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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호
국내작가 자연과학/공학 저자
출생지
경기도 수원
직업
시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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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호
국내작가 자연과학/공학 저자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칸트의 공간론에 관한 논문으로 같은 대학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학술교류처의 장학금으로 쾰른으로 유학, 헤겔의 논리학에 나오는 양적 무한 개념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던 중 귀국해 번역가로 정착했다. 《과학을 인간답게 읽는 시간》 《철학은 뿔이다》를 썼고, 《정신현상학 강독》(전2권)을 옮기고 썼으며, 《가끔 중세를 꿈꾼다》 《성찰》을 비롯해 몇 권의 시집을 냈다. 《물은 H2O인가?》 《신에 관하여》 《관조하는 삶》 《허구의 철학》 《인터스텔라의 과학》 《위대한 설계》 《기억을 찾아서》 《로지코믹스》 《헤겔》(공역) 《초월적 관념론 체계》 《나는 뇌가 아니다》 등 많은 책을 번역했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서울대대학원 철학과 석사학위
독일 쾰른에서 철학 공부

수상경력

1993 조선일보 신춘문예 『 시 당선』

작가의 전체작품

작품 밑줄긋기

에*스 2026.09.01.
Binge Watching-몰아보기, 정주행(12)오로지 바라보기만이 의미를 상실한 소비의 내재로부터 우리를 구원한다.(12)오로지 금식하는 영혼만이 바라볼 수 있다.(13)바라볼 수 있는 자는 자기를 비워, 아무도 아닌 자가 된다.(14)종교는 사물을 향한 주의를 전제한다. 종교적 주의는 '추구하기'가 아니라, '달라붙기'가 아니라 '바라보기'다.(15)디지털화는 우리를 만사가 곧바로 처분 가능하고 도달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고 소비 가능한 것에 익숙해지게 만든다.(16)알고리즘의 목적은 사람들을 의존하게 만드는 것, 사람들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것이다.(17)가장 이름답고 높은 기도는 바라는 바 없는 경청, 신의 침묵 속으로 파고드는 경청이다.(19)진실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서 열망해야 한다.(22)신이 인간을 찾아 나선다. 인간 쪽에서의 찾아 나서기는 탈진으로 이어질 따름이다.(23)hypomene(희랍어 인내)는 기다리기, 주의를 기울이며 충실하게 가만히 있으면서 한없이 참아내고 모든 충격을 흔들림 없이 견뎌내기다.(24)의지나 근육의 힘만 발휘할 줄 아는 자는 중력에 종속된다.(25)오직 주의 깊게 읽어야만 중력을 거슬러 더 높은 존재 영역에 접근할 수 있다.(26)공감과 존중도 타인을 향한 주의에 기반을 둔다.(28)주의 깊은 생각하기만이 바라봄에 도달한다. 바라보는 생각하기는 이제껏 존재하지 않던 것을 창출한다.(29)인공지능 연구에서 흔히 거론되는 주의는 문제 풀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주의는 알고리즘을 통한 정보 처리에 국한되며, 정보는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벗어나지 못한다.(31)모든 창조적 정신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미지의 원천은 간절히 비는 요청이 향하는 저 선이다.(33)시 쓰기는 자기의 시간을 차단함으로써 타인의 시간이, 너의 시간이 말하게 한다.(38)주의가 모든 의지를, 모든 의도를 내려놓고 나를 잃을 때, 주의는 최고로 응축된 강렬함에 도달한다. 나는 자기를 비워 아무도 아닌 자로, 순수한 매체로 된다.(42)과거에 개신교가 구원을 경제화함으로써 자본에 종사했던 것처럼 다시금 종교와 자본주의가 밀접하게 결합한다.(43)우리가 신을 사랑하여 자기를 포기할 때, 창조가 완성된다. '창조의 초월적 완성'으로서의 탈창조는 '신 안으로 소멸하기'다. 탈창조는 '소멸한 피조물'에게 '존재의 충만함'을 준다. 사랑에 기초하여 기꺼이 무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파멸하기가 아니라 더 높은 실재로 상승하기다.(51)신을 향한 사랑으로 나의 자아를 포기함으로써, 아무도 아닌 자,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됨으로써, 나는 신의 맑은 눈이 되고, 신은 그 눈을 통해, 나를 통해 자신의 피조물을 왜곡되지 않은 온전한 모습으로 본다.(55)나를 섞어 넣지 않는 순수한 바라봄에 도달해야 한다.(55)더럽힌다 함은 내가 보는 것에 권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다.(56)참된 실재, 참된 질서는 오로지 나를 완전히 꺼버릴 때만 경험된다.(57)우리가 순간에 완전히 녹아들 때, 내다보지도 않고 돌아보지도 않을 때, 우리는 영원을, 순수한 기쁨을 경험한다.(59)베풂이 초자연적이지 않으면 매매 행위와 마찬가지다.(68)사랑의 "보편성"의 원천은 빛과 마찬가지로 어떤 구별도, 어떤 경계 설정도 허용하지 않는 빈자리다.(73)'가톨릭'은 '전체에 관한'을 뜻한다. '가톨릭'은 '보편적'과 동일하다.(74)복수와 증오는 둘 다 대칭 강박에서 유래한다.(76)우리가 상상 속에서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그들이 우리에게 진 빚이다. 나 역시 내가 상상하는 나와 다르다. 용서는 내가 나를, 나의 기대를 명시적으로 도외시하는 것을 전제한다. 용서하는 사람은 다름을 명시적으로 인정한다.(78)노예화 혹은 굴복시키기가 의미하는 바는 내가 타인을 읽는 혹은 읽고자 하는 방식대로 타인이 그 자신을 읽도록 강제하기다. 반대로 정복하기 혹은 점령하기란 내가 나 자신을 읽는 혹은 읽고자 하는 방식대로 타인이 나를 읽도록 강제하기를 의미한다.(79)빈자리는 영혼의 초자연적 중심이요 경직된 구별이 발생하지 않는 장소다. 거기에는 타인과 구별되는 자아가 없으며, 구별에 기반을 둔 평가나 판정도 없다.(80)죄는 우리가 끊임없이 빈자리를 배반하고 환상에 불과한 그림들로 채우는 것에서 유래한다.(81)삶 자체가 시장과 상품의 형태를 띤다.(88)관조적 고요는 생각이 생각 자신을 고찰함으로써 새로운 생각 형태들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해준다.(90)위대한 고요가 지배하면, 의지는 모두 물러난다.(98)아름다움은 신의 모든 속성 가운데 우주 안에 구현된 유일한 속성이다.(104)플라톤에 따르면, 완벽한 정의의 화신인 이는 가장 큰 불의를 당해야 한다. 오직 외견상 극심한 불의를 당하는 사람만이 정의를 내세움 없이 정의롭다.(104)아름다움 앞에서 알맞은 행동은 바라보기와 기다리기다.(105)세잔:절대로 뇌의 논리에 순종하지 말아야 한다.(112)->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크리스 나이바우어)시몬 베유:물질은 인간에게가 아니라 신에게 순종할 때만 아릉답다.(113)참된 예술작품 앞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외침은 이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순종한다.(115)☆☆☆호모 돌로리스:homo doloris, 슬퍼하는 인간(119)☆☆☆아픔은 실재와 몸이 내밀한 관계를 맺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실재를 열어준다. 아픔은 존재를 몸에 정박한다. 아픔이 없으면 우리는 세계를 상실하고 존재를 망각하게 된다.(120)☆☆☆아름다움뿐 아니라 선함도 아픔을 거쳐 영혼에 도달한다. 아픔은 선함을 몸에 정박한다. 아픔은 타인의 윤리의 구현이다. 아픔이 없으면 자아가 가차 없이 고개를 쳐든다. 모든 배움에 몸이 관여한다.(124)아픔에 적대적인 진통사회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닮았다.(125)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아픔 속에서 태어난다. 아픔은 또한 새로움의 산파다.(127)☆☆☆아픔은 "육체가 된 진실"이다. 이별이 아프다는 것은 과거의 결합이 진실했다는 증거다.(127)시몬 베유:우리 문명에 대한 점검 혹은 비판이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은 어떤 올가미에 걸려 스스로 만들어낸 것들의 노예가 되었는지 통찰하려는 노력이다. 노예제를 이루는 두 가지 요소는 속도와 명령(132)시몬 베유:어떤 사람의 행위와 그 결과 사이에, 노력과 성과 사이에 타인의 의지가 끼어든다면, 그 사람은 노예다.(133)침묵을 강제하는 규율사회와 반대로, 신자유주의 정보 체제는 소통을 강제한다.(134)감정은 시몬 베유의 말마따나 "노동 속도를 늦추기" 때문에 규율사회에서는 억압당했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서사를 탑재한 상품이 일으키는 감정으로 소비된다.(135)☆☆☆디지털 우리는 우리를 정보 가축, 소통 가축, 소비 가축으로 변신시킨다. 가축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예와 다르다. 가축은 우리 안에서 봉기하지 않으며 우리를 떠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가축은 우리 안에만 먹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로서의 세계는 혁명을 허용하지 않는다.(136)2026.09.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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