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가족의 경제적 생활은 기본적으로는 노동의 대가로 취득하는 소득을 기반으로 형 성?유지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질병, 장애, 노령, 사망, 그리고 실업과 같은 사회적 위험이 발생하여 이와 같은 기본적인 생활관계가 예정에 따라 기능할 수 없는 상황은 항상 존재해 왔다. 사회보장법은 사회적 위험을 보호하여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사회보험은 이와 같은 구상을 이끄는 대표적인 수단이었다. 사회보험은 노동을 통해서 얻은 소득의 일부를 적립하고, 실제 사회적 위험이 발생했을 때 이를 보호한다. 이로써 노동은 사회보장이 기능하기 위한 기반이며, 또 사회보장은 노동을 유인하는 매체가 되었다. 우리 사회를 기준으로 보면 대체로 1990년대 이후, 보다 뚜렷하게는 2007-8년 거의 모든 나라가 재정 위기를 겪으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강화되었고, 이에 따라서 노동의 안정성은 약화되었다. 이로써 노동과 소득, 그리고 사회보장의 순환관계가 유지되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 국가는 노동의 안정과 소득보장을 지원하여 사회보장의 기능 조건을 유지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순환구조에 편입될 수 없는 위험과 인적 대상을 포섭하여 보호하는 이중적 과제를 수행하여야 했다. 이와 같이 국가과제의 폭이 넓어지면서 여러 층위(層位)에서 다양한 방법에 대한 정책 선택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 이와 같은 다층적, 그리고 다원적 차원에서의 정책 결정에 있어서 그 타당성과 정책 집행의 효과를 예측하기는 어려워졌다.
위와 같은 상황은 사회보장법에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 사회보장법에 의한 지원 혹은 조정이 필요한 영역과 적용 대상, 그리고 방법론이 개방되어 있는 만큼 현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근시안적으로, 단기적인 정책 효과를 우선하고, 또 이로써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기 위하여 사회보장법이 형성되는 우려가 있다. 다른 한편, 오늘날 사회보장법이 국가적 및 헌법적 정당성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으며, 또 개인의 생활관계를 장기적으로 형성하는 중요한 매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사회보장법의 입법 및 심사에 있어서 체계와 이론, 그리고 원리와 원칙과의 정합성이 검토되고, 제도의 안정성과 지속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이때 최고법으로서 헌법과의 정합성이 중요한 요소이다.
이 책은 헌법재판소에서 사회보장법에 관한 결정을 비판적으로 정리하여 개인의 헌법적 권리를 충실히 보장하고, 또 사회보장법을 균형 있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형성하는 규범적 기준을 탐색하는 목적을 갖는다. 이는 헌법과 사회보장법 모두의 과제로서, 다음과 같은 단계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먼저, 사회보장법의 법률관계와 쟁점이 유형별로 정리되어 헌법 구조 및 규범에 편입하여야 한다. 다음, 헌법 규정 역시 사회보장법의 형성 및 심사기준으로 적용되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예컨대 인간의 존엄과 가치, 평등권 및 재산권, 그리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은 사회보장법의 법률관계와 연계되어 사회보장법의 특수한 규범 및 규범 구조를 반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입법형성 및 심사기준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작업에 있어서 헌법재판은 풍부한 소재(素材)를 제공한다.
이 책은 사회보장법의 분야별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분류하여 서술하였다. 즉 헌법적 쟁점을 기준으로 사회보장법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분류하여 서술하는 방법을 택하지는 않았다. 사회보장법의 개별 분야들이 독자적으로 고유한 규범적 및 급여의 특성, 그리고 기능 원칙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분야를 통합하여 헌법적 기준에 따라 재정렬하는 방법에 비해서 뚜렷한 장점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아마도 독자는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를 선택하여 읽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하였다. 다만 이 경우 일부 사회보장법 및 헌법적 쟁점과 서술이 중복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필자는 사회보장법과 헌법을 연구 영역으로 하여 왔기 때문에 이 주제를 전체적으로 서술하는 책을 쓰려는 생각을 하였지만 이는 오랫동안 막연한 구상에 머물러 있었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계기는 2016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었다. 이는 사회보장법에서 내부적 기능 원칙 사이에, 그리고 사회보장법의 목적과 헌법의 논리 사이에 긴장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사안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4년이 지났다. 연구의 범위는 넓었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혼자 감당하기에는 쟁점이 다양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광운대학교 김진곤 교수, 가톨릭대학교의 남경국 강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정민, 김지혜는 전체 원고를 자세히 읽어 주었다. 남경국, 김정민, 김지혜는 교정 역시 맡아주었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남철 교수와 손인혁 교수는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읽고, 또 격려해 주었다. 집현재 위호준 사장은 출판을 맡았을 뿐 아니라 세밀히 교정을 보아 필자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남긴다. 이 연구가 여러 생활영역에서 헌법의 의미와 효력,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진행 방향을 일깨워 주는 기여를 하여 왔던 헌법재판의 계속되는 항로(航路)에 도움이 되기 바란다.
2021년 2월 25일
전광석
---「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