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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강에 그리운 사랑 있네

아무르강에 그리운 사랑 있네

문학의전당 시인선-337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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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80g | 126*205*8mm
ISBN13 9791158965105
ISBN10 115896510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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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년 전 지구상에 벼를 심으면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언어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예조판서 김상헌이 소녀 나루에게 사용했던 젖은 도포 소맷자락의 언어

〈전원일기〉에서 일용 엄마가 논일 가는 창수 기흥이 응삼이에게 반복하던 깊게 주름진 언어

토스트를 먹고 선식을 먹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금세기 썰물의 페트병으로 밀려가는 언어

22세기 달나라로 신혼여행 가는 아들에게 캡슐 먹었냐로 대체될 것이 강력히 추정되는 추억의 언어
--- 「밥은 먹었냐」
――――――――――――――――――――――――――――――――――

고독하다는 말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고독해서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다
소주를 마시고 추억을 걷는 것도 흡사한 일이다
화분을 옮기고 물을 주는 일
콧수염을 기르는 일
푸들처럼 파마 하는 일도 알고 보면
다 고독하기 때문이다
강변으로 바다로 나가거나 산을 올라도
고독은 늘 그림자처럼 붙는다
의학계도 고독의 정확한 치사량을 모른다
고독 증세를 모르겠다는 사람은
그것을 잠시 멈추는 마취제의 약효일 뿐이다
잠자는 동안 고독 세포는 급속도로 증식된다
죽은 사람의 무덤이 영원히 고독한 것은 당연하다
누구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책으로 냈지만 너무 소박한 제목이다
고독의 역사는 인류와 함께한 것으로 알겠으나
인류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졌다
신들도 고독해서 술과 음악을 만들었고
사냥을 하거나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우리들의 시작과 끝은 고독이다
고독은 수억 년 동안 진화했다
지상의 모든 생물이 사라져도 고독은 남을 것이다
히포크라테스부터 현존의 의학계에서도
고독 바이러스를 치유할 방법은 마땅히 없다
가령 이 말에 반박한다면 대책을 찾아보시라
당신은 노벨의학상보다 위대한 상을 받아 마땅하다
이 말을 정리하자면 사실 고독해서 쓴 것이고
잠시 고독과의 정전(停戰)을 위해 쓴 것이다
이 글이 끝나는 시점에서 되풀이되는
고독과의 교전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 「고독의 역사」
――――――――――――――――――――――――――――――――――

도끼로 쪼갤 수 없고
톱으로도 자를 수 없다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

혼탁한 핏줄과 무뎌진 신경
깡그리 태워버리고
야물고 옹골찰 수 있다면

붉은 노을에 새긴 조약서에
벼락 맞은 대추나무 도장
쾅쾅 찍을 수 있다면

두 눈 딱 감고
꼿꼿하게
벼락 한번 맞아보고 싶다
--- 「벼락 한번 맞고 싶다」
――――――――――――――――――――――――――――――――――

우리나라 말이 조선과 달라
놀라셨지요

말과 글이 서로 맞지 않아
당황하셨지요

TV에 나오는 아이돌의 랩을
따라 하지 못하는 사람 많고
카톡, 이메일, 스물여덟 글자로는 어림없어

대왕님 놀라셨지요
대왕님 당황하셨지요

백의민족이 글로벌 민족 되고
턱뼈를 깎고 콧대를 세우고
한글날은 몰라도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는 다 아는

말과 글이 세련되게 진화하고
말과 글이 서로 맞지 않아도
백성들이 웰빙 하고 있어

대왕님 많이 당황하셨겠어요
--- 「당황하셨어요」
――――――――――――――――――――――――――――――――――

밭에서 딴 고추를 팔려고
어머니와 내가 저울질을 한다
비닐봉지에 1관씩 담아야 한다
1관은 3.75kg
저울 눈금은 4kg
나는 100g을 빼고
어머니는 100g을 더한다
덜어내는 내 손과
한사코 더 담는 어머니의 손
배웠다는 나는 뺄셈을 위한 손이었고
배우지 못한 어머니는 덧셈을 위한 손이었다

소나무 껍질 같은 손이
기어이 저울 위에 더해졌다
--- 「손의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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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해도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말발이 좋다고 한다. 말발이 좋은 것도 귀한 재주이자 재능이다. 말발은 칼이 되기도 하고, 방패가 되기도 하는 이중성의 얼굴을 갖고 있다. 그 말발로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 바로 한향 시인이다. 한향 시인은 독자를 즐겁게 하는 재주가 뛰어나고 또한 선(善)한 심성을 지녔다. 그가 첫 시집에 대한 소회(素懷)를 “나는 자전한다, 또한/공전한다.”고 밝혔듯이 나는 그가 결코 멈추지 않고 우주 속으로 더 깊숙이 나아갈 것임을 믿는다. 그것은 한향 시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지구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반짝일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 전윤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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