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들어서서 우리는 갑진년(甲辰年)을 두 차례 겪었다. 1904년의 갑진년과 1964년의 갑진년이 그것인데, 두 사례 모두 우리 민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첫 번째 갑진년에는 러일전쟁이 일어났고, 그다음 해인 을사년(乙巳年)에 러시아가 패전하자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러시아와 일본의 대표를 미국으로 불러들여 평화조약을 맺게 하면서 대한제국을 일본에 넘겨주었다. 그 결과는 일제가 대한제국에 강요해 맺게 한 을사조약으로, 이 늑약으로 말미암아 대한제국은 일제의 ‘보호국’이 되었고, 그때로부터 5년 뒤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했음은 우리가 모두 쓰라린 심정으로 기억하고 있다.
두 번째 갑진년에는 당시 박정희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국교 정상화’를 굴욕스러운 방식으로 추진하는 데 대한 저항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박정희 정부는 비상계엄령으로 겨우 사태를 장악할 수 있었고, 그다음 해인 을사년에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 미국의 존슨 행정부가 개입해, 동아시아에서 소련과 중공에 대항할 수 있는 반공 체제의 중요한 부분으로 한일 우호 관계가 성립하도록 했다. 역사의 긴 안목에서 볼 때, 첫 번째 갑진년은 비극으로 끝났으나 두 번째 갑진년은 상대적 의미에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출발선을 마련했다.
2024년에 들어서서 우리는 이제 두 갑진년에 뒤따른 세 번째 갑진년을 맞았다. 나라 안팎이, 특히 대외환경이 매우 복잡하고 어수선할 뿐만 아니라 위태롭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는 공식적으로 우리를 ‘같은 동포’로 부르기를 거부하고 ‘대한민국 것들’이라고 모욕하면서 전쟁해서 ‘평정’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러시아의 전쟁도발자 푸틴에게 무기를 제공하면서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 타이완 사이의 양안(兩岸) 관계는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때때로 보여준다. 만일 그러한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면, 한국과 북한은 각각 어떻게 대응할 것이고, 자연히 남북한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스럽다.
올해 갑진년 11월에는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 어느 당이 승리할 것인지 두고 보아야 하겠으나, 만일 공화당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 그의 동아시아정책과 한반도 정책의 향방에 따라 위기가 발생할 것인지, 아니면 평화의 훈풍이 불 것인지 조심스럽게 기다리게 된다. 이처럼 국제정세가 긴박해진 시점에,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중심으로 세계의 미래를 전망하게 하는 좋은 책이 출판되었다. 외우 김진호 교수가 번역을 주도한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Clyde Prestowitz) 경제전략연구소장의 역저 『거꾸로 된 세계』가 번역 출판된 것은 글자 그대로 시기적절했다.
이 책은 우선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정책이 몇 차례 바뀌어 온 역사적 배경과 그 실상을 설명한 데 이어 오늘날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놓고 경쟁을 벗어나 사실상 ‘전쟁’에 버금가는 심각한 갈등을 벌이고 있는 현황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한 중요한 논지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정책입안자들과 지식인들이 중국의 본질을 오판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중국을 지원해 국제화시키면 중국은 민주국가가 될 것이라는 가정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설득력 있게 말한다. 여기서 잠시 떠오르는 것은 마치 서방세계가 중국을 오판했듯, 우리가 북한을 오판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이다.
북한을 지원해주면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길을 걷고 우리와 더불어 화해와 평화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한때의 정책적 전제를 심각하게 재고하게 된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면서 중국과도 우호를 유지하는 가운데 여러 방면에서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동시에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유지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러한 소망을 지닌 한국인에게 이 책은 많은 가르침을 줄 것이다.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에서 일하기도 했고, 중국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해 베이징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한국과 중국의 대학에서 강의 경력을 쌓은 한국의 전형적인 중국 전문가가 유려한 번역에 꼼꼼한 역주(譯註)까지 첨가했기에 독자들의 이해를 크게 돕고 있다. 학계는 물론이고 정계·관계·기업계·문화계 등 여러 부문의 인사들에게 권한다. 우리가 모두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고 우리의 진로를 제대로 설정해 내년 을사년이 비운의 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