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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2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276g | 128*188*30mm
ISBN13 9791104923135
ISBN10 110492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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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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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 나는 각성창에서 판초 우의를 꺼내 입었다. 으, 냄새. 그래도 이게 체온을 잃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렇다고 우의에 발열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대로 버틴다고 좋을 건 없다.
마침 20루블이 추가로 들어왔으니, 이걸 써먹어 보도록 하자.
‘라플라스.’
-네, 새 주인님.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질문이 지나치게 모호합니다.
‘나도 알아, 젠장.’
-대략적인 브리핑을 다시 받으시겠습니까?
‘10루블짜리 말이지?’
그건 너무 비쌌다. 내가 확실하게 포인트를 짚어서 제대로 된 질문을 했을 때 라플라스는 당장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고작 3루블에 훨씬 더 상세하게 말해줬었다.
즉, 질문의 방식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질과 양, 그리고 가격에 차이가 있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었다.
나는 끙끙대며 다시 머리를 짜냈다.
‘내가 다음으로 할 수 있는 행동 중, 가장 생존 확률이 높은 선택지를 가르쳐 줘.’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은 1루블짜리와 27루블짜리가 있습니다.
뭐야, 왜 두 개가 있어? 나는 분명 ‘가장’이라는 조건을 달았는데! 게다가 두 정보의 가격 차이가 왜 이렇게 커?
나는 그렇게 라플라스에게 따지려 들었지만, 곧 생각을 바꿔 먹었다.
[중독], [저주], [질병]의 세 상태 이상을 치유하는 것에 3루블이 들었다. 27루블짜리 정보라면 단순 계산으로도 그 9배의 가치가 있는 정보일 터였다.
하지만 27루블이라는 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것도 사실이다. 지금 내 전 재산을 모조리 털어 넣으라는 소리니 말이다. 그래서 라플라스는 1루블짜리 선택지도 줌으로써 내게 판단할 여지를 준 것일 터였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라플라스. 나는 가장 생존 확률이 높은 선택지를 달라고 했어.’
따지기로.
-27루블을 지불하시겠습니까?
라플라스의 대꾸는 쿨하기 짝이 없었다. 역시 생존 확률이 더 높았던 건 27루블짜리였나. 하긴 그렇지. 가격 차이가 몇 배인데.
‘그래.’
-알겠습니다. 27루블이 차감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새 주인님의 경조사비는 0루블입니다.
내가 직접 내린 결정이긴 하지만, 막상 잔고가 0이라는 소릴 들으니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새 주인님이 지금 계신 지점에서 15m가량 수직으로 내려가신 후, 새 주인님 시점에서 왼쪽으로 5m가량 가보시면 주변과 약간 색깔이 다른 바위가 보이실 겁니다.
-그 바위를 잘 살펴보시면 인공적으로 파낸 것으로 보이는 작은 구멍이 하나 있는데, 그 구멍으로 왼손 약지를 넣어보십시오.
라플라스의 말을 흥미롭게 듣고 있었는데, 그 시점에서 갑자기 설명이 툭 끊겼다.
-27루블로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래?’
어쩌면 화를 내야 할 국면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라플라스가 말해준 정보는 화를 내기엔 지나치게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내 육체 나이, 그러니까 지금 카를의 나이에 걸맞은 모험심을 자극하는 내용이기도 했고.
아니, 이런 거에 나이가 어디 있어? 남자는 아무리 자라도 마음속 어딘가 소년 시절의 모험심을 감추고 있다. 그리고 나라고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
‘일단 가봐야겠군.’
두근거림을 감추고 나는 로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앵무새 부리가 내 무게를 잘 버텨줬으면 좋겠는데. 일말의 불안함을 끌어안은 채, 나는 강하를 시작했다.
“헉, 헉…….”
분명 독과 저주, 질병으로부터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거친 숨이 다시 새어 나왔다. 하긴 단련을 제대로 하지 않은 몸이니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로프를 잡고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카를의 부드러운 손바닥 껍질이 벗겨졌지만 나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흥분해서 그렇겠지.
악전고투 끝에 나는 라플라스가 지정한 위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알아보기 힘들긴 하지만 확실히 주변 바위들과 아주 약간 색깔이 다른 바위가 보였다. 그리고 라플라스가 말한 위치에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도 있었고.
“후욱, 후우……!”
나는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라플라스가 말한 대로 약지를 구멍 안에 집어넣었다.
“열려라, 참깨.”
아무 생각 없이 지껄인 말이었지만, 바위는 소리 없이 안쪽으로 굴러 들어갔다. 내가 들러붙어 있던 바위였던지라, 내 몸도 자연히 안쪽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어쿠쿠.”
간신히 균형을 잡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입을 쩍 벌린 동굴 입구에 서 있었다.
“비밀… 동굴?”
그것 참 가슴 뛰는 단어다.
나는 잡고 있던 로프를 도로 각성창 안에 집어넣었다. 로프의 반대쪽 끝이 앵무새 부리에 꽉 묶여 있긴 했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로프는 깔끔하게 사라져 각성창 안에 수납되어 있었다. 이게 내 각성창의 몇 안 되는 유용한 점 중 하나였다.
뿌듯하게 가슴을 한차례 두들겨 주고, 나는 시야를 동굴 안쪽으로 향했다. 동굴 안쪽은 시꺼먼 어둠으로 가득 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대가 밤이기도 했지만, 동굴 안까지 달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달빛이 진짜 밝은 거였군.”
나는 새삼 실감하며 각성창 안의 손전등을 찾아 꺼내기 위해 다시 눈을 감았다. 에이, 이런 건 한 번에 해야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그러나 다음 순간.
“……!”
나는 소리 없이 전율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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