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의 이중주”(「코끼리 시간 여행법」)를 연주하는 자의 손을 보라. “깊이가 없는 빛으로 채워진 살갗”(「견갑의수」)이란 대체 얼마나 어두운 “시간의 빛”(「하트 에이스」)을 함축하는가? 어둠과 어둠의 이중주에서 “빛의 울렁임”(「청보리의 밤」)이 일고, 빛과 빛의 이중주에서 “날카로운 어둠”(「잔혹 투명 구슬」)이 스밀 때, 시인은 종신토록 그 빛과 어둠을 노래하고, 춤을 추고, 마침내 쓰러지며 시를 쓴다.
모든 것이 시가 되리라는 믿음을 뒤로하고,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없다는 절망도 뒤로한 채,
비계(飛階)의 위태에 직립의 아슬을 더하여 시를 빚는 자,
“죽음과 삶에는 이음매가 없”(「원숭이 가면」)다는 사실 앞에서, “입의 기울기”(「생체-나무」)가 온전히 생의 물매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 기울어진 틈으로 오해와 타락과 분노와 통한의 말들이 한없이 토설된다. 그건 “파멸의 동심원”(「암점」)에서 솟구치는 형적 없는 춤의 리듬. 그 리듬에 기대어 “나를 움직이는 파동들”(「한밤의 파레이돌리아」)에 혼신의 언어를 내어 맡길 때, 시간의 암점에서 태동하는 것은 모든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시다.
그러니 언어의 작두 위에 선 자가 채비할 것은 미래의 운산이 아니다. 절체(絶體)의 혼절은 이미 아닌 것이다.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사이의 대위법이 리듬을 타고 있다면,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큰 호흡법”(「청보리의 밤」)이 필요한 밤이라면, 지금이 그때이다. 모든 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 장철환 (문학평론가)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사랑을 발견하겠다”(김수영, 「사랑의 변주곡」). 김수영이 생활에 대한 치열한 반성을 바탕으로 생활의 ‘욕망’을 ‘사랑’과 ‘혁명’으로 변주한 것은 “눈을 떴다 감는 기술”, 즉 주체의 시선을 계속 갱신하면서 세계를 재발견하는 방법을 통해서였다. “타인의 시간이 입을 벌린다”(「빈집의 침입」). “문득 고유명사가 사라지고/발끝마다 맑은 물이 밟히는/가끔씩 뼈 부러지는 소리 들리는//열린 공간으로 비상하는 새들의 악몽/얼음의 암판들이 밀어 올린 융기의 시간”(「얼음 장미의 계곡」). 반면, 주영중은 ‘존재의 범람’이라는 차원에서 생활의 폭력성을 ‘사랑’으로 변주하고자 하는데, “너를 위해/침묵하며 다가가”고 “멈췄다가 다시 요동치는” 자기 변혁의 과정은 아름다운 것이자 끔찍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앞에 입을 벌리고 있는 “타인의 시간”에 참여하는 일, 즉 사랑과 바깥을 향해 “열린 공간으로 비상하는” 시간이 “감동적인” 시간이자 “악몽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자기 존재의 범람이 생활과 생존을 위해 타자에게 가하는 폭력이 아닌, 타자에게 돌아가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안과 바깥이 뒤집히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다른’ 움직임들에 대해 기대와 함께 불편하고 두려운 감정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작용을 동반하지 않는 작용은 없다.
- 김수이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