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알아둘 것은 코로나바이러스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병원체가 아니란 점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1960년대에 발견되었으며, 감기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바이러스에 속한다. 감기의 약 20~30퍼센트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여러 가지 균주가 있는데, 특히 고약한 균주들은 이전에도 전 세계적 유행을 일으킨 적이 있다. ‘메르스’라고 부르는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ern Respiratory Syndrome, MERS)과 ‘사스’라고 부르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이다. 이번에 처음부터 백신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까닭은 이전에 이 병들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다만 메르스와 사스는 백신이 개발되기 전에 유행이 소멸되어 중간에 연구가 중단되었다. 하지만 유행 지역들은 전염병에 대처하는 데 귀중한 경험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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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입원율은 6~20퍼센트다. 어른과 비슷한 수치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이 어린이들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증상을 나타낸 20퍼센트에 속한다(다시 한번, 80퍼센트의 어린이는 증상이 없다는 점을 상기하자). 따라서 그중 6퍼센트가 입원했다면, 자녀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입원할 가능성은 20퍼센트의 6퍼센트 즉 1.2퍼센트다. 잠깐, 더 생각할 것이 있다. 사실 대부분의 어린이에게 위험은 그보다 훨씬 낮다. 입원한 어린이들을 자세히 보면 많은 수가 만성 폐질환, 심장병, 면역억제 등 병원체에 감염되기 쉬운 위험 인자들을 갖고 있었다. 대규모 환자군 연구에서는 입원한 어린이의 77퍼센트에서 기저질환이 있었다. 자녀가 비교적 건강하고 만성적인 기저질환이 없다면 COVID-19로 입원할 가능성은 0.3퍼센트로 줄어든다. 또 있다. 입원한 어린이 중 절반이 연쇄상구균성 인두염, 독감, RSV, 또는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을 동시에 앓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COVID-19 한 가지에만 걸린다면 입원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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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많은 부모들은 특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재우거나 먹이느라 항상 피곤하며, 다른 형제들을 제대로 돌보기 어렵다. 이때는 항상 아이들의 관점과 부모의 관점을 동시에 고려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집에 있는 것이 많이 힘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큰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좀이 쑤시고 답답한데도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꾹꾹 눌러 참고 있을지 모른다. 신생아의 부모 중에도 큰 애들을 데리고 있으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정답은 없다. 각 가족이 처한 상황, 가족 사이의 관계, 각자의 성격을 고려해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형제 사이의 감염 위험을 줄이는 데도 역시 기본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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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이 들 때는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주장하듯 의식이 몰입 상태에 빠지면 일의 능률이 높아질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 좋은 효과가 나타난다. 나는 집안을 청소하거나 정리하면서 걱정거리는 물론, 자신을 잠시 잊고 몰입 상태에 빠지는 일이 많다. 운동, 미술, 퍼즐, 요리, 아이들과 노는 것 등은 잠시 자신을 잊고 푹 빠져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활동들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언론 보도를 빠짐없이 챙겨보면 그 순간에는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렇게 자극적인 정보를 계속 접하는 것은 무력감을 악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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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가정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가장 높은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다. 연령만으로도 심하게 앓고, 입원하고, 심지어 사망할 위험이 높아진다. 또한 고령은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비만 등 다른 고위험 상태의 위험인자이기도 하다.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보는 경우도 늘고 있다. 사실 그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가 쌓일수록 노령층이 COVID-19를 심하게 앓을 가능성이 높음을 부정할 수 없다. 많은 가족이 노출될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들을 어디엔가 보내야 할지, 아니면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내도록 할지를 두고 고심한다.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유행이 길어지면서 장성한 자식들이 부모를 집에서 모시는 경우도 늘고 있다. 물론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부모를 사랑할 뿐 아니라 고립된 채 병을 앓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COVID-19의 위험을 정확히 알고 나면 고령의 부모가 따로 지내는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란 생각이 들 것이다. 때때로 인간적 진실과 의학적 진실은 일치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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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서 우리는 자녀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부모가 균형을 잃으면 가족 전체가 균형을 잃는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누구나 알게 모르게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정말로 능력을 보여야 할 때도 잠재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아주 쉽게 했던 일도 번아웃된 상태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그러니 부모들에게 딱 한 가지만 조언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부모들이 스스로를 보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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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관해 우리는 감염 위험과 학교의 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홈스쿨링이나 원격수업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모가 매일 일해야 하는 대부분의 가정에 실질적인 선택이 될 수 없다. 몇몇 가정이 모여 아이들을 돌보는 방법은 안전성을 점검할 기회가 더 적고 집단 구성에 일관성이 없어 오히려 전파 위험이 더 클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 락다운 시기에 나타난 학력 저하는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어린이들은 단지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배움이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 기술로 대면 학습을 대신할 수 있으리라 쉽게 생각하지만 온라인 수업을 들으려면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며, 일부 어린이들은 아직 그런 집중력이 발달되지 않은 상태다. 또한 대부분의 교실은 풍성한 학습 환경을 갖추고 있는데, 그런 환경을 온라인으로 완벽하게 옮길 방법은 없다.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 또한 일부 가족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장애 어린이에 대한 교육은 더욱 심각하다. 원격 학습에 따른 문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학생은 장애나 기타 특수한 필요를 지닌 학생들과 저소득층 가정의 어린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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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보고 들은 것, 생각한 것, 불안하거나 걱정이 되는 것을 표현할 기회를 주고 귀 기울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자체가 부모로서 성장하는 길이며, 자녀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종종 어린이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적절히 해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과 생각 사이에 큰 격차가 생긴다. 부모가 그런 상태를 아는 방법은 직접 물어보는 것밖에 없다. 연령에 따라 이렇게 질문을 달리 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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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어린이의 감정을 사소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부모가 자꾸 그런 태도를 보이면 결국 아이는 감정을 부모에게 내보이지 않게 된다. 또한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자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곧 학교가 다시 문을 열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거야.”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다. 자녀가 부모를 신뢰하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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