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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오래 우리를 기억할까
김점미
bookin(북인) 202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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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세계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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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 5

1부 이 눈먼 시절이 끝나면

가여운 평화 · 13
민어탕 · 14
불편한 안부 · 16
오늘은 그의 진혼곡이 울려 퍼지고 · 18
거짓말의 거짓말 · 21
인형극놀이 · 22
새봄, 오 새봄아! · 24
호미 · 27
그날의 보고서 · 28
종점 · 30
잘못된 만남 · 32
다시, 촛불 · 34
이태원 민들레 · 36

2부 수십만 분초의 기억

작은 새 · 39
일기예보 · 40
호미 · 43
외줄타기 · 44
점점 아름다워지고 있다 · 46
다향다방 · 48
아직도 자니? · 49
핸드크림 · 50
귀가 · 52
교수(巧手) J · 54
부서진 낙원 1 · 56
부서진 낙원 2 · 58
이제, 창문을 열어주세요! · 60
돌에 대한 소고 · 63

3부 나는 오래된 도시의 향기를 떠올려요

깜찍한 반전 · 67
베를린 아, 베를린
1. 슈테글리츠 · 68
2. 하나우어슈트라세 · 71
3. 쿠담 거리 · 73
4. 밤의 이방, 노이쾰른 · 74
마리안나 베드나르스카 · 76
시간의 색채 · 78
주책공사 · 80
운수 나쁜 날 · 82
결혼식 마지막 날 · 84
치통 · 86
사람이 된 섬 · 88
호미 · 89
기청제(祈晴祭) · 90

4부 넌 또 어디로 간 거야?

안부 밖의 안부 · 93
화이트초콜릿 · 94
함께였다는 빈말 · 96
아픈, 그러나 아프지 않은 · 98
잔디 깎기 · 100
오란다 · 102
사라진 소리 · 104
금정(金井)에 앉아 · 106
단잠 · 107
용다리 불꽃쇼 · 108
여름밤, 사라진 왈츠의 기억 · 110
호미 · 112

해설 시간의 색채와 풍경의 이면 / 김정수 · 114

저자 소개 1

부산에서 출생했고 2002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했다. 부산대 독어교육과와 동 대학원 졸업 후 한국해양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시집으로 『한 시간 후, 세상은』(2013), 『오늘은 눈이 내리는 저녁이야』(2021), 교육서로 교육부 인정교과서 『2009 개정 고등학교 독일어권 문화』(2013) 등이 있다. 제7회 요산창작기금(2015), 제43회 이주홍문학상(2023)을 받았다. 부산작가회의, 한국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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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153*224*20mm
ISBN13
9791165121877

책 속으로

비가 내린다
주룩주룩 한없이 청승맞게
눈물이 내린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우리를 기억할까? 그가 떠나면서 했던 단 한 문장이었다 안구건조증이 심해진 나는 말없이 더러운 손가락으로 눈을 비볐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은 섬광처럼 짧았다 사라져가는 그의 얼굴을 기억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부질없이 날은 어두워졌다

우리는 태양과 바다를 좋아했다
작열하는 지중해. 태양보다 뜨거운 입맞춤 그런 시간이 손가락 사이 모래알인 듯 내 몸에서 빠져나간다 푸른 하늘보다 시린 지중해

가지 마! 가지 마!

내 손가락은 너무 가늘고 거센 바람을 막을 수 없었던 그때
너는 안부 대신 사멸을 보냈지 손가락이 움츠러들고 호흡이 빨라졌지만 야속하게도 세상의 온갖 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지

그럼, 너의 하와이는 뭐였니?
내 목숨 위를 사뿐히 걸어갔던 그때
너는 느끼지 못했니? 나의 사멸을 기억은 온갖 바람과 풍향과 풍속에도 견뎌냈지 그리고 지금

나는 소멸하기로 해
나의 소멸이 거름이 되어 너를 쑥쑥 자라게 하려고 너무 커져 도저히 내가 오를 수 없을 때 태평양으로 갈게 더 넓은 무한대의 깊이로 빠져들게
--- 「부서진 낙원 1」 중에서


지금이 시즌이란다
퍼덕이는 비늘이 아침마다 살아 오르는
그런 시즌이란다

요리연구가는 말한다
민어탕을 끓이려면 살아 퍼덕이는 놈보단
햇볕에 오래 걸려 있던
완전히 마르지도 축축하지도 않은 놈이 비린내 나지 않는다고

온전히 향과 맛을 즐기려면
맹물을 끓이고 통후추 몇 알과 소금만으로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 매치 포인트!

담백하고 시원한 여름을 먹는다
맑은 국물 한 숟가락 목구멍에 넘기자
부욱∼ 부욱∼ 부욱
입안에서 민어가 운다
퍼덕이는 비늘이 운다

서민이 사라지는 시즌에 먹는
서민[民魚] 생선탕
제 살을 파먹는 고통이 울컥 눈물을 만들어
싱싱한 순수는 반만 상하게
딱딱한 이기심은 반만 물렁하게

그래서 민어탕은
짙은 양념으로 속내 감춘 매운탕 대신
담백한 싱건탕이 제맛

세상이 제아무리 난세라 하여도
지금이 시즌이란다, 퍼덕이며 살아 오르는 비늘의 힘으로
지극히 정의롭고 지극히 상식적인
가장 보통의 밥상을 위하여
맑고 담백한 민어탕, 다시 끓일 시즌이란다
--- 「민어탕」 중에서


아침이 오고 있어요
새로운 호흡의 뜨거운 커피 한 잔
천천히 보이지 않게
어제의 기억은 삭제하려고
새 옷을 입고 왔어요

오래된 기록장을 펼쳐요
모퉁이가 닳은
나무 문틀 슬레이트 건물 하나
빛바랜 가능성이 울퉁불퉁
시멘트 벽면 흠집을 알록달록
새로 채우는 시간이에요

새로움은 낡음이에요
낡음은 고물이 아니라 기억의 허파예요
고립의 바이러스를 대하는 새로운 개념이죠
깊고 오래 들이마시며 창조와 파괴를 반복하는
인류세의 히스토리

아주 오랜만에 아침으로 걸어나가
혼자의 적요를 들이쉬면
상실된 어제를 떠나는 사람들이 찾아와요
다정했던 친구들 뜨거웠던 연인들 사랑했던 가족들

애증의 아침 햇살
식어버린 커피 사이에도
아침이 오고 있어요

모퉁이가 닳아 파삭거리는 사람의 문
오래 오래된 그 옆, 시(詩)의 집에 앉아
사람의 기록장을 고쳐쓰고 있어요, 우리 함께
쓴 고통을 끌어안고

사랑에 대하여

--- 「시간의 색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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