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는 현대시이되, 선험의 형식을 따른다. 그렇다고 그 형식에 얽매여서는 정형미학의 새로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조가 추구하는 미학의 진실은 새롭되 자연스러움을 이루는 데 있다. 이토록은 감성과 감각의 견고한 결속을 보여주는 흔치 않은 시인이다.
『흰 꽃, 몌별』은 온통 ‘몸의 말’, ‘몸의 정서’다. 몸은 ‘목숨’의 다른 이름이요, 드러난 ‘마음’의 표정이다. 거의 전편에 등장하는 몸 이미지는 발바닥/발등에서 무릎-엉덩이-가슴/늑골-등/어깨, 손과 목울대를 거쳐 얼굴에 이른다. 얼굴에서도 귀와 입-혀와 잇몸-눈썹과 이마를 샅샅이 훑는다. 그의 사유는 몸의 안팎을 무시로 넘나들며, 맨몸-맨살-맨발-맨손으로 분화한다. 이는 존재에 대한 성찰인 동시에, 생존의 고뇌를 직시하는 일이다.
이토록은 “깨진 부리로 비명에 쩡, 금을” 낸 한 마리 새의 주검을 통해 출구 없는 생의 비극을 관통한다. 유명의 경계에 “한 줌인 새의 무게가 그 깊이를 더했다”는 것은 놀라운 발상이다. 이 같은 인식은 “놓칠 수가 없는 생”, 그러나 “당신 붙드느라/색을 다, 놓친” 하릴없는 몌별의 정서나, “말랑한/혀조차 굳는/어둑한/생의 저녁”, 냉장고 문짝의 포스트잇에서 “당신이/차려 놓고 간/사무치는/시 한 편“을 읽는 의외의 반전으로 이어진다.
“남몰래 아이를 지운/마리아가 우는 밤”, “집은 또/산목숨 잡는/한 채의 통발일 뿐”, “나무의 맨살을 뚫고 떠오르는 꽃 한 척” 등은 통념을 깨트린 사유의 낯섦이다. 그는 끊임없이 인간의 생존에 밀착한다. 그러면서 “시절의 통점들”을 짚고, 관념이 아닌 “촉수”로 세상을 읽는다. 타자 혹은 이웃의 삶을 좇는 이 대목은 『흰 꽃, 몌별』의 분명한 착목점이다. 일테면 ‘맹인 안마사’, 접골원 앞에 꼬부라진 ‘노인’, 지하셋방 ‘날품팔이’, 편의점 ‘알바’, ‘비정규직’, 게다가 “불러 줄 이름도 없이, 어이 거기 인턴들!”까지. 그는 그렇게 “뭇 발자국 다 받다가 움푹” 팬 “물웅덩이”가 되는 것이다.
이토록의 시조는 “혀끝에/붉게 달군 말”이요, “한 소끔 끓어 목울대가 뜨끈”한 “생각”이다. “책갈피/다 뜯어낸 채/엎어놓은 백서들”인가 하면, “몸밖으로 쏟아진 한 자루의 비명들”이기도 하다. 현대시조가 그의 자질과 역량에 거는 기댓값이 크다. “세상이 캄캄해지”면 “우주의 먼 별이 오”리니!
- 박기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