저 작은 호숫가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참으로 초라하구나.
호수에 비친 촉촉한 결들은
나의 가슴 밭을 조롱하듯
참 아름답게도 일렁인다.

나는 여기 이곳에서 이 자연에서
이 성스러운 공간에서 나를 버린다.
아문 상처를 다시 찢듯
손과 손을 떨쳐버리고서 떠나는 거다.
친숙하지 않은 그곳으로.

휘익 불어오는 백(白)빛 바람에 실려
삶의 무대로부터 공허함이
내게 밀려온다 해도,
사팔뜨기의 운명이
나를 어딘가에서 구경하고 있다하더라도

나는 이 반쯤 채워진 가면과, 감정의 윤곽과,
불안한 장막을 우주 공간으로부터 채우고
인생의 계절들 속에서
첫 기원을 찾게 되리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상처의 냄새가 나는 역사에서,
고독의 연극에서
순수한 사건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그 길을 찾아본다.

사자(死者)들이 누리는 평온함 속에
모두가 하나 되어 우리에게 침묵하듯이
내가 가졌던 수치와 억울을
그들에게 구걸하듯 던져주고
존재의 만족을 위해 조심히 나를 던져본다.

그리고 임신한 여인들의 얼굴에
모호한 것이 떠오르듯
내 귀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를 다시 주워오겠음을.

햇살의 핏줄을 타고
여기 이 방으로 들어와
새벽 풀의 매달린 이슬이
서서히 증발할 때쯤
환희의 꽃가루를 얼굴에 퍼담는 그날에
밤공기 속 하늘을 향해
오늘 나는 나를 버리는 날이라고
고요하게 외쳐본다.

일찍 떠난 자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
어머니의 젖가슴을 떠나듯
조용히 대지의 품을 떠나
복된 진보를 울궈내는
우리는 그리고 나는,

그때 그 슬픔의 비탄 속에서
메마른 침묵을 갈망하며
어제도 오늘도 나를 버린다.
그리고
오직 글로써 영혼의 피사체를 찍어내어
다시 나를 찾는다.
---「나를 버리는 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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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영 시인은, 우주 밖에서 바라보며 우주에서 나오는 침묵의 소리, 죽음 밖에서 바라보며 죽은 자로부터 나오는 침묵의 소리, 심지어 타인으로부터, 자연으로부터 들리는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표현하였다. 여기서 ‘버린다’라는 건 카르페디엠의 행위이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 ‘나를 버리는 날’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 날, 이 순간, 나는 ‘날’이 되어 나를 버린다. 나를 버리기 위해서는, 즉 나와 타인, 자연과 우주의 존재들을 찾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능력’이나 ‘도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 이병하 (글로벌디지털콘텐츠그룹 대표이사)
조희영 시인의 글은 치유서이다. 글은 나를 치유하고, 다른 이도 치유한다. 또한 글쓰기는 고백이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거울보기이다. 글쓰기를 통한 객관화 작업은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는다. 또한 조 시인의 글은 정직하다. 원초적인 힘이 감춰져 있다. 불 같은 욕망도 느껴진다.
- 윤학렬 (영화감독)
어느 날 릴케의 시에 꽂혀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데 보내준 몇 편의 시를 읽어보니 주제가 남편, 아이들, 엄마 등 가족을 향한 사랑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거꾸로 매달려 있는 고드름을 보고 소리 없는 절규, 눈물, 송곳니, 오기 등 본인의 힘든 마음을 표현하는 듯하다가도 얼굴의 주름을 보고는 본인 때문에 힘들었을 사람들의 주름을 떠올리며 참으로 미안하다고 고백하는 아름다운 심성도 표현하고 있다. 쉽게 이해되고 공감할 수 있는 시들이라 더 마음에 와닿는다.
- 김왕기 (WIN TV 시카고한인방송국 회장)
겨드랑이에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날개가 자라고 있었다. 이상의 ‘날개’가 아니라 시인 조희영의 ‘날개’였다.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지만 시인은 하늘을 향해 누울 뿐 많은 밤들을 뜬눈으로 지새운다. 밤 새 별이 빛나고 별빛은 강처럼 흘러 뺨을 적셔도 꼼짝없이 바람에 묶인 시인은 자유한 이방인이다. 귀를 막아도 들리고 눈을 감아도 보이는 슬프고도 행복한 시인 조희영이다.
- 신호철 (시카고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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