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 상실Kuhn loss”이라는 개념이 있다.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개념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철학자 중 하나인 토머스 쿤Thomas Kuhn과 관련이 있다. 한 시기의 과학 연구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을 주목하고 패러다임의 교체를 획기적 혁명에 빗댄 것으로 유명한 쿤은 그렇게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때 일부 지식이 상실될 수 있고 실제로 상실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쉽게도 그는 그 상실을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지만, 오늘날의 과학철학자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장하석은 쿤 상실을 발굴하는 일, 더 나아가 복구하는 일에 무척 공을 들인다. 주류의 변두리와 바깥에서 소리소문없이 매몰되고 말소되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존중. 쿤 상실을 주목하는 장하석의 태도를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