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세대에 걸쳐 우리는 정신없이 일하면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어왔다. 너무 오랫동안 자신을 혹사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잊은 채 ‘마음 편히 노는’ 능력을 잃었다.
--- p.11, 「들어가는 말: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가?」
능률 숭배자란 어떤 이들인가? 그들은 끊임없는 활동이 미덕이며, 무슨 일이든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 집단이다. 그들은 항상 바쁘고, 자신들의 모든 노력이 시간을 절약하고 삶을 개선해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효율성은 환상이다. 그들은 실제로는 시간을 낭비하면서 능률적이라고 생각한다.
--- p.15, 「들어가는 말: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가?」
내가 겪고 있는 효율성 중독의 근원을 찾기 위해 나는 역사책을 뒤져야 했다. 그 원흉을 찾기 위해 1950년대, 1920년대, 20세기 전환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과거의 노동 관행을 살펴보았다. 종국에는 1600년대의 일상생활에 대해 읽기 시작했고, 다시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이를 통해 약 250년 전까지만 해도 일하는 습관이 완전히 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일과 효율성, 여가에 대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전부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으며, 매우 잘못된 것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 pp.45~46, 「1장: 삶의 속도는 왜 이렇게 빨라졌을까?」
하지만 우리는 조상들에게 ‘일’이 무슨 의미였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잘못 생각해왔을지도 모른다. 중세 소작농은 평균적으로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적은 시간을 일했고, 훨씬 더 긴 휴가를 즐겼다.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항상 일주일에 최소 40시간씩 일해야 했던 것 같지만, 사실 그런 관
행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현상이다.
--- p.48, 「2장: 증기 기관이 변화시킨 노동 습관」
그러므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근무 시간 단축을 요구하기 시작했을 때, 각 노동자는 새로운 보호법을 위해서가 아니라 “4~5세기 전 조상들이 일했던 방식을 되찾기 위해 싸운 것”이라고 소롤드 로저스는 이야기한다. 즉, 사람들은 도시로 이주하고 노동 환경이 대규모 생산 라인으로 바
뀌기 이전의 노동 관행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노동 시간을 둘러싼 싸움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영위했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 p.66, 「2장: 증기 기관이 변화시킨 노동 습관」
우리 조상들이 자신과 자손들의 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얼마나 고통을 겪었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잠시 생각해보라. 10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는 싸워보지도 않고 그 기반을 넘겨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장시간 일하고 퇴근 후나 휴일에도 업무 문자에 답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것이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며, 이런 업무 관행을 따르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행은 바뀔 수 있다.
--- pp.69~70, 「2장: 증기 기관이 변화시킨 노동 습관」
오랫동안 가톨릭교회는 신앙인이 천국에 가려면 선행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일하기를 꺼리는) 나태함은 7가지 대죄 중 하나다. 가톨릭 사제들은 야고보 서간의 다음 구절을 인용하고는 했다.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내 믿음을 보여주겠습
니다.” 루터는 자선단체에 기부함으로써 구원을 살 수 있다는 관행을 경멸했기 때문에 근면성과 검소함을 강조했다.
루터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근면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노고와 효율적 노동을 통해 선하고 믿음이 깊은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다고 가르치기도 했다. 루터는 ‘사후’에나 게으름을 즐겨야 한다고 믿었다.
--- pp.72~73, 「3장: 노동은 선이고, 게으름은 악이다」
‘오직 노력과 투지를 통해 위업을 달성한 남자(솔직히 그 당시에는 거의 항상 남자였다)’라는 비전은 아메리칸드림의 핵심이 되었으며, 이와 유사한 믿음이 유럽 여러 지역까지 사로잡았다. 더글러스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자수성가한 사람에 대한 내 이론은 간단히 말해 일 잘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물질적, 도덕적, 또는 지적 우수성을 지녔든 지니지 못했든, 성실하고 착실하고 끈질기게 해온 정직한 노동이야말로 그들의 성공에 대한 유일한 설명은 아닐지 몰라도 최상의 설명은 될 것이다.”
--- p.75, 「3장: 노동은 선이고, 게으름은 악이다」
시간이 돈일 때, 한가롭게 보낸 시간은 돈의 낭비가 된다. 현대 사회의 모든 스트레스의 밑바탕에는 시간은 너무 소중해서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 있다. 우리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어딘가에 쓴다. 우리에게 더 이상 여가가 없는 게 당연하다.
--- p.82, 「3장: 노동은 선이고, 게으름은 악이다」
8시간 노동이 표준으로 받아들여지기 무섭게, 노동자들은 승진을 하고 동료와 관리자들의 칭찬을 얻어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 이상 일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캘빈 칼리지 철학과 교수인 레베카 코닌딕 드영의 말이다. “우리 사회는 개인의 가치를 생산성, 효율성, 잠재력의 극대화 측면에서 측정한다. 따라서 바쁘게 지내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 p.83, 「3장: 노동은 선이고, 게으름은 악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는 1965년에 “오늘날에는 한 세기 전보다 오히려 더 신중하게 시간이 쓰인다. 사람들은 더 많은 급여를 받을 때 더 오랜 시간 일한다. 일이 여가보다 수익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 평균적인 미국인은 평균적인 영국인보다 1년에 140시간 더 일하며, 프랑스의 평균적인 노동자보다 300시간 더 일한다. 우리는 여가를 돈과 맞바꾸고 있지만, 급여가 많이 오르지 않았으므로 별로 좋은 거래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시간이 너무 값진 것이어서, 바비큐나 야구 경기를 하며 보낼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쉬는 날 하는 활동에 대해 불안을 느꼈다. 여가는 스트레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마음 한구석으로 그 시간에 벌 수 있었던 돈을 생각하며 속을 태웠다.
--- pp.90~91, 「3장: 노동은 선이고, 게으름은 악이다」
확실히 집과 사무실의 경계가 모호해진 탓에, 실질적으로 비업무 시간이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캔버라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오스트레일리아연구소가 말하는 ‘오염된 시간(polluted time)’을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휴무일에 업무를 처리해야만 하거나, 당직을 서거나, 엄밀하게는 근무 시간이 아닌데도 업무와 관련한 문제나 해결책을 고민해야 하는 데서 오는 현상이다.
--- p.100, 「4장: 시간, 돈이 되다」
컴퓨터와 통신 도구의 발전은 각종 작업을 하는 데 시간이 훨씬 덜 걸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듯이 몇 시간이고 계속 부지런히 일한다. 회사의 경영진은 21세기의 직장에서 여전히 19세기의 사고방식을 고집한다.
이런 상황은 ‘일은 주어진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완료된다’는 ‘파킨슨의 법칙’으로 일부 설명이 된다. 과학적인 원칙은 아니고, 역사학자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이 처음 피력한 경험 법칙이다. 즉 하루에 8시간 일하기로 계약했으나 실제 일의 분량은 5시간이면 끝낼 수 있다고 할 때, 5시간 안에 일을 끝내는 대신 주어진 8시간을 채우려고 일의 속도를 늦추는 현상을 설명한 것이다.
1세제곱피트의 질소가 팽창하여 집 전체를 채우듯이 우리는 25시간이면 처리할 일을 회의를 소집하고, 사소한 문제들을 토론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의제를 정하는 등 일을 더 복잡하게 해서 결국 40시간이 꼬박 필요하게 만든다.
--- pp.103~104, 「4장: 시간, 돈이 되다」
우리는 업무에 실제로 요구되는 시간과 상관없이 직장에서 8시간을 보내야 한다. 따라서 엄연히 근무 시간인데도 온라인 쇼핑을 하고, 진료 예약을 하고, 일상적으로 개인적인 용무를 처리한다. 마트, 병원, 관공서 같은 곳이 문을 닫은 뒤에야 퇴근한다면 이런 용무를 달리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누구에게나 본인이 오직 일에 집중하는 동안 집에서 개인적인 용무를 처리해줄 배우자가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가정생활을 사무실로, 일을 가정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p.104~105, 「4장: 시간, 돈이 되다」
우리는 이러한 가치를 내면화하여 스스로 기꺼이 헌신적인 신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장시간 근무라는 종교에 귀의하여,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단순히 승진을 위한 최상의 방법이 아니라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믿게 되었다.
--- p.113, 「4장: 시간, 돈이 되다」
핸슨은 이런 주장이 흰소리로 여겨지지 않도록, 자신의 철학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핸슨의 직원들은 1년의 대부분은 주당 40시간, 여름에는 32시간만 일한다. 그는 2017년 한 논평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중독은 질병이다. 우리는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고통을 응원할 게 아니라, 치료와 대처 방안에 대해 조언해주어야 한다.” 그의 말처럼 일중독을 질병이라고 한다면 질병 중에서도 최악의 질병이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치료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일중독’이라는 말을 칭찬이나 은근한 자랑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도움을 청하는 외침으로 생각해야 한다.
--- p.118, 「4장: 시간, 돈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