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목사, 내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서이, 만나는 자매 있스까?”
--- 본문 중에서
그래도 행복하려고 한 결혼이었는데 정작 진짜 치러야 할 가혹한 대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체 건강한 이십 대 후반 젊은 부부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건조한 부부생활, 우리는 성의 기쁨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극심한 가뭄에 겨우 떡잎 하나 보듯이 하는 잠자리는 자기 다리를 긁는 느낌보다 더 뻔한 전희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터지는 신음 소리 하나 없는 고요한 삽입으로 이어졌다. 결말은 대부분 내겐 너무 쉬운 접이불루(接而不漏).
--- p.26
발치를 잡아채는 무언가에 이끌려 복도 창가로 나갔다. 깨금발로 서서 창문 밖으로 상체를 최대한 내밀었다. 새삼스럽게도 학교 정경은 너무나도 푸르렀고 분명 전에도 그랬을 짙푸른 녹음의 향기가 숨이 막히도록 ‘후욱’하고 한꺼번에 폐부를 찔렀다. 다행히 콧속으로 들어온 보드라운 명지바람이 목젖을 간지럽히며 놀란 가슴을 쓸어주었다. 달콤한 질식! 숨을 처음 쉬는 것처럼 몇 번이고 크게 들숨을 배속 가득히 그다음 천천히 날숨을 뱉었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생소한 욕구가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 아침부터 밤까지 나를 옭매던 공허감이 그 순간만큼 완벽하게 떠나갔다.
--- p.42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고 가슴이 미어졌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내가 살 것 같았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 그의 심장 소리를 한 번은 더 들어야 내 인생이 허무한 한낮 꿈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없는 나의 이십 대는 잘해야 거세된 젊음에 불과하고, 남은 인생도 아예 끝이 보이지 않는 좁고도 무서운 외길 낭떠러지 같지만, 한번 만날 수만 있다면 웃으면서 그를 보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p.103
“으으윽, 바보도 이런.... 머저리란 말도 아깝다. 이 병신 같은 년아, 생각 좀 하고 살지 그랬어.... 의문에 재갈을 물리지 말고, 첫날부터 생각 좀 해보지... 찬찬히 조금만 생각해봐. 상식적으로 ‘이건 아니다’라는 게 어디 한 둘이었어? 미련하게, 어떻게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자기 좋을 대로만 봐?.... 얼마나 우스웠을까? 쉽기는 또 얼마나 쉬워? ‘미세스 강’ 소리에 ‘뻑’ 가서 정신 못 차리고.... 그 흔한 미세스, 그게 뭐라고. 허어헉.... 손 한번 스쳐도 부들부들 떨며 어쩔 줄 모르고 포옹 한 번에도... 그 인간이 그걸 몰랐겠어? 그 인간 계산속에 놀아난 걸, 뭐? 하나님 계획? 섭리? 아... 어떻게 하지? 깔깔거리는 두 사람 비웃음 들려? 정말 안 들려? 병신아, 미칠 것 같지? 저 웃음소리. 그런데 난, 아아~ 하, 난 정말인 줄 알았어. 하나님이 보낸 사람인 줄, 그것도 주의 종 목사잖아? 목사가 어떻게.... 돈, 마음, 시간 다 바치고. ‘말하지 않아도 난 알아요.’ 그러면서 몸은.... 그래, 몸도 바치고 싶었지. 한 번도 남자한테 안겨 본 적 없었거든... 겉만 그렇지, 생생한 내 호르몬을 위해 제발 안아 주길 바랐지. 사랑받고 싶어서 몸이 달았었지. ‘한 몸’이란 말에 숨이 막힐 것 같았어, 그런 내 진심을 갖고 놀았어. 아니 짓밟았어.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깡통도, 그런 식으로는 짓밟지 않아. 내 마음 따위는, 그 인간에게는 쓰레기만도 못한 거지?”
--- p.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