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바다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바다는 전혀 다르다. 살아 있는 내가 죽어 있는 나에 대해서도 그렇게밖에 보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왜냐하면 내 삶은 죽음을 억압하는 일 -- 내 뚝심으로 죽음을 삶의 울타리 안으로 밀어넣는 노력 외에 다른 것이 아니므로. 어느 날 죽음이 나비 날개보다 더 가벼운 내 등허리에 오래 녹슬지 않는 핀을 꽂으리라. 그래도 해변으로 나가는 어두운 날의 기쁨, 내 두 눈이 바닷게처럼 내 삶을 뜯어먹을지라도.
지치거라, 지치거라, 마음이여...... 오늘 이곳에 머물러도 마음이 차지 않는 것은 본래 그대 마음이 낯선 여관이기 때문이다.
--- p. 210
인식은 상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끝없이 뻗어나간 얼음판 위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구멍을 넓혀가기(작은 구멍은 탄생이다-태어남은 근원적인 상처다.).
--- p. 141
신은 우리와 같은 공단(工團)에서 일하는데, 언제나 야근을 도맡아 한다. 그에게는 애인도, 누이도, 고향도 없다.
--- p. 17
'손 같은 고사리' '풍경 같은 그림' '시간 같은 쏜살'...... 한 번의 뒤집음은 혼란을 가져온다. 억압적 관계맺음 뒤의 무정부 상태. 시는 뒤집힌 곳에서 출발한다.
--- p. 197
사랑은 언제나 죽음을 낳는다. 죽음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우리는 셋이서 산다-너와나, 그리고 파산(破産) 혹은 끝장.
--- p.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