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 밤낮으로 고생이지만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것은 아름답습니다. 여럿이 공감하는 일이 항상 빠르고 단순한 인과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더군요. 그러니 꾸준히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는 느슨하되 질긴 연대를 만들어 열아홉 번째 『글짜씨』를 발간합니다. 어김없이 여러 편의 논문과 기고글이 낮은 곳으로 물이 고이듯 곳곳에서 모여들었습니다. 거센 역병의 울화가 무색할 만큼 차분하게요. 이렇게 소중한 사건에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 p.7, 심우진, 「글짜씨 19」 중에서
서체는 한 팀을 꾸려 만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혼자서 수많은 글자를 만들어가는 것은 태평양을 뗏목으로 건너는 것만큼 가슴 졸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팀으로 서체를 만들 때는 반드시 다른 디자이너가 만든 글자까지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껏 선배 디자이너가 그린 글자를 항상 참조하며 그리다 보니 제 눈도 단련되는 느낌이 듭니다. 혼자서 서체를 만들 경우 이런 과정은 경험할 수 없습니다. 대신 명작의 서체를 잘 관찰하고 참고하는 것으로 현재 만들고 있는 작업을 되짚어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 p.24, 이와이 히사시, 「이와이 히사시, 글자를 따라 산책하기」 중에서
「초설」 은 이름 그대로 첫눈을 닮은 글자를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그려낸 글자이다. 영감을 준 대상의 구체적인 형태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 감정이 전해질 수 있을까. 느끼는 감정은 모두 다르니까 모든 사람에게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이 원하는 감정은 선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첫눈은 단순히 ‘눈’이라는 단어보다 조금 더 순백의 풍경을 극적으로 선물해주는 느낌이다. ‘소복소복’ 보다 더 여린 ‘사박사박’에 가까운 소리가 나고, 단순히 눈썰매나 눈싸움 같은 눈에 대한 기억보다 많은 이들의 약속과 추억이 서려 있는 이미지로 느껴진다.
--- p.33, 채희준, 「활자 디자인, 활자 디자이너」 중에서
글씨에서 활자로, 활자에서 조판으로 이어지는 한글 시각 문화를 다시 온전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에게 교양 차원의 글씨 교육이 필요하다. 이는 사회 구성원 사이에 글씨에 대한 공통감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한편으로는 한글 글자체 변화 양상을 정리하고 분석하여, 각각의 양식과 조형 질서를 연구해야 한다. 한글 조형의 질서가 세워지면 글자체의 조형 판단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되어, 높은 품질의 활자체 개발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 첫 시도는 옛 글자체를 현대 사회 환경에 맞춰 개량하는 것이다.
--- p.43, 이용제, 「글씨에서 피어나는 활자」 중에서
「글자랑」 의 가장 중요한 점은 한글의 자모 공간을 사용자가 직접 조정하며 한글 폰트를 실시간으로 디자인하고 검토할 수 있는 기능이다. 또한 11,172자의 글자를 일일이 디자인하지 않고 같은 모임꼴에 속하는 글자를 한꺼번에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르고 효율적인 디자인이 가능하며, 자음·모음의 형태가 공간의 크기에 따라서 동적으로 바뀌는 ‘반응형 자모’ 기능이 구현되어 있다. 「글자랑」 은 전문가에게는 한글 폰트를 빠르게 프로토타이핑 해볼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며, 비전문가에게는 쉽고 빠른 폰트 제작을 가능하게 한다.
--- p.75, 유용주, 이가경, 「「글자랑」 : 모임꼴의 자모공간을 활용한 한글 폰트 디자인 인터페이스」 중에서
생각해보면 아라비아 숫자는 인류 역사 속 어떤 글자보다도 광범위한 지역을 여행해 왔고, 한 지역에 도착할 때마다 그곳 고유의 글자와 다투기보다는 조화를 이루는 쪽으로 유연하게 변신해왔기 때문에 그 형태 안에 많은 이야깃거리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정체성 때문인지, 현대의 숫자는 글자체 디자이너 입장에서 잘 그려내기 까다로운 형태를 지니고 있어 디자인할 때마다 즐거운 도전이 되어 준다.
--- p.93, 민본, 「숫자 이야기」 중에서
한글은 기둥에 점 하나를 더하면 ㅏ가 되고, 점 둘을 더하면 ㅑ가 되며, ㅏ를 뒤집으면 ㅓ가 되고, 기역을 돌리면 니은이 된다. 최소한의 조형 요소로 많은 소리를 담는 체계를 만들었는데, 쉽거니와 깊은 의미까지 지녔기에 여럿이 어울릴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함께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며 더불어 살아왔다면 아마도 알게 모르게 한글의 도움도 받지 않았을까. 이것이 한재준의 전시가 하고 싶은 얘기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 p.135, 심우진, 「한글·예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