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에 재산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밀선을 탄 다른 가족들은 돈과 함께 그 무서운 현해탄에 고깃밥이 되어버렸다. 재산을 일본 정부에 빼앗겼으면 목숨은 건졌을 것을…….
우리 가족이 탄 배는 그래도 다행인 것이 어느 섬 인근에 다 와서 고장이 났다. 선장은 섬에 배를 대고 수리를 한 후 파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고국의 부두에 데려다주었다.
--- p.21, 「현해탄을 건너다」 중에서
“아부지예, 아부지예, 파랭이옵니더.”
안채 대문 쪽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소리소리 질렀다. 내 등 뒤로 같이 따라 들어오던 파랭이가, “영감, 아(아이)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파랭이가 뭔교? 야, 영감.”
아버지의 난감함을 알지 못한 나는 일을 더 크게 제대로 저질렀다. 그 뒤 내 말에 곤욕을 치르면서 돈을 더 준 것 같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속이 시원함을 한껏 느꼈다고 하셨다. 돈을 받아 간 순사는 차례대로 보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돈을 챙겨 주셨다. 주다 주다 지친 아버지는 신문지를 돈 크기로 잘라 몇 뭉치 만들고는 신문지 옆에 진짜 돈을 한 장씩 붙여 종이봉투에 넣어서 준 모양이었다.
--- p.34, 「파랭이들의 비리」 중에서
6·25전쟁, 대구삼덕국민학교(초등학교) 2학년 때다. 하루는 서둘러 등교를 하자 교장선생님께서 운동장 단상 위에 서 계시고 그 옆으로 담임선생님들이 서 계셨다. 교장 선생님의 떨리는 음성이 우리 학생들을 긴장시켰다.
오늘 새벽, 북한 인민군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왔다면서 학생들은 각 반 담임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지시에 따라 하교하기 바란다고 하셨다. 그 말씀이 비통하기까지 했다. 담임선생님은 연락할 때까지 등교하지 말라면서 빨리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하셨다.
(중략)
두 오빠는 인민군 몰래 빠져나와 총소리와 전투를 피해 뒷산을 타고 대구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나마 미숫가루로 연명(延命)은 했지만, 산을 헤매면서 얇은 운동화는 다 닳아 떨어져 나가버리고 맨발로 능선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밤이 되면 둘이서 꼭 붙어 안고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국 국군이 주둔한 천막에 찾아가 물과 음식을 얻어먹고 다시 맨발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사 속을 맨발로 헤맨 오빠들…. 참으로 나라의 아픔을 절절히 느꼈으리라. 우리 가족을, 이 아픔을 …….
--- p.47, 「비극의 역사 피난의 참사」 중에서
서커스단이 오면 동네 친구들 여러 명이 모여 수성 다리 밑으로 갔다. 장난을 치며 감시하는 감독의 눈을 피해 전막을 살포시 들고 기어들어가곤 했다. 동네 머시마(‘사내아이’의 경상도 방언)들은 여자애들을 떠다밀고 방해하면서 짓궂은 장난을 곧잘 쳤다. 우리는 들킬까 봐 입을 꼭 다물고 몰래 들어가 어른들이 앉아 있는 의자 옆에 끼여 서커스를 구경했다. 공연이 끝나면 어른들 뒤를 따라 나왔다. 반은 놀이, 반은 구경삼아 참 재미있었다. 나와서는 친구들 손을 잡고 머시마들과 “자식아야, 가시나야!”하면서 한판 싸우기 일쑤였다.
--- p.58, 「동춘서커스단과 스크린(자막) 변사」 중에서
개구쟁이 놀이만 하고 공장 마당에서 놀던 나에게 큰어머니께서 막둥이를 업고 기저귀를 세숫대야에 담아두고 말씀하셨다.
“거랑(냇가)가서 똥걸레(기저귀) 빨아 올래? 아니면, 불 땔래?”
나는 똥걸레가 싫었다.
“큰엄마, 나는 불 때고 싶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지깽이를 들고 때릴 것처럼 다가왔다. 버럭!
“요니리 가시나, 뭐라카노! 빨리 똥걸레 안 빨아 오나!”
매 맞지 않으려 냉큼 기저귀 대야를 들고 도망쳐 수성교 밑 방천으로 갔다. 동생이 똥 싸 놓은 기저귀를 냇물에 담가 방망이로 씻어내고, 빨랫돌 위에 얹어 놓고 비누칠을 해 방망이로 두드리고 물에 헹구고, 또 비누칠을 해 두들겨 빨고 헹구고…….
--- p.74, 「장티푸스가 쓸고 간 한여름의 흔적」 중에서
6학년 2학기 두 달을 남겨두고 편창공장 창고 교실 생활을 마무리하고 본교로 들어갔다.
국군이 숙식했던 곳이라 복도와 교실은 온통 기름때가 묻고 극도로 지저분해 있었다. 군인들이 쓰던 난로에 불을 지펴 그 위에 물통을 올려두었다. 한겨울은 지났지만, 여전히 추운 시기였다. 뜨거운 물에 걸레를 빨아 벽과 복도, 교실을 열심히 닦아 내었다. 한 반에 80명이 넘는 친구들이 며칠에 걸쳐 닦고 또 닦았다. 또 다른 전쟁이었다.
--- p.79, 「졸업을 두 달 남겨둔 5년 만의 본교 교실」 중에서
늦게 왔다고 찡찡거리는 나를 달래면서 큰 오빠는 사다리를 놓고 참새가 사는 초가지붕 처마 밑에 손을 쑥 넣어 참새, 새끼, 알 할 것 없이 잡아내어 작은 오빠가 마당에 피어둔 불에 사정없이 집어넣었다. 참새는 퍼드덕 몇 번 하고는 이내 죽었다. 하루 종일 참새를 쫓느라 애를 써 참새가 밉긴 했지만, 이렇게 불 속에서 퍼드덕거리는 참새는 불쌍했다.
“오빠야, 와카노? 너무 불쌍타.”
울상이 되어 펑펑 울었다.
“가시나야, 니 구워 먹이려고 이 오빠야가 굽고 있잖아. 알겠나.”
다 구운 참새에서 재를 털어 껍질을 벗기고 살코기만 소금에 찍어 입에 넣어주는 것을 거절하며 말했다.
“안 물란다. 불쌍타.”
“가시나야, 무 봐라. 맛있다.”
--- p.97, 「가을 벼논의 참새 쫓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