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나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지역에서 우리는 어떻게 문화예술교육을 펼쳐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은 지역과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인식이 우리 삶에 필수적이라는 필요성에서 출발한다. 개인의 정체성은 내가 살고 있는 국가, 지역, 마을에 뿌리를 둘 수밖에 없다. 개인은 지역을 근거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성장하고 정서적 연대감을 가지기 마련인데 지역의 개념이 모호하다 보니 그 범위를 한정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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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문화예술교육이란 기능 중심의 예능교육을 지칭하던 전통적인 개념과 사뭇 다르다. 이제 문화예술교육은 문화예술의 내재적 원리를 통해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고 성취하는 과정으로서의 교육이자 모든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 확대와 삶의 질 개선, 창조력 함양을 위한 정책 대상으로 이해된다. 문화예술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치는 인성계발, 정서 함양, 창의력 신장과 같은 전통적인 범주를 넘어선다. 그것은 양극화, 고령화, 과잉경쟁과 사회갈등의 심화, 가족해체, 고용불안 등의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정체성의 발견과 확립, 지역민의 삶의 질 개선, 지역경제와의 연계, 도시재생, 지역발전 견인이라는 무거운 과제와 맞물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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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도 장소의 고유성은 중요하다. 고유성이 문화예술의 자양분이 되거나, 지역 스토리텔링과 문화콘텐츠 창출의 질료가 되기 때문이다. 고유성을 이해하려면 질료를 찾아야 하고, 질료를 찾으려면 고유성을 이해해야 하니, 이 두 가지는 서로 긴밀히 엮여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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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제목은「자갈 망댕 우리집」이다. 평생 한 편의 시도 지어본 적이 없었던 서만선 님께서 깡깡이예술마을 시화동아리에서 발표한 작품이다. 남편께서는 부산항과 영도, 자갈치를 바삐 오가며 뱃일을 했을 테다. 매일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던 일이었겠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노심초사 마음 졸였던 마음이 엿보이는 시다. 항구도시 부산에서 삶을 일궈온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선명하게 상상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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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지역주민들은 같이 사는 재미와 의미에 공동체의 가치를 더해 가게 되었다. 마을 안의 다양한 생각과 경험들이 함께 모이는 공유지가 만들어지고 개인에서 마을로 지역으로 확장되어졌으며 공동체의 일로 함께 풀어나가고 공동체의 가치로 만들어나가는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마을 곳곳이 문화예술교육의 장이 될 수 있고 공동체가 함께 풀어가야 하는 고민과 과제들을 문화예술교육 속에서 놀이처럼 즐겁게 꺼내어 놓고 방법을 모색해 보는, 그리고 그 속에서 촘촘하게 혹은 느슨하게 엮어진 지역주민들의 ‘관계’ 가 다시 마을의 건강한 공동체 문화로 자리 할 수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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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도시재생은 “어떤 지역을 만들 것이가” 라기보다는 “누구를 위한 도시로 만들 것인가” 를 더 중요한 정책의 방향으로 삼고 추진해 왔다. 도시 쇠퇴와 지역 커뮤니티의 붕괴, 이웃과의 관계 등 삶에 있어 본질적인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문화예술이 등장했고, 문화예술교육의 중요함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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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연결 되어있는 느낌은 삶에 다른 차원의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유치원과 학교, 동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기회를 통해 그 안정감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 재난의 끝은 보이지 않지만, 재난 속에서도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에 관한 힌트는 보인다. 그 안에서 문화예술은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선’ 으로서 우리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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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에는 늘 새로운 길이 있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이든 사람과 일과의 만남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만남은 연결이고, 연결은 곧 새로움의 탄생이다. 문득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나를 오늘에 서게 한 삶의 굽이굽이에 만남과 새로운 길이 있었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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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문화예술교육으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날 키운 것은 지역과 대상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혈기만으로 세상에 덤비려던 나에게 세상을 보여주었고 내 사고를 확장해준 고마운 존재다. 앞으로 또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만남을 통해 나는 배워나갈 것이며 현실에 필요한 문화예술교육을 만들겠다!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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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찾는 빈집은 화려하지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도 아니다. 도시재생처럼 큰 설계가 아니라 ‘가장 황폐하고 쓸쓸한 곳’ 으로 찾아가는 문화예술교육의 소박한 이사다. 빈집들은 마치 쓸모를 다한 것처럼 보이지만 부산 근대의 기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그 옆에는 우리가 살고 있다. 집과 집 사이 버려진 폐허에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밥도 짓고 푸성귀도 심어 이 도시를 잇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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