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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불의 딸들

밤불의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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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56쪽 | 482g | 128*188*25mm
ISBN13 9788932920979
ISBN10 8932920974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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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아 오처가 판틀랜드의 사향을 머금은 열기 속에서 태어난 밤, 그녀 아버지의 컴파운드 바로 바깥쪽 숲에서 불길이 맹렬히 번졌다.
--- 본문 중에서

스스로 침묵을 실천하고 에피아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바바였다. 다른 어머니들은 모두 딸을 데리고 축복을 받으러 가는데 바바는 왜 자기를 데려가지 않는지 에피아가 묻자 바바는 그녀를 때렸다. 에피아는 말이나 질문을 하지 않을 때만, 스스로 움츠릴 때만 바바에게서 사랑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아비쿠 역시 그러기를 원하는지도 몰랐다.
--- p.23

그날 밤 에피아는 초경을 했는데, 열다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이틀 만의 일이었다. 그것은 에피아가 예상했던 것처럼 파도의 세찬 돌진이 아니라 오두막 지붕의 한 곳에서 빗물이 똑똑 떨어지듯 조금씩 흘러나왔다. 그녀는 몸을 씻고 바바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아버지가 바바 곁을 떠나기를 기다렸다.
「바바, 피가 나왔어요.」 그녀가 붉게 물든 야자수 잎을 보여 주며 말했다.
바바가 손으로 그녀의 입을 가렸다. 「나 말고 아는 사람 있니?」
「없어요.」 에피아가 대답했다.
「계속 이대로 있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누가 너한테 이제 여자가 됐는지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해.」
에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자리를 뜨려고 돌아섰지만 가슴속에서 뜨거운 석탄처럼 의문이 타올랐다. 「왜요?」 이윽고 에피아가 물었다.
바바가 에피아의 입에 손을 넣어 혀를 꺼내 날카로운 손톱으로 혀끝을 꼬집었다.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질문을 해, 응?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다시는 말을 못 하게 만들 거야.」 그녀는 에피아의 혀를 놓아주었고, 그날 밤새 에피아는 입속의 피 맛을 느꼈다.
--- p.25

「네 어머니는 어느 판티 가족의 노예였어. 주인에게 강간당했지. 그 사람도 대인이었고, 대인들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니까. 〈약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응?」 에시가 시선을 돌렸지만 아브로노마는 계속해서 속삭였다. 「넌 네 어머니의 첫 딸이 아냐. 네 위로 하나가 더 있었어. 우리 마을에는 헤어진 자매에 대한 속담이 있어. 그 자매는 서로의 그림자와도 같은 운명이고, 연못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살아야하지.」
--- p.68

지하 감옥 바닥에 쌓인 오물이 에시의 발목까지 찼다. 이곳에 이렇게 여자들이 많았던 적은 없었다. 에시는 숨을 쉬기도 힘겨웠지만 어깨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공간을 약간 만들었다. 그녀 옆의 여자는 지난번 군인들이 준 음식을 먹은 뒤 쉬지 않고 싸대고 있었다. 에시는 자신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던 지하 감옥에서의 첫날을 떠올렸다. 그날 그녀는 똥이 이룬 강에서 어머니가 준 돌을 찾아냈다. 그녀는 돌을 바닥에 묻고 때가 되면 찾으려고 벽에 위치를 표시했다.
「쉬, 쉬, 쉬.」 에시가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속삭였다. 「쉬, 쉬, 쉬.」 그녀는 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 p.79

퀘이는 울고 싶었고 이런 욕구가 당혹스러웠다. 그는 자신이 성에 사는 아이들처럼 혼혈아고 다른 혼혈아들처럼 어느 반쪽도, 아버지의 흼도, 어머니의 검음도, 영국도, 황금해안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음을 알았다.
--- p.92

「다음.」 탄광 감독이 외치자 부보안관이 H를 그의 앞으로 밀었다. H는 자신과 함께 쇠사슬에 묶여 기차를 타고 온 열 명의 남자들이 검사받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들 중 일부는 남자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H는 열두 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 소년이 기차 한구석에서 떠는 것을 보았다. 소년은 부보안관 일행에게 떠밀려 탄광 감독 앞에 섰을 때 바지에 오줌을 싸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소년의 발치에 고인 물웅덩이로 아이의 몸 전체가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소년은 너무 어려서 탄광 감독이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은 그런 채찍을 본 적이 없었을 것이고 부모님의 입을 통해 채찍에 관한 악몽 같은 이야기들만 들었을 터였다. 「큰 놈이오. 안 그렇소?」 부보안관이 H의 어깨가 얼마나 단단한지 탄광 감독에게 보여 주려고 손으로 꽉 쥐면서 말했다. H가 그 방에서 가장 키가 크고 힘도 제일 셌다. 그는 기차를 타고 오는 내내 쇠사슬을 끊고 도망칠 궁리만했다.
--- p.239

윌리는 처음 할렘에서 느낀 기분을 평생 잊지 못할 터였다. 프랫 시티는 광산촌이어서 모든 것이 땅속에 묻힌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할렘은 하늘에 관한 곳이었다. 건물들이 윌리가 지금까지 본 그 어느 것보다 높았고, 많은 건물들이 모여서 긴장된 모습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었다. 처음 마셔 본 할렘의 공기는 깨끗했다. 탄가루가 코로 들어와 목구멍에 닿거나 맛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 p.305

마커스는 거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다가 가끔 다른 공간, 더 많은 가족들을 상상하고는 했다. 그런 상상에 골몰하다 보면 실제로 그들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어떤 때는 아프리카의 오두막에서 가장이 정글도를 들고 있었고, 어떤 때는 야자나무 숲 바깥에 모인 사람들이 머리에 양동이를 이고 가는 젊은 여자를 지켜보았으며, 아이들이 너무 많은 좁아터진 아파트나 쓰러져 가는 작은 농가, 불타는 나무 주위, 교실이 보이기도 했다. 그는 할머니가 기도하며 노래하고, 기도하며 노래하는 동안 그들을 보았고 그 상상 속 인물들이 이 방에 함께 있었으면 좋겠고 간절히 바랐다.
--- 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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