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대 선조는 우리에게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었는지를 신화를 통해 알려주었으나, 우리는 그것을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반만년 역사를 가진 민족’이란 말이 마치 허구 속의 빈말처럼 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리석은 선조들의 이기심과 모화사상으로 인해 그동안 잊어버리고 감추어졌던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국조(國祖)가 신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구의 ‘단군’이 아니고 실존 인물 ‘단군’으로 존재하였다는 것을 찾아내어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또한 중국의 황하문명과 그것을 합리화시키려는 동북공정도 허구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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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이와 같은 환인의 탄생을 기준으로 단군신화의 내용을 일일이 역사적인 사실과 연계 분석하여 우리 단군신화가 역사적인 사실임을 명확하게 하여 한민족의 반만년 역사를 재정립하려 한다.
--- p.28
중국의 기원인 삼황오제는 우리의 고대사회에서 성립한 신시배달국의 관료 직급체계를 신격화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사항들은 후기 중국의 역사가들이 우리 한민족의 고대역사 일부를 편취하여 자신의 신화 속에 편입시키고 마치 우리의 단군신화는 단순한 신화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 p.74
중국의 기원인 삼황오제는 우리의 고대사회에서 성립한 신시배달국의 관료 계급 직제를 따간 것이다. 이러한 사항들은 후기 중국의 역사가들이 우리 한민족의 고대역사 일부를 날조하여 자신의 신화 속에 편입시키고 마치 우리의 단군도 신화 속에서 존재했던 인물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 p.76
우리 한민족의 단군신화에서 나오는 풍백, 우사, 운사와 중국의 삼황·오제는 수메르의 관료체제를 이어온 것으로 동일한 문명에서 파생된 것이며, 이는 수메르에서 이주해온 환연맹에 의해 동방으로 전수된 통치제제의 신화적인 표현이다.
--- p.80
홍산으로 들어온 칸연맹 부족들이 우리 한민족의 조상으로 환인연맹이 되며, 그들의 흔적은 단군신화 속에 남아 있다. 이 환인연맹 3족(우르, 키시, 이리두)에 대한 흔적은 역사 속에서 지명과 국명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각각을 통해 우리는 고대역사를 유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선 우르는 우리말의 ‘우리’ 혹은 ‘울’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한자음으로 ‘여(餘, 麗)’자가 되어 부여(북우르의 한자식 표현), 신려, 졸본부여, 동부여, 고구려, 남부여, 서울, 울산, 울진 울릉도 등에 남아 있다. 그리고 키시는 수메르 말로 ‘키’가 땅을 의미하며 이것이 ‘달 또는 양(陽, 壤)’으로 표현되어 아사달인 조양과 선양, 평양, 안양, 낙양, 심양 등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또한 에리두는 ‘이리두’로 변음이 되어 고대 하나라의 수도인 짐심시 이리두현과 하나라가 멸망한 후에는 이(夷)족으로 줄여 동이, 견이, 고리(고구려)족 등에 남아 있다. 더불어 이리두는 그들이 신봉하는 하늘 신(아누 : An)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에 안(安)자를 붙여서 사용했다. 즉, 고죽국의 천안(遷安)과 고구려의 수도인 집안, 동이족의 활동지인 태산 주변의 태안 그리고 한반도에서 동이마한의 영역인 태안반도, 천안, 부안, 진안, 무안, 주안, 수안 등에 그 자취를 남겼다.
--- p.110
키시의 고조선은 수도를 정할 때 ‘키’자를 사용한다. 즉, 수메르 말로 ‘키’는 땅을 의미하며 한자로 표현할 때 ‘양’이므로 도시 이름에 땅, 양(壤, 陽)자를 붙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도시는 조양, 선양, 평양 등의 양자가 붙어 있다.
--- p.121
상나라의 수도는 다른 키시의 국가들과 같이 도시 이름에 ‘양’이 들어간 ‘안양(安陽)’이다. 그리고 상나라가 멸망한 후에는 지배계층인 키시(기자)가 고죽국을 통해 고조선 연맹으로 유입되며, 이때 이주한 상나라의 키시족 중의 한 사람이 기자이다. 또한 우리나라 성씨 중에 김씨는 원래 ‘키임’에서 나왔으며, ‘키임’의 본뜻은 ‘키시족 사람’이라는 말의 함축어이다.
--- p.121~122
조선(朝鮮)이라는 국명이 왜 생겼는지를 알 수 있는데, 즉 키시라는 의미의 ‘양’자가 들어간 조양과 선양이 합쳐진 명칭에서 조선이란 국명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조선은 여러 개의 도시형 국가로 이루어진 연맹체 국가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p.122~123
BC 1018년 주나라에게 상나라가 멸망하면서 그들도 주나라에 쫓겨 상당수는 더욱 동쪽 산동 지역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서주가 멸망하고 동주시대가 되면서 제나라의 압력으로 태안과 산동반도를 벗어나 한반도 내의 태안반도를 거쳐 반도 내륙으로 이동한다. 한반도로 이주한 동이족은 천안에 이르러서 두 갈레로 갈라진다. 이것이 천안삼거리의 유래이다. 그중에 한 무리는 발안을 거쳐 주안과 황해도 수안으로 북상하여 진국을 세웠으며, 다른 무리는 이리를 거쳐 부안, 진안, 변한 그리고 무안으로 남진하여 목지국을 세운다.
--- p.151
부여가 멸망하면서 지배층인 우르족의 일부는 아무르(흑룡)강을 거처 한반도의 동쪽 해안선을 따라 남하한다. 그들은 지금의 속초 부근의 울산바위 근처에서 둘로 나누어지고, 그중 한 갈래는 계속 남하하여 울진을 거처 울산의 태화강가에 도달한다. 이들이 후에 울산 서쪽의 벌판으로 이주하여 그곳이 서벌(서라벌)이 되고 신라의 근간이 된다. 그리고 울산바위에서 갈라진 다른 우르족 일단은 미시령을 넘어 소양강을 따라 이동하여 춘천의 중도에 이르고, 그곳에 우두국을 세운다. 여기서 우두국은 소머리국으로 수메르국의 변음이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이동하여 북한강을 따라 내려가 양평에 이른다. 그 후 양평에서 다시 남하하여 하남 위례에 이르렀으며, 그곳에 한성 백제를 세운다, 이곳이 후에 백제가 탄생되는 근간이 된다.
--- p.157
난생설화는 지금의 우리 역사에서 고대 상고사가 설화로 오인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마치 설화로 나타내는 시대 이상의 역사가 없이 중국에 복속된 지역의 역사처럼 오인하게 되는 큰 오류를 남기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삼국의 기원이 난생설화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실체적인 단군 역사가 마치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처럼 변질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단군은 명백히 청동기문명을 가지고 도래한 우리 한민족의 역사이며, 그 기원은 수메르의 환인족과 토착 웅족 사이에서 이루어진 사실이며, 단순한 신화가 아닌 실제 우리 조상의 역사이다. 그 때문에 이제는 이것을 바로 고쳐야 한다. 그래서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난생설화의 근본적인 의미를 잘 되새겨서 그 안에 숨겨진 사실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 p.174~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