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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방향으로 걷기

온 방향으로 걷기

: 낯선 오늘을 안아주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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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에세이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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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202g | 128*175*10mm
ISBN13 9791196782689
ISBN10 1196782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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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끝날 무렵 정착했던 이 동네에서 몇 번의 새 계절을 맞이하고, 봄이 찾아왔다. 처음 맞이한 봄날, 어느새 무감각해진 길을 걷다가 올려다보니 연두빛 이파리 사이로 핑크빛 햇살이 은은하게 비쳤다. 벚나무였다.
매일같이 걷던 길 위의 모든 나무가 모조리 벚나무였다. 며칠이 지나고 금세 만개한 꽃들은 온 동네를 가득 메웠다. 꽃 동굴과 초록빛 우레탄 카펫을 따라 나는 또 걷고 걸었다. 짧은 분홍빛 시간들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 새로운 장면으로 피어난 이 길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 p.16

골목골목 건물 창문으로 비치는 반짝거리는 조명, 예쁜 트리를 꾸민 집도 보인다. 출근하는 길에 만나는 건물의 2층, 불투명한 창문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트리가 시야 가득 들어온다. 누군가의 크리스마스가 그 길을 스쳐가는 우리 모두의 크리스마스가 되는 순간이다.
--- p.24

출퇴근길에 반복되는 장면들이 있다. 대문을 지키는 강아지 한 마리. 감나무집. 화분이 가득한 꽃집. 문을 여는 정육점. 과일가게 좌판에 놓인 색색의 과일과 채소. 건축사사무소 입구에 곤히 자고 있는 개 두 마리. 커피를 내리는 사람이 휴대폰을 보고 있다. 모두 자기만의 일상을 지키고 유지해나가고 있다. 가끔은 이 반복적인 장면들이 나의 하루를 이루는 퍼즐 조각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같이 그 자리에서 내 일상을 완성시켜주는 모습들에 감사하다.
--- p.55

식물들은 늘 옳다. 하루는 지나가는데 화분마다 이름이 아니라 다른 인상적인 말들이 적혀 있었다. ‘회복중’이라는 화분과 ‘치료중’이라는 화분, 작은 종이에 적힌 단어가 귀엽고 애틋하다. 그곳을 지날 때면 ‘나도’라는 말을 붙여둔 채 햇살 아래 서 있는 상상을 하곤 한다. 나도 모르게 매일같이 화분의 상태를 지켜보고 응원하게 되는 일. 우리 모두가 일상을 회복하길 응원하는 일
--- p.64

진한 커피 향기가 좁디좁은 골목, 오랜 역사를 간직한 채 숨은 혜민당 곳곳에 배어 있었다. 높고 거대한 주변 건물 틈 사이로 여전히 버티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 공간이 가진 커다란 힘이 이 도시를 지탱하고 있다.
--- p.86

요즘 내 저녁은 한강으로 시작해서 한강으로 끝이 난다. 망원한강공원 근처에 앉아서 내려앉는 감동란 같은 해를 쳐다보고, 붉거나 분홍빛으로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다, 금세 캄캄해진 저녁이 되면 불 켜진 야경을 즐기다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한강을 따라 나는 비행기를 많을 때는 네 대나 볼 수 있다. 저 멀리서부터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서서히 서울의 땅 위로 가라앉는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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