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영규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바람과 설산의 언어로 자신을 단련해온 사람이다. 전문 산악인으로서 높고 험한 산을 올랐지만, 그에게 산은 결코 정복의 대상이 아니었다. 산은 인간이 이름과 소유와 자랑을 모두 내려놓고, 비로소 가장 연약한 존재로 서게 되는 자리였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능선 위에서 그는 배웠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른다는 것은,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일임을.
이번 시집 『엄니에게』는 바로 그 깨달음의 가장 깊은 고백이다. 그가 평생 오른 것은 산만이 아니었다. 그는 ‘어머니’라는 가장 오래된 산, 가장 깊은 골짜기, 가장 따뜻한 품을 향해 걸어온 것이다. 그의 시 속에서 어머니는 한 사람의 생물학적 근원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하느님의 마음이며, 존재의 첫 은총이다.
최영규의 시는 어머니를 추억하지 않는다.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움으로 부르고, 눈물로 더듬고, 뒤늦은 사랑으로 다시 안긴다. 그에게 ‘엄니’는 사투리의 호칭을 넘어, 삶이 가장 가난해졌을 때 돌아가고 싶은 본향이며, 모든 방황 끝에 인간을 다시 사람답게 세우는 첫 이름이다.
그는 산을 오르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배웠고, 바람에 흔들리며 중심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안다. 신을 끝까지 붙들어준 가장 깊은 중심은 산의 정상에 있지 않았고, 어머니의 낮은 사랑 속에 있었다는 것을. 『엄니에게』는 한 시인의 사모곡이면서,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첫사랑에 바치는 고백이다. 이 시집을 읽는 이마다 자신의 어머니를 다시 부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그곳에 산이 있었듯이, 언제나 그곳에 어머니가 계셨다는 것을. 우리가 살아온 길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언제나 어머니의 사랑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