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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영화 속 기억전쟁

아일랜드 영화 속 기억전쟁

영미문화연구소 총서-04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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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153*224*20mm
ISBN13 9788968497957
ISBN10 8968497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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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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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억의 혼재

해방 후 아일랜드 가족의 재구성 : 캐살 블랙의 『코리아』
도일은 아일랜드 독립전쟁(1919-21)과 이어진 내전(1921-22)에 참전한 이후, 고향 호수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는 자신의 젊음을 희생하여 조국의 독립을 이루었지만, 젊은 시절 아내를 잃고, 아들 에이먼과 가난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간다. 한편, 같은 마을에 사는 모란은 도일과 앙숙이다. 아일랜드 내전 당시 모란은 1921년 영국-아일랜드 조약에 찬성하는 아일랜드 자치국의 편에, 도일은 조약에 반대하는 편에서 싸웠기 때문이다. 특히 도일은 전쟁 중 포로로 잡혀 있으면서 동료대원이 총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이래, 끊임없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어 모란에 대한 증오심이 강하다. 더욱이 내전 이후, 지역의 유지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마을의 근대화를 주도하는 모란과는 달리, 도일은 마을에 관광산업을 활성화 시키려는 모란의 계획으로 더 이상 호수에서 조업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면서 이들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이 갈등은 모란 가정에 비보가 날아들면서 복잡한 구도를 형성한다. 모란의 아들 루크가 미군으로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것이다. 루크의 죽음은 마을 사람들에게 미묘한 파장을 일으킨다. 그 이유는 모란이 루크의 죽음에 대한 보상으로 한 달에 250달러를 받는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도일의 아들 에이먼과 모란의 딸 우나는 사랑에 빠진다. 곧 이 두 청춘 남녀에게 위기가 닥쳐온다. 도일은 아들 에이먼이 자신과 원수지간인 모란의 딸 우나와 가까워지는 것을 못 마땅히 여겨 아들을 갑작스레 미국으로 보내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때부터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심화된다. 에이먼은 아버지가 우나와의 관계를 막고 자신을 미국으로 보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하여 보상금을 받으려 한다고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불신한다. 민족 해방이후에도 가난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비참한 자신의 처지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도일의 의도를 에이먼이 오해한 것이긴 하나, 에이먼은 끝내 미국행을 거부한다. 이들 사이 갈등의 절정은 도일이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 미국행 배표를 산 후, 에이먼과 마을 호수를 건너는 새벽에 발생한다. 미국에 가지 않으려는 에이먼은 아버지가 전쟁 중 사용한 권총을 꺼내 보이며 자신을 미국에 보내려거든 그것으로 자신을 쏘라고 말한다. 권총에 실탄이 장전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도일은 충격으로 흐느끼게 되고, 결국 이 둘은 배를 돌려 뭍으로 돌아온다. 이 부자를 선창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나는 아버지 도일에게 손을 내밀어 그가 배에서 나오도록 도와주고, 퇴장하는 아버지 뒤로 두 젊은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이 영화는 마무리 된다.

Ⅰ. 해방 후 아일랜드 영화의 방향
아일랜드 탈식민주의 학자 루크 기본스(Luke Gibbons)가 지적하듯이, 아일랜드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특수한 지역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206-07). 이를 강조하기 위해 그는 닐 조던(Neil Jordan)의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 1996)를 예로 들었지만, 할리우드식 영웅 서사 내러티브를 담고 있는 이 작품과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추구한 아일랜드 토착 1세대 영화감독들(조 코머포드(Joe Comerford), 밥 퀸(Bob Quinn), 팻 머피(Pat Murphy), 캐살 블랙(Cathal Black) 등)과 그들이 활동했던 시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다시 찾아온 경제위기와 근대화 프로젝트의 실패는 보수적인 가톨릭 부흥운동과 맞물려 많은 이들에게 해방 직후 1950년대와 같은 위기상황을 떠올리게 했다(McLoone 90). 비록 1980년 영화위원회가 설립되었지만, 경제위기로 운영이 중단되면서 아일랜드 토착 영화산업은 급속히 위축되었고, 1980-90년대 아일랜드 영화시장은 할리우드 자본에 의해 잠식당한다. 결국 아일랜드 영화는 미학과 형식의 혁신보다는 인물 또는 내러티브 중심의 양식화된 영화제작을 따르게 된다(Barton 88). 이러한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아일랜드 영화산업은 저예산의 단편영화 방식을 선택하지만, 곧 배급과 상영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영화는 여전히 주목할 만한데, 그 이유는 이들이 할리우드화 되지 않은 아일랜드성, 특히 문화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문화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내부에서 바라본 덜 신화화된, 덜 낭만화된 아일랜드의 실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일랜드 농촌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Quinn, Poitin (1978)), 가톨릭교회의 폭력성을 폭로하면서(Black, Our Boys (1981)) 수정주의적 면모를 보인다. 동시에 이들은 근대화와 함께 등장한 도시 빈민 문제(Black, Pigs (1984))와 소수자 문제 등을 다루면서 근대화 과정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형식적 측면에서 이들은 실험적이고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아방가르드 운동에 스스로를 위치시킨다(McLoone 85). 이러한 방식으로 토착 1세대 영화감독들은 아일랜드 내부의 문제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몰두해 왔다.
존 맥가헌(John McGahern)의 동명 단편소설을 각색한 블랙의 『코리아』(Korea, 1995)는 제목과는 달리 해방 후 아일랜드 가족 문제에 집중한다. 물론 이 사적인 가족 문제는 공적인 사회, 국가 문제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제목과 내용 사이 간극에서 발생하는 낯설게 하기 효과를 통해 이 작품은 아일랜드 가족과 사회 문제를 새로운 시선으로 고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를 배경으로 아일랜드 호숫가 시골마을에 사는 존 도일(John Doyle)과 벤 모란(Ben Moran) 가족에 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당대 아일랜드 사회 저변에 흐르고 있던 공적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내용면에서 『코리아』는 기존 영화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다룬 오이디푸스적 주제와 원수의 집안과 사랑을 다룬 로미오와 줄리엣의 정형화된 모티브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1952년 해방 직후 아일랜드 호수 마을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오이디푸스 갈등이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맨스 내러티브로 환원될 수 없는 독특한 요소들이 있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다루면서 그것의 원인이 어머니(의 부재)에 있지 않고 가족 외부의 문제, 즉 아일랜드 내전(1921-22)이라는 역사문제와 동시에 근대화에 관한 신, 구세대의 입장 차이에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블랙이 스토리를 강조하는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보다는 인물이나 상황 기저에 흐르는 정서를 표현하는데 주목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빈센트 브라운(Vincent Browne)과의 인터뷰에서 블랙은 쉽게 소비되는 할리우드의 영향력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자신은 아일랜드만의 문제를 아일랜드만의 사회에 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 원했다고 밝힌다(par. 21). 결국 블랙의 『코리아』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해방 후 아일랜드 호수 마을이라는 특수성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각 인물들이 처한 갈등의 양상과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추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블랙의 영화는 영웅 중심 내러티브를 지닌 할리우드 영화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결말을 향해 치닫는 내러티브의 힘보다는 오히려 그 힘에 저항하는 반복, 낯설게 하기, 그리고 아이러니와 같은 시적 요소들이 그의 영화에 담겨 있다. 이 저항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한 사회와 인물들 사이 일반화된 용어로 환원될 수 없는 미묘한 정서이다. 『서정시 이론』(Theory of Lyric)에서 조나단 컬러(Jonathan Culler)는 소설의 내러티브 구성과 다른 시적 특성으로 리듬, 운율, 각운, 돈호법, 그리고 후렴구(반복) 등이 있음을 주장하며 시의 특이성을 강조한바 있다. 소설적 내러티브와 그것의 부속물인 “연속성, 인과관계, 선형적 시간, 목적론적 의미”(sequentiality, causality, linear time, teleological meaning)(Culler 225)와 구별되는 시적 요소들은 블랙의 영화에 흐르는 정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시어나 이미지의 반복기법은 내러티브가 지닌 선형적 시간관과 전진적 움직임(forward movement)에 저항하는 중요한 힘이다. 은유나 상징을 통한 연상 작용 중 발생하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 정보의 간극 혹은 비약은 일종의 리듬을 만들어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따라서 영화 속 상징적 이미지가 등장하는 리듬을 파악하는 것은 그 영화의 특이성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한 영화에서 트라우마에 시달리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보이는 인물의 내면을 재현할 때 사용하는 몽타주 기법을 시적 특성과 관련하여 고찰할 수 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이 몽타주를 통해 상이한 이미지와 사운드 간의 충돌을 만들어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바 있다. 이는 내러티브, 즉 경험의 오래된 본질보다는 사상과 새로운 본질을 창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Monaco 452). 그렇기에 몽타주는 낯설게 하기 기능을 가지고 있는 시어의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영화 속 몽타주 기법을 통한 낯설게 하기 효과를 발견하는 것은 영화에 내재한 시적 특성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일이 된다. 마지막으로 내러티브가 가진 인과관계 법칙을 따르지 않는 시적 움직임으로 아이러니(irony) 기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겉으로 표현하는 바와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다른 현상에서 독자 혹은 관객은 화자의 권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영화에서 보이스오버 기법이 소설적 내러티브 기능을 한다면, 보이스오버에서 드러난 아이러니를 분석하는 것은 관객이 화자의 내러티브로부터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내러티브의 목적론적 의미에서 벗어나 인물과 상황에 내재한 정서를 거리두기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코리아』에서 내러티브의 힘에 저항하는 시적인 특성인 반복, 낯설게 하기, 아이러니를 각각 영화적 기법인 상징, 몽타주, 보이스오버와의 관계에서 분석하여 해방 직후 아일랜드 사회와 개인의 내면에 흐르는 절망과 희망의 공존이라는 정서를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첫째, 이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어와 전기 이미지의 상징성을 파악하고 그 이미지의 리듬을 고찰한다. 이들은 영화의 장면과 장면이 전환되는 순간에 등장하면서 영화가 결론으로 향하는 움직임에 제동을 걸며 시대상과 인물들의 정서를 드러낸다. 둘째, 이 영화에서 가장 실험적인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트라우마와 불안감을 표현하기 위해 블랙이 사용한 몽타주 기법이다. 그는 서로 이질적인 이미지와 음향을 파편적으로 결합시키면서 독자들에게 충격과 고통을 준다. 이는 당대 인물들이 경험했던 정서적 충격일 뿐만 아니라, 당대 아일랜드를 관통하는 집단경험임을 말해 준다. 셋째, 이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를 형성하는 아들 에이먼의 보이스오버 기능을 분석한다. 과거 회상을 위한 장치로서 그의 보이스오버는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지 못한다. 그의 보이스오버에 나타난 아이러니는 기성세대에 반대하는 신세대 역시 시대를 조망하고 의문을 제기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블랙은 그의 시적인 영화기법을 통해 기성세대가 가진 과거에 대한 향수와 트라우마,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가진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감이 모순어법처럼 뒤섞인 1950년대 아일랜드 상황과 정서를 보여준다.

Ⅱ. 상징과 반복
데니스 샘슨(Denis Sampson)과의 인터뷰에서 블랙은 그의 『코리아』같은 영화가 스토리를 추구하는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상징적인 요소들을 통해 일종의 “시각적인 시”(visual poetry)(5)로서 기능한다고 밝힌다. 이 시각적인 시는 전통과 근대, 식민지배의 트라우마와 해방의 환희, 피폐한 현실과 미래의 희망 등 모순적인 요소들이 공존하는 초현실주의적 상황이 펼쳐진 당대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방식이다.1 『코리아』의 전반적인 내용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해결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갈등 해결이라는 결말에 다다르는 내러티브의 전진적 움직임은 영화의 장면마다 저항을 받는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적 이미지들로 인해 이 작품은 단순한 오이디푸스적 갈등의 해결이라는 결말로 환원될 수 없는 독특한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영화 속 장어와 전기 이미지는 각각 해방 후 아일랜드 세대가 처한 상황을 반복적 리듬으로 드러낸다.
『코리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며 시적 효과를 만드는 것은 장어 이미지이다. 시나 노래에서 후렴구가 반복되듯이 가두리에 갇힌 장어 이미지는 영화 전체에서 독특한 리듬을 형성한다. 영화 초반 두 부자가 호수에서 잡은 장어들은 쇠창살 같은 가두리에 갇혀 보관된다. 이들은 곧 시장에 팔릴 운명이다. 가두리에 갇혀 꿈틀거리는, 가두리를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장면이 클로즈업으로 계속해서 반복되는데, 이 이미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으로 괴로워하는 에이먼의 모습에 이어 등장하며 그 상징적 의미를 드러낸다. 대표적인 예가 술에 취한 아버지 도일과의 대화 장면에 등장하는 장어 이미지이다. 도일은 민족주의 진영에서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내전에 모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는 아들 에이먼에게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는데, 내전 중 처형당한 소년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에이먼이 두려운 표정을 짓는다. 아버지의 경험을 듣고 공포에 질린 에이먼의 모습에 이어 바로 등장하는 장면이 바로 가두리에서 몸부림치는 장어이다(00:27:52). 에이먼은 전쟁의 고통을 직접 경험한바 없지만, 아버지의 트라우마를 전수받는 방식으로 전쟁을 간접 체험한다. 문제는 아버지의 트라우마가 아들의 미래를 결정짓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도일이 에이먼을 위해 미국행 배표를 사고 그를 미국으로 보내겠다는 계획을 말하자, 에이먼이 한 밤 중 호숫가에 쓰러져 절규하는 모습이 있다. 이 장면을 뒤따라 등장하는 것이 가두리 속 장어 이미지이다(00:47:06). 장어 이미지를 통해 기성세대의 가치에 속박된 신세대의 고통,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포스트메모리 세대의 절망을 파악할 수 있다.
장어의 상징적 의미와 함께 주목할 점은 장어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리듬이다. 장어 이미지의 갑작스런 등장은 관객들에게 충격을 준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에 몰입하던 관객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장어 이미지, 영화 전체에서 음산한 사운드를 동반하여 반복되는 그 고통스러운 이미지로 인해, 기존 내러티브를 따라가는데 방해를 받는다. 작품의 결론이라는 목적지로부터 순간마다 미끄러지면서, 비경제적으로, 산만한 방식으로, 즉 시적인 방식으로 시대와 인물의 정서인 불안과 긴장을 집요하게 보여주는 것이 장어 이미지의 반복 안에 깃든 블랙 감독만의 리듬이다.
인물과 시대의 기저에 흐르는 깊은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블랙이 선택한 또 다른 상징은 전기이다. 오프닝에서 장어의 클로즈업을 뒤이어 나오는 전기시설 공사 장면은 눈여겨 볼만하다. 블랙은 전봇대를 설치하는 인부의 발을 클로즈업하면서 구부러진 모양의 쇠갈퀴가 달린 특수 부츠를 부각시킨다. 괴기한 모양의 이 특수 부츠는 나무 전봇대를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 진 것이다. 구부러진 쇠갈퀴의 이미지는 몇 초 전에 나온 꿈틀거리는 장어의 모습을 연상시키면서, 작품의 내러티브가 가지고 있는 전진적 움직임에 제동을 건다. 쇠갈퀴 부츠와 장어의 연상 작용은 반복과 중첩의 효과를 통해 영화의 시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 이미지 유사성에 근거한 반복 효과와 더불어 이 장면에서 음성의 유사성을 통해 반복 효과 또한 발생한다. 전봇대를 오르는 인부를 보며 도일은 “일-렉트리시티”(eel-lectricity)라고 경멸어린 투로 발음하며 카메라 프레임을 빠져 나간다(00:03:17). 전통적인 삶을 고수하는 그는 급속히 근대화되어 가는 마을 분위기가 못마땅한 것이다. 여기서 도일의 발음은 앞서 제시된 장어(eel)의 발음을 연상시킨다. 물론 전기와 장어 사이의 의미상 관련은 없다. 순수 언어유희적 측면에서 관객은 영화 내러티브의 결을 거슬러 이전 장어 이미지를 상기하게 된다. 이처럼 이미지와 음성의 유사성에 의한 연상 작용을 통해 블랙은 『코리아』의 독특한 시적 리듬을 형성한다.
프레임 바깥으로 퇴장해 버린 도일과 대조적으로 프레임 안에 홀로 남아 호기심과 불안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전봇대를 올려다보는 에이먼의 모습을 통해 근대화에 관한 구세대와 신세대의 관점차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화에 관한 블랙의 관점은 세대갈등으로 정리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시골마을 전기개통식(rural electrification) 장면은 모란의 아들 루크의 장례를 치룬 이후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아일랜드의 근대화가 아일랜드 자녀세대들의 희생을 통해 이뤄진 것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모란 가정이 한국에서 전사한 루크의 보상금으로 전기라는 근대문명의 해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근대화 이면의 비인간적인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전체적인 색조인 저녁 어스름 검푸른 배경과 대조되는 우나의 집 창가로부터 은은하게 비추는 따뜻한 노란 전기 불빛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에이먼의 모습에서 근대화에 대한 평가는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특히 전기개통식 장면을 분석하면서 클리어리가 지적하듯이, 당대 아일랜드 사회에서 전기로 대표되는 근대화는 단순한 기술과 산업의 진보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식민역사로부터의 문화적, 심리적 해방도 의미한다(205). 블랙은 당대 근대화에 관련된 현상을 단순히 비판적이거나 낙관적으로 단순화, 추상화 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론적 프레임으로 일반화시킬 수 없는 미묘하고도 양가적인 정서가 이 시대의 기저에 흐르고 있음을 전기라는 상징적인 요소를 통해 보여준다.
시골마을의 전기개통식 장면은 그 앞뒤 장면들과 관계에서 나오는 리듬을 이해할 때 그 의미가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전기개통을 위한 마을 미사 장면 바로 직전, 장어 한 마리가 미끼를 물고 고통스러워 몸을 격렬하게 비트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때, 멜랑콜리하고 괴기한 사운드의 배경음악과 함께 겹쳐 나오는 또 하나의 사운드는 다름 아닌 미사 중 낭독되는 성서구절(요한 1:1-5)이다. 이 사운드의 겹침을 통해 블랙은 장어로 대변되는 에이먼과 신세대가 고통을 겪고 있는 이유가 종교(가톨릭교)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는 빛과 어두움의 대조를 통해 빛이 어두움을 이길 것이라는 유명한 성서 구절을 인용하며 아일랜드 근대화에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즉 근대화라는 (전기)빛은 그 마을의 어두움, 즉 악함을 물리치는 신성한 힘으로 여겨진다. 동시에 이 개통식 장면이 아일랜드 국가인 ?군사의 노래?(“The Soldier’s Song”)와 함께 축제 분위기로 마무리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블랙은 민족국가, 근대화, 종교 이데올로기가 서로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1950년대 정치, 사회적 배경을 알 수 있게 하는 이 삼위일체는 이전까지 근대화를 반아일랜드적으로 여겼던 아일랜드 가톨릭과 드 발레라 정권의 모순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들이 각자 존립의 근거를 상호 정당화해 주고 있음도 보여준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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