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나무도 봄이 되면 다시 피어나지만, 사람에겐 두 번 다시 젊음이 없다(枯木逢春猶再發, 人無兩度再少年)”
--- 첫문장
임보 시인의 진솔한 시 한 수가 생각난다. “아내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 때마다/ 내 앞에 가져와 한 숟갈 내밀며 간을 보라 한다./ … ‘좀 간간한 것 같은데’ 하면/ … ‘뭣이 간간허요 밥에다 자시면 딱 쓰것구만’ 하신다./ … ‘좀 삼삼헌디’ 하면/ … ‘짜면 건강에 해롭다요 싱겁게 드시시오’ 하시니/ 할 말이 없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고/ 아내 음식 간맞추는데 평생이 걸렸으니./ 정답은/ ‘참 맛있네’인데/ 그 쉬운 것도 모르고.”
--- p.59
이발이 끝나자 아버지는 머리를 만지며 한마디 하신다. “아 참 개운하고, 이발도 아주 잘됐다.” 옆에 있던 아내가 “아버님은 거울도 안 보고 어찌 이발이 잘된 줄 아세요?”라 하자, 아버지 대답이 압권이다. “땅에 비친 그림자를 보니, 참 잘된 것 같구나.” 그랬다. 그날 햇살에 비친 마당은 아버지한테 거울이었던 셈이다. 아버지의 특기는 감탄이다. 늘 감탄을 달고 사신다.
--- p.83
제아무리 고생이 유익이 될 수도 있다지만, 곧 대학을 졸업할 우리 아들 · 딸들의 겨울은 절대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른 따뜻한 봄날이 도래했으면 좋겠다.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부모의 입장에서, 그저 간절하게 기도할 뿐이다. 우리 아들 · 딸들의 따스한 봄날이 속히 찾아와 주기를….
--- p.108
“아파도 참고 해야 한다”라는 이 말 한마디에 나는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다. 아니 인생에 대한 큰 깨달음 같은 것을 얻었다. 어쩌면 촌로(村老)의 이 평범한 한마디가 인생살이의 정답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 아파도 참고 견뎌야 한다
--- p.122
요즘 들어 크게 유행하고 있는 어휘가 하나 있다. ‘독친(毒親)’이다. ‘자녀 인생에 독이 되는 부모’라는 말이란다. 분명 자녀 입장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일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 볼 때, 이런 표현은 참으로 섭섭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부모가 자녀에게 독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부모의 심정을 몰라도 너무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하지만 자녀 입장에서는 또 다를 수가 있다.
--- p.136
한쪽에서 자그맣게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할머니 한 분이 지난 장날에 산 포장을 노끈으로 바꿔 달란다. 주인아주머니 왈, 자기 가게 물건이 아니라서 그럴 수가 없단다. 오늘 문을 열지 않은 옆집 물건인 것 같은데 그것을 자기에게 바꿔 달라고 할머니가 떼를 쓰신단다. 울상으로 두 손을 비비는 할머니의 모습이 참으로 짠해 보인다. 옆에서 보고 계시던 어머니가 우리 집에 필요할 것 같다면서 대신 사 주신다. 그제야 할머니 얼굴에 화색이 돈다.
--- p.148
영화를 다 보고 아내와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데,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중간에 끼어들어 우리 부부는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이럴 땐, 끼어드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 주고 아내 손을 꼬옥 잡고 내려왔어야 했다. 이것이 영화에서 배운 교훈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내가 바로 뒤따라 나오는 줄 알고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왔고, 아내는 뒤에 처져 오면서 남편의 무심함에 열이 오를 대로 올랐던 모양이다. 그날 밤 귀갓길은 두 번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내 자신의 철없는 행동이 죽도록 미워서….
--- p.224
한때는 두 살 어린 나이 때문에 가슴을 쳤던 것이 지금은 더 유익이 되고 있다. 그렇다. 그 덕분에 58년 개띠 친구들보다 2년을 더 봉급 받고 일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것을 “인간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던가?
--- p.228
“고목봉춘유재발, 인무량도재소년(枯木逢春猶再發, 人無兩度再少年).” 즉 “마른 나무도 봄이 되면 다시 피어나지만, 사람에겐 두 번 다시 젊음이 없다”라는 의미다. 한 번뿐인 우리네 삶….
--- p.240
“나는 이렇게 살지만 너희들은 절대 그러면 안 돼.” 이 말은 당연히 부모의 삶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자식들은 그 반대 모습으로 잘 살아가라는 의미로 하는 말이다. 부모의 무한한 애정을 담은 ‘사랑의 화법’이기는 하지만, 부모를 배우며 자라는 자녀에게 할 수 있는 이상적인 교육 방식은 아님에 틀림없다. “최소한 네 아빠처럼만 살아다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 p.247
‘노익장’의 반대말은 ‘미로선쇠(未老先衰)’다. 늙기도 전에 먼저 쇠한다는 말이다. 청운의 뜻을 펼칠 문이 넓지 않아 답답한 시대지만, 우리 젊은이들이 반드시 피해야 할 말이요, 늙어 가고 있는 내가 경구警句로 삼아야 할 말이다. ‘선쇠先衰….’
--- p.265
“천 년 동안 수양을 해야 함께 베개를 벨 수 있다(千年修來共枕眠)”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부부의 인연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장윤정의 노래 ‘초혼’이 생각난다. 가슴을 후벼 파는 내용이다. ‘부를 초招, 넋 혼魂’. 떠나 버린 인생 짝지의 혼을 부른다는 뜻이다. 그동안 함께 살아왔던 내 사람, 알고 보면 ‘스치듯 보낼 사람’이 ‘어쩌다 내게 들어와’ 내 아내가 되고, 내 남편이 된 것이란다.
--- p.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