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가 안전하기를 바란다. 처신을 잘하는 법을 배워야 해.” 아버지는 그가 아주 어렸을 때 그렇게 말했다. 이매뉴얼은 긴 나눗셈을 배우기도 전에 자신의 흑색도를 조절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화가 날 때 웃었고, 소리 지르고 싶을 때 소곤거렸다.
--- p.17
그는 고함치고 소리 지르고 방망이를 땅에 내리치면서, 이번만은 진정한 본모습으로 돌아간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예상하는 행동을 그대로 실현하면서. 앞에 있는 커플의 비명. 그 두려움의 정직함이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고 느꼈다.
--- p.45
그 순간, 마지막 생각과 함께, 세상의 일원으로서 느끼는 마지막 감정들과 함께, 이매뉴얼은 자신의 흑색도가 서서히 내려가다 완전한 무로, 0.0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느꼈다.
--- p.49
사실 땅바라기들은 누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으며, 단지 사람들에게 자기는 쓸모없는 땅바라기가 아니라는 당당함을 안겨줄 뿐이다.
--- p.67~68
“괜찮아.” 레슬리가 말한다. 예전 사람들이 그랬듯이, 레슬리가 늘 그렇듯이. 그리고 나는 레슬리의 거짓말을 들으니 행복하다.
--- p.90
나는 내가 한 짓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나면 거인이 된 기분이 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 말을 하고 나니 허약하고 멍청하고 겁에 질린 기분이 들었다.
--- p.112
그녀는 가능하다면 이 모든 게 조금이라도 덜 끔찍한 일이 되게 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리 애써도 그녀가 정확히 어떤 기분이었는지 절대로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아마 이게 다일 거라고, 세상의 종말은 아닐 거라고 느끼게 해주었다.
--- p.114
나는 마침내 글쓰기를 시도했다. 나는 글을 끄적거리며 뼛속에서 불길이 이는 자유로운 느낌을 음미했다. 내게 통제권이 있고 무엇이든 가능한 세상으로 이동된 채.
--- p.120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더 많은 혀를, 경험할 수 있는 더 많은 새로운 세상을, 내가 속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더 큰 힘을 갈구했다.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아주 외로웠다.
--- p.131
마룻바닥의 구멍 세 개가 열리고 각기 다른 받침대 세 개가 솟아 나온다. 받침대 A에는 경찰이나 가족, 그 외 누구와도 통화할 수 있는 홀로그램 전화기가 있다. 받침대 B에는 총이 있다. (진짜 총과 소리와 모양이 똑같은 비비탄 총이다.) 받침대 C에는 아무것도 없다. 터프가이 고객을 위해 마련한 선택지다. 거의 모든 고객이 (내가 그 모듈에서 일하는 동안 84퍼센트가) 받침대 B에 놓인 총을 집는다.
--- p.150
그가 내게 권총을 겨눈다. 나는 배역을 상기한다. 너를 알지 못하고 네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의 손에 네 목숨이 달려 있다.
--- p.153
나는 조용히 죽어 있다. 눈을 뜬 채로 하늘을, 고객의 눈을, 그의 인간성을 똑바로 응시한다.
--- p.154
80명쯤 되는 사람들이 서로 쥐어뜯으며 한데 떠밀려 우르르 몰려온다. 진열대와 서로의 몸을 밀쳐가며. 화재나 총격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을 본 일이 있는지? 딱 그런 식인데, 두려움은 덜하고 갈망이 더 강하다는 점만 다르다.
--- p.182
저게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야, 그녀가 말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이 날 좋아할 거야.
--- p.194
“야, 넌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눌러앉으면 안 돼.”
케이토가 세탁기 두 대에 눌린 날, 나 역시 그 무엇보다 그곳을 나가고 싶었다.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알았다면, 내가 버는 시급 10달러 10센트가 절실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일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 p.204
“당해도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네 마음 알아. 하지만 네가 누려야 마땅한 것도 있잖아. 넌 네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넌 죽지 않았어.”
--- p.244
루프의 사이클 만료 후 비대칭적 기억 보유, 그것이 이케가 우리에게 설명해준 최초의 변칙 현상이었다. 풀이하자면, 우리가 똑같은 하루를 계속 반복해서 살고 있는데, 아직은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이를 자각하게 되었고, 그 자각까지 걸린 시간은 사람마다 달랐다는 뜻이다. 굉장히 두려운 일이었다. 무한한 시간의 덫에 갇혀 있음을 깨달았는데, 그런 일이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 p.294
오래도록 우리는 몸을 이용해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 루프가 끊긴다면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미래 세대가 보고 알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손으로 작은 하트 모양을 만들기도 했고 때로는 우리 모두 서로를 껴안기도 했다. 모든 것을 끝장 낸 전쟁을 통과해 살아간 우리에게도 사랑은 중요했다고 미래 세대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 p.322~323
딱 한 번 일어났으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하는 사건. 우리 모두 그 광경을 너무 여러 번 봤지만, 그래도 나는 운다. (…) 세계의 파멸도 끝은 아니다.
--- p.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