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신 페스티벌이 조심스럽고도 날카로운 예술가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것은 자본주의로부터 탈출의 가능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순진하고 식상한 상상이 된 오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비효율적으로 그 가능성을 찾는 그들의 예술적 태도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지 무용계에서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도 함께 싹트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을 멈추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세계를 열어 주는 예술, 주체성을 강요하지 않고 우리를 무심한 풍경으로 데려다 주는 예술, 자연과 예술의 생태계를 재검토하고 우리의 삶과 다른 방식의 관계를 설정해 보기 위해 무모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예술.
--- p.8, 「김성희」 중에서
안무가 노경애의 작업에서 우선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어떤 ‘파열된 풍경’이다. 이를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했듯이 ‘늦음/말년성’(lateness)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본다면,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리라는 자각으로 인해 시간과 맞서 싸우는 하나의 방법과 같은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늦음/말년성’이라는 것은 무르익은 시간으로부터 흔히 떠올리는 성숙함, 화해나 타협, 조화로움의 징표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화해 불가능성,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 등의 국면들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 p.12, 「허명진」 중에서
책이 사라지기 위해선 우리에게 익숙하던 무언가가 필연적으로 파괴되어야 한다. 아니 책이 사라지면 우리에게 익숙하던 무언가가 필연적으로 파괴된다. 그런 점에서 ‘만약... 책이 없었다면’과 ‘만약... 책이 없어진다면’ 사이의 간극은 아득하다. 전자가 SF적이라면 후자는 혁명적이다. 물론 ‘무한한 반복’이 도입된다면 두 가정은 하나의 실재에서 만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 p.34, 「이한범」 중에서
여전히 춤은 우리가 세계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해 줍니다. 특히 춤은 세계를 언어적인 역량을 통해 이해하지 않을 수 있는 경로가 됩니다. ... 춤의 공간은 의미가 보존되거나 변화하는 곳이 아니라 의미가 생산되는 곳이고, 춤은 이 세계에 대해서 논평하기보다 그 자체로 여러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 p.57~58, 「마텐 스팽베르크」 중에서
춤은 외부의 어떤 것에 매어 그것을 재현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음악에 기대어 자기 내부의 충동을 밖으로 발산하지도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매어 있지 않으면서, 자신의 충동조차도 스스로 억제하면서, 그리고 어떤 관계 속에 있지 않으면서, 아무것과도 관계하지 않으면서, “공간 속에서 시간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 p.67, 「이경미」 중에서
이 퍼포먼스에서 인물-퍼포머는 어둠을 뚫고 자신의 존재를 낱낱이 각인시켜야 할 형상이 아니라 어둠의 공간 자체를 계시하는 형상이 되었다. 어쩌면 그가 수행하는 동작은 머뭇거림에 불과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조명이나 사운드처럼, 그는 어정쩡하게 공간에 개입한 듯 보인다. 이 형상이 거추장스러운 구두 소음을 일으키고 조명의 동선을 가로막는 잉여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이질적 존재는 그것이 은폐하려는 ‘빈 곳’을 도리어 ‘헤아릴 수 없이 증식’시킨다.
--- p.90, 「방혜진」 중에서
로이스 응, 호루이안, 호추니엔을 통해 교감되는 역사는 일본과 서구의 통치 아래 진행된 근대화로부터 자본의 가속화로 이어지는 중국의 패권에 이르는 아시아 공통의 궤적을 가시화하는 하나의 거대한 패턴이다. “그 누구의 죽음이든 내게는 손실이다.” 울리는 종은 아시아 각국을 위해 울리는 것이면서 아시아 총체를 위해 울리는 것이기도 하다. 세 작가가 경청하는 종은 공동의 운명을 축복하는 은은한 종임을 넘어 자본의 가공할 속도에 대한 ‘경종’에 가까워진다.
--- p.123, 「서현석」 중에서
식물이 되었다가, 파동이 되었다가, 동물이 되었던 퍼포머들은 이제 잠에 빠져든다. 오후 네 시의 느른한 빛이 기둥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와 그들의 어깨 위로 그림자를 늘어뜨린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진다. 시간이 다시 흐르는 것이다. 무용수들이 하나둘 일어나 떠나고, 공간에는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잠든 남자 무용수 하나만 남았다. 그는 꿈속에서 어떤 그물망 사이를 유영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저 너머 전각의 처마 아래에 날벌레들은 저마다 빛의 입자를 입고 반짝이며 관계의 좌표를 그린다.
--- p.136~137, 「김신우」 중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진짜 어려운 과제는 대피를 하거나 버리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그 한복판에, 마치 이번이 처음인 것처럼 남아 속도를 바꾸는 일이다. 고집스럽게 그곳에 발을 붙인 채 ‘지금 여기’를 일궈 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가 몰두하는, 우리가 천착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조건들, 그 환경의 생태계들을 바꾸는 일 말이다.
--- p.18, 「마텐 스팽베르크, 『그들은 야생에 있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