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시인의 말 · 5
1부 넉 달 만에 돌아온 방 기일(忌日) · 13 임종 · 14 출상(出喪) · 15 엄니에게 · 16 조문(弔問) · 17 건망증 · 18 추억 · 19 첫사랑 · 20 사랑 · 21 그림자 · 22 침묵 · 23 내일 · 24 넉 달 만에 돌아온 방 · 25 문학소년 · 26 처음 · 28 그날 나는 · 29 2부 새벽 꿈에서 야간 훈련 · 33 화이트아웃 · 34 장마 · 36 동짓날 · 37 장맛비 · 38 폭우(暴雨) · 40 소한(小寒) 아침 · 42 소한(小寒) · 44 늦은 오후 햇살이 · 45 목소리 · 46 새벽은 · 48 기억의 방식 · 49 새벽 꿈에서 · 50 꿈 · 52 무얼하다 왔니? · 54 3부 사고 꽃이 될까 · 59 사고 · 60 봄, 소리를 녹음하다 · 61 어느 봄날엔 · 62 꽃향기 · 63 봄이 살며시 · 64 입춘(立春) · 66 이런 봄날엔 · 67 봄, 소나기 · 68 봄 · 69 그뽀얀떡잎두장 · 70 자주달개비꽃 · 71 봄은 이별이야 · 72 목련을 만나다 · 74 진달래 ― 하나 · 75 진달래 ― 둘 · 76 4부 아침 무지개 행복 · 79 보름밤 · 80 어젯밤, 보름달 · 82 달빛 모자이크 · 83 겨울밤, 저 달빛 · 84 보름달 · 85 그믐달 · 86 그날 · 87 만월(滿月) · 88 입동(立冬) · 89 단감빛 가을 햇살이 · 90 아침 무지개 · 92 늦은 여름 · 93 흔적 · 94 입추(立秋) · 95 해설 알피니즘, 수직의 사투를 넘어서 부르는 가이아적 모성의 노래/ 강수 · 97 |
|
보름이 된
달이 - 저를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었어요 - 엄니 손이 내 가슴을 토닥이듯 달의 웃움이 나를 따스하게 덮었어요 - 난 그 따뜻한 달빛을 덮은 채 밤 새∼도록 꿈을 꾸었어요 - 엄니가 큰 숨을 들이쉬듯 제 가슴 안을 가득 채웠어요 --- 「[표제시], 엄니에게」 중에서 널찍한 송판을 뉘이고 한 조각 한 조각 사금파리를 붙여 달항아리를 그려냈다 - 조각났던 달빛들 - 온전했던 기억들이 되어 금세 달빛물결이 되었다 - 달항아리를 넘치며 쏟아지는 달빛들 - 말하지 못했던 어둠 있는 조각난 밤하늘 찾아간다 --- 「[대표시], 달빛 모자이크」 중에서 매캐한 먼지가 생각을 덮어 무덤덤했거나 잠깐 정신이 들어도 망연자실한 시간들로 메꿔져버리는 물 빠진 갯벌에 화석처럼 자국으로 남은 좀처럼 기억에서 찾아내지 못한 이름들 저희들끼리 뭉쳐 가늠이 안 되는 허방으로 나를 밀어넣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위험스러운 이 짓마저도 확실하지 않은 어쩌면 끝내 만나지 못할 --- 「새벽은」 중에서 |
|
‘엄니’라는 가장 오래된 산, 깊은 골짜기, 따뜻한 품으로 걸어온 최영규의 시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시집 『나를 오른다』, 『크레바스』, 『설산 아래에 서서』 등을 선보였으며 (사)한국가톨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인 최영규 시인이 시집 『엄니에게』를 출간했다. 최영규 시인은 1996년 등단 이후 줄곧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그 치열한 체험을 시적 언어로 치환해왔다. 그의 시적 궤적은 설산의 크레바스를 가로지르는 철저한 실존적 고독과 상처를 바탕으로, 수직적 시공간 속에 펼쳐져 있었다. 최영규의 시에서 ‘수직’은 중력에 굴복하는 하강의 통증이자 자아가 감당해야 할 실존의 무게로 제시된다. 즉, 이전의 작품들이 수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고독과 고통의 ‘상승과 하강의 미학’에 기반했다면, 이번 시집 『엄니에게』는 그 수직의 삶을 견뎌낸 뒤 도달한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최영규의 시에서 ‘엄니(어머니)’는 단순한 혈연의 존재를 넘어, 세상에 처절하게 버려진 실존적 존재들에게 생명을 나눠주는 ‘거대한 대지(Earth)’로 승화된다. 시인에게 삶은 끊임없는 결핍과 상실의 연속이지만, 그 고통을 멈춰줄 유일한 구원처는 ‘어머니’라는 근원적 대상이다. 이번 시집 『엄니에게』의 핵심 주제는 존재의 시원인 ‘어머니’로 귀환하여 삶의 허기를 치유하려는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여정에 있다. 이 시집에서 어머니는 관념적인 존재가 아니라, ‘젖냄새’와 ‘살덩이’라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치환된다. 이번 시집은 바로 그 깨달음의 가장 깊은 고백이다. 그가 평생 오른 것은 산만이 아니었다. 그는 ‘어머니’라는 가장 오래된 산, 가장 깊은 골짜기, 가장 따뜻한 품을 향해 걸어왔다. 또 ‘갯벌’은 모든 오염된 기억을 씻어내는 순화의 장소이다. 시인에게 기억은 고통이지만, 그 기억을 씻어주는 것 또한 ‘갯벌’로 상징되는 모성(母性)의 이미지이다. 시인은 개인적 차원의 ‘모성(母性)’을 보편적 대지의 이미지로 치환시키고 있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고 순화시키며 정화시켜주는 ‘갯벌’로 형상화함으로써 현대인의 고립된 실존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머니’라는 이미지를 ‘고향’과 연결지을 때, 최영규 시인의 ‘어머니’는 근대적 주체가 잃어버린 ‘고향의 상실’을 복원하는 공간적 의미로 확장된다. 이처럼, 시인은 시어 하나하나에 어머니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현대인이 겪는 고립과 소외를 대지의 생명력으로 치유하려는 시적 의지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실감나게 해준다. 더 나아가 여기서 재생된 ‘어머니’의 모성(母性)은 ‘대지’의 가이아(Gaia)로 확산된다. 최영규 시학이 도달한 최종 목적지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근원적 상실을 우주적 생명력인 ‘달빛’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뼈뿐인 육신’이 대지가 되어 자식을 먹이듯, 시인은 자신의 상처로 타자의 체온이 머물 수 있는 집을 짓는다. 이로써 고독한 단독자의 슬픔은 보편적 존재들의 ‘배려와 소통’의 서사로 확장되며, 실존적 고통이 생태적 구원으로 승화되는 ‘실존적 생태주의’로 승화된다. |
|
시인 최영규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바람과 설산의 언어로 자신을 단련해온 사람이다. 전문 산악인으로서 높고 험한 산을 올랐지만, 그에게 산은 결코 정복의 대상이 아니었다. 산은 인간이 이름과 소유와 자랑을 모두 내려놓고, 비로소 가장 연약한 존재로 서게 되는 자리였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능선 위에서 그는 배웠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른다는 것은,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일임을.
이번 시집 『엄니에게』는 바로 그 깨달음의 가장 깊은 고백이다. 그가 평생 오른 것은 산만이 아니었다. 그는 ‘어머니’라는 가장 오래된 산, 가장 깊은 골짜기, 가장 따뜻한 품을 향해 걸어온 것이다. 그의 시 속에서 어머니는 한 사람의 생물학적 근원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하느님의 마음이며, 존재의 첫 은총이다. 최영규의 시는 어머니를 추억하지 않는다.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움으로 부르고, 눈물로 더듬고, 뒤늦은 사랑으로 다시 안긴다. 그에게 ‘엄니’는 사투리의 호칭을 넘어, 삶이 가장 가난해졌을 때 돌아가고 싶은 본향이며, 모든 방황 끝에 인간을 다시 사람답게 세우는 첫 이름이다. 그는 산을 오르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배웠고, 바람에 흔들리며 중심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안다. 신을 끝까지 붙들어준 가장 깊은 중심은 산의 정상에 있지 않았고, 어머니의 낮은 사랑 속에 있었다는 것을. 『엄니에게』는 한 시인의 사모곡이면서,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첫사랑에 바치는 고백이다. 이 시집을 읽는 이마다 자신의 어머니를 다시 부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그곳에 산이 있었듯이, 언제나 그곳에 어머니가 계셨다는 것을. 우리가 살아온 길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언제나 어머니의 사랑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 조광호 (신부, 인천가톨릭조형예술대학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