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논자들은 EAEU와 BRI가 유라시아에서 서로 교차하는 것이 두 통합 프로젝트가 기본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러시아와 중국이 국경을 공유하는 이웃 국가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충돌하는 경로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G. 로즈만(G. Rozman)에 따르면, 시진핑은 2013년 9월 중앙아시아 순방 중 실크로드경제벨트를 주창하면서 풍성한 선물을 내놓았는데, 이는 EAEU를 통한 푸틴의 공세적인 정책 추진과 충돌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충돌은 중화주의(Sinocentrism)와 ‘러시아 중심주의(Russocentrism)’라는 국가 정체성에 관한 주제가 중요성을 갖게 되고, 이것이 양국 관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 p.49
SREB의 확장은 중국 영향력의 발현으로 여겨지며, EAEU는 러시아의 새로운 영향권으로 간주된다. 러시아가 EAEU 내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EAEU의 실제 기능과도 관련되는데, 그것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EAEU의 의사결정이 러시아에 의해 완전히 지배되고 있다는 주장은 유라시아경제위원회(EEC)를 보면 경험적으로 지지할 수 없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배적 지위에 관한 수사는 EAEU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에 대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훨씬 더 중요한 것은 EAEU 회원국들 자신과 중국의 지도부가 이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것이다(Libman, 2017). 그리고 만약 EAEU와 SREB가 지정학적 프로젝트로 인식된다면, 대내외적으로 선언된 협력의 범위나 목표와는 달리 두 프로젝트의 양립성은 훨씬 제한적일 것이다. 결국 그것은 러시아와 중국 간 이해관계의 조화에 달려 있다.
--- p.82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중국으로 송유관과 가스관이 연결된 후, 이 국가들의 자원 수출 경로가 다변화되면서 대러 무역의존도가 줄어든 대신 중국의 비중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무역 비중이 커진 것만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감퇴되지는 않는다. 또한 제국의 피지배를 경험했던 이 나라들도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는 것을 무작정 바라지는 않는다. …… 러시아는 재정 여력의 한계로 인해 협력의 큰 그림에서는 EAEU와 같은 다자적 측면을 강조하지만 실질적인 문제들은 양자관계를 중심으로 해결하는데, 이 역시 러시아가 자국의 역내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한 방책이다.
--- p.109
1990년 초부터 노후화되었던 유라시아 지역의 철도, 도로 등 교통·물류 인프라는 각국 정부의 노력과 EBRD 등 다자개발은행의 금융지원과 민간상업은행들의 투융자에 힘입어 점차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이러한 다양한 금융지원에도 불구하고 유라시아 지역의 인프라 관련 지수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유라시아 지역이 지리적으로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임을 고려할 때, 이 지역 국가들은 MDB, 개발펀드, IB들의 자금을 유치해 인프라 부문의 재정비 및 신규 건설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중국 또한 2014년부터 시작된 국가전략인 일대일로 달성을 위해 유라시아 지역의 교통·물류 인프라 건설에 금융지원을 확대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
--- p.145
그리고 중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전력망 연계를 통한 GEI 프로젝트 추진을 ADB 및 해외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진행할지, 아니면 중국의 정책금융기관(국가개발은행, 중국수출입은행, AIIB)과 일대일로 관련 기금, 중국 로컬 기업들을 중심으로 진행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국가 간 전력망 연계는 막대한 자금과 연계 이후 국가 간의 전력공급을 관리할 수 있는 운영자들이 필요한데, 이를 모두 중국 주도로 진행하려면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따라서 ADB를 비롯한 다자개발은행과 해외 기업들과의 공조를 통해 GEI 투자와 전력망 연계 이후의 관리 부담을 줄이는 것도 중국이 다른 지역의 일대일로 관련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확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p.172
신북방정책의 일환으로 한국 정부는 프리모리예-2 노선의 일부인 자루비노 항만과 인접한 슬랴반카 항만의 현대화 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지원하는 등 우리 기업의 극동 지역 항만 진출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 또한 나진-하산 사업의 발전적 재개를 위해 나진-하산 등 초국경 지역에서 관련국들 간 다양한 분야의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진항을 리모델링해 컨테이너·크루즈·카페리 부두로 변경하고, 항만 배후 부지는 물류·산업·관광 복합단지 등으로, 그리고 나선특구, 훈춘, 하산 등 북·중·러 접경지역을 연계해 두만강 관광특구로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러한 사업들을 프리모리예(또는 중·몽·러 경제회랑) 프로젝트와 연계함으로써 교통물류를 활성화할 수 있고 중국 동북 지역과 한국 간 화물의 이동 거리, 시간, 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으며 북한의 참여와 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
--- p.203
일대일로의 본격적 추진 이후, 중국의 투자 증가로 인해 중앙아시아로의 중국인 이주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중국과 중국인 이주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졌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에서는 반(反)중국 감정이 확산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에서는 반중국 시위가 벌어졌다.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중국 이주자 통제를 강화하고, 현지에서 고용할 수 있는 중국인 노동자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도입했다. 일대일로 때문에 중앙아시아에서는 중국 공포증(Sinophobia)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제 일대일로에 대한 인식은 기회에서 위기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 p.229
방글라데시의 소나디아항은 비록 해군의 전략 거점이기는 하지만 그 군사적 가치가 스리랑카보다 못하기 때문에 전략적 연계점으로 승격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중국과 미얀마를 거쳐 인도까지 연결하려는 ‘경제회랑’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상업항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인도와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전제하에서 보면,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과 함께 인도를 양쪽에서 견제하는 주요 축이 되기 때문에 중국이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는 지역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소나디항보다 북쪽에 위치한 치타 공항이 산업단지 공동 구축과 일대일로 경제회랑 건설 과정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항구는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미얀마와 인도 동부 내륙까지 나아가는, 중국 경제협력 추진의 거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경제적으로 매우 빈곤한 방글라데시에 대한 과감한 원조를 통해, 이 두 항구를 영향권 안에 묶어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 p.260
매 5개년 계획을 3단계로 추진하여 2030년 완성을 목표로 하는 중-파경제회랑 사업은 회랑이란 이름 때문에 오해의 여지가 있다. 회랑이 직접적으로 의미하는 교통·운송 인프라 건설, 과다르항 개발 및 산업단지 건설 등의 비용은 총투자액의 약 30%에 불과하다. 투자액의 가장 큰 몫인 70%는 파키스탄 제조업 정체의 주원인인 만성적인 전력부족 문제 해결을 포함한 에너지 프로젝트에 배당되어 있으며,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되어 2023년까지 모든 프로젝트가 가동될 전망이다. 20%가 투자될 도로·항만·공항 개발 등 인프라 프로젝트는 2025년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파키스탄의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그 파급효과로서 정치·사회적 안정을 기대한다.
--- p.276~277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에서 실질적 자금 집행역을 수행하는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은 총사업비 약 86억 달러가 소요되는 TANAP의 건설 과정에서 6억 달러의 자금을 제공했다. 터키는 TANAP 파이프라인에 3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 기존의 천연가스 구매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가스를 공급받고 이를 타국에 재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으며,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 수입을 줄여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효과를 얻었다. 이는 터키가 단순히 아제르바이잔과 유럽을 연결하는 예전의 천연가스 통과국이 아니라, 카스피해를 중심으로 한 천연가스 경제회랑의 조성을 통해 지역의 에너지 허브이자 영향력 있는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 p.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