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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91189205911
ISBN10 118920591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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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메뚜기

갈댓잎에서 각시메뚜기가
무당사마귀에게 잡아먹히는 순간이
저토록 숨 가쁜 일이다

부풀려
퍼들대는 몸
노란 알들을
또 옥 똑.
떨어뜨리는

저 물큰한
찰나가
영원을 향하는 것이니
――――――――――――――――――――

껍질을 읽다

열매가 노란 껍질 안에 있다

속껍질에 둘러싸인 알맹이가 말없이 익어 간다

“껍데기는 가라”는 말의 맛은 무엇일까

꽉 움켜쥔 껍질이 두께를 늘리며
영양분을 저장하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것은 흠이 아니니
발가벗은 채 점등點燈으로 내건다

쓴맛이 배어든, 이도 안 먹히던 껍질이,
탐스러운 열매를 품는 것이다
――――――――――――――――――――

늙은 호박

들녘을 지나다 늙은 호박을 만났다

성근 바랭이 풀밭, 짙푸른 풀은 퇴색하는 것이다

늙는다는 건 익어간다는 것

불볕과 우레와 무서리를 지나온
끝물로 남은 맷돌호박

구부정한 불빛의
솔잎 불 지펴 넣은 무쇠솥 안에서
돌덩이처럼 무겁던 살덩이가
무르게 풀어져,
놋그릇에
나누어 담기던
겨울밤,

기억의 언덕 아래를 미끄러진다
모과에 관한

노란 모과가 식탁 위에서 썩어간다
잘 익은 것일수록 귀퉁이에
먼저 생긴 검버섯

사막의 능선을 넘듯, 몸속 향을 내뱉으며
쪼그라든
모과,
매끄럽고 두꺼운 껍질을
놓아버린다

썩는다는 건,
돌아갈 길을 찾는 것이다
――――――――――――――――――――



달맞이꽃밭이었다

언덕 위로 내려온 둥그런
달빛 받아 안은 노란 웃음들
낮이 밤으로 흘러들어
한쪽의 판세가 기울어지듯,
만개滿開에 다다랐던
꽃들이
손 털고 떠난,
틈새를,
풀들이
짙푸른 기세로 일어서고, 있는
――――――――――――――――――――

여뀌꽃

성북천 일대를 분홍으로 물들인 여뀌꽃
바람에 찰랑인다

매캐한 소음의 포크레인,
실개천 물길을 가로막고
바닥에 쌓인 모래를 퍼 올린다

꽃과 풀을 구분할 리 없는,
뒷일 생각 않는 포크레인 무정한 삽날이
이제 막 분홍빛 고개 총총히 내민 꽃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흙더미 속에 묻힌
여뀌꽃
비명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

수목한계선

빗자루가 걷어낸 거미 집 자리에
거미는 다시 실을 뽑아
집을 짓네

그만둘 수도 없고, 손을 털도 수 없는
바람의 심술에 출렁이는 집

더 뻗어 나갈 수 없는 수목한계선으로,

고층빌딩에 매달려 유리창을 닦는 사내
하루치 먹이를 부지하는 일이
허공에 실을 뽑는 거미와
다름없네
――――――――――――――――――――

큰 소리가 나올 법한데

그냥 넘어가 준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막 핀 꽃잎 힘껏 흔들어버리듯
큰 소리가 나올 법한데
허물을 캐물을수록 봄날이 구겨질 테니

목련꽃 눈부신 아침
다 수긍이 가지 않아도
딱 부러지게 자를 수 없는 그쪽 사정
눈빛 나누는 일이 더 힘들어
고개나 수그릴 뿐인데,

눈짐작으로도 작지 않은 실수를
웃고 넘기자고
두툼한 손 내민다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아침이 시끄럽지 않게 되니
벗어놓은 외투 다시 걸치듯,
옆구리 망가진
흰색 쏘나타 운전대를 돌려
미끄러진다
――――――――――――――――――――

143번 시내버스

힘겹게 버스에 올라선 노인,
흔들리는 버스 손잡이에 붙잡혀,
마른나무로 서 계시다

“노약자석은 비워두거나 노약자에게 양보” 하라는
차내를 울리는 방송으로
뒤통수로 날아와 꽂히는
따가운 눈총 따위야 아랑곳하지 않는,
스마트폰 화면에 얼굴을 묻거나
짐짓 눈 감는다

이토록 꽉 막힌 통로라니
구부정한 몸이 바닥을 짚고,
모래에 꽂힌 막대처럼 휘청여도,

목을 빼 기다려도 가뭄에 콩 날 확률을 기대할 수 없는
다들 청맹과니가 되었는지, 벽을 마주하듯
꿈쩍 않던 이 상황을
바꿔놓은 것은,
고개 꾸벅이다 깨어난 중년의
아주머니인 것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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