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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나폴리스

제레나폴리스

[ 양장 ]
조선수 | | 2021년 02월 2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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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2월 22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36g | 128*188*20mm
ISBN13 9791160201499
ISBN10 1160201498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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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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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한가운데 오도카니 있는 Z교도소는 마치 오아시스 같았다. 칠 년 전 교도관 빌이 Z교도소로 왔을 때 샘은 사형수 동에서 지내고 있었다. 샘의 왼쪽 목에는 아주 커다란 흑색 점이 있다. 점은 클 뿐 아니라 오톨도톨하게 튀어나와 있어 몇몇 사람들은 그를 블랙 샘이라고 놀렸다. 그는 그 별명으로 불리는 걸 싫어했다.
---「Pull」중에서

방 네 개, 화장실 두 개, 다용도실과 베란다를 청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일하는 시간에는 집에 사람이 없으니 일하기도 편했다. 하지만 항상 고양이를 의식해야 했다. 자신을 부른 이유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고양이를 돌보는 일인 것 같았다.
---「제레나폴리스」중에서

그 당시 응모작은 총 구백칠십일 편이었다. 심사는 A, B, C, D, E, F에게 응모작들을 여섯 등분으로 나누어 배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일차 심사를 통과한 원고들이 속속 도착했는데 F에게 보낸 원고 뭉치가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보냈으나 F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참다못한 편집장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수소문한 결과 F의 애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는 것이었다. F는 넋이 나가 몇 편의 원고를 읽었는지 기억하지 못했고, 그 와중에 핸드폰마저 잃어버렸다고 했다.

편집장은 김에게 빨리 F의 집으로 가서 원고 뭉치를 가져오라고 했다. 김이 가져온 원고는 무려 백육십이 편에 달했다. 평균 잡아 한 편당 열 장에서 스무 장 정도라고 해도 무려 이삼천 장에 달하는 매수였다. 종이 뭉치를 바라보는 편집장의 배가 갑자기 더 불러 보였다. 편집장은 열이 난다며 김에게 창고에 가서 선풍기를 꺼내오라고 했다. 원고를 살펴보던 편집장이 갑자기 선풍기 쪽으로 원고 뭉치를 던지듯 흩뿌렸다. 원고 두세 편이 부메랑처럼 편집장 앞쪽으로 다시 떨어졌다. 편집장은 그것들을 집어 들었다. 그걸로 무얼 어쩌겠다는 것인가, 김은 순간 눈길을 돌렸다.
---「종이 호랑이」중에서

제가 댓글에 가해자처럼 등장하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막상 제가 악성댓글의 주인공이 되니까 동영상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 되풀이해서 돌아가요. 아이는 의식이 없는 채 앰뷸런스에 실려 갔고, 운전자는 의식을 되찾은 채로 앰뷸런스에 실려 갔어요. 나는 하도 놀라서 목줄을 꽉 쥐고 비트를 안은 채 집까지 거의 뛰어갔죠. 딱 삼십 초만 늦었어도 비트는 죽었을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남의 이야기라고 함부로 떠든대요?
---「아는 사람은 언제나 보이잖아요」중에서

십오 년쯤 가이드 일을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력은 작용한다.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강한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모여 앉는다. 특히나 뭔가를 먹을 때는 그 힘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일까. 먹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는 식습관 하나는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손톱」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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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먼 조상은 야생 호랑이라고 한다. 호랑이는 육식동물일 뿐만이 아니라 초식 본능도 있고 예민한 후각과 ‘어둠을 꿰뚫어 보는’ 비범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고양이의 감각은 호랑이가 지닌 야생 감각과 인간 감각 사이 어중간쯤에서 진화하는 중일 테다.

조선수의 『제레나폴리스』에 등장하는 반려묘와 주인공은 지배 관계나 우열 관계가 아니라 서로 평등하게 ‘마주’하는 공생 관계에 있다. 독특한 서사 형식의 소설 「아는 사람은 언제나 보이잖아요」의 끝, “실눈을 뜬 미묘가 내 쪽을 꿰뚫어 보고 있다”라는 문장은, 고양이와 인간의 ‘마주보기’가 동물 쪽과 인간 쪽 쌍방이 평등하게 교감하는 ‘공생共生 감각’을 향해 열려 있음을 암시한다. 이 공생의 감각은 개인주의적 공감각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 나아가 자연이 서로 교감하는 ‘근원적(온생명적) 공감각共感覺’이다.

부박한 감각이 난무하는 오늘의 문학 상황에서 원천적인 생명 감각의 실종을 비판하고 야생의 건강한 감수성을 찾는 의미심장한 수작 「종이 호랑이」, 몸의 소멸을 눈앞에 둔 사형수의 감각에 숨어 있던 어머니 손맛과 고향의 원초적 미각에 대한 향수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 문제를 성찰하는 보기 드문 명편 「Pull」 등……. 조선수의 첫 창작집은 오늘날같이 물신화된 인공적 감각이 지배하는 말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물과의 원초적 교감, 인간 존재에 은폐된 감각의 원천 등을 깊이 성찰하고 추구하면서 인간과 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개벽’의 묵시록적?示錄的 관점을 감추고 있다.
- 임우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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