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인공지능은 없다』는 인공지능을 하나의 기술이나 알고리즘으로 환원하지 않고, 그것이 데이터와 노동, 플랫폼과 국가, 자본과 윤리, 인간과 비인간이 얽혀 만들어 내는 사회-기술적 실천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저자는 기술결정론적 낙관주의와 디스토피아적 비관주의라는 익숙한 대립을 넘어, 인공지능이 실제로 작동하는 현장과 그 속에서 형성되는 권력, 물질성, 역사성을 치밀하게 추적한다. 현장에 근거한 이러한 접근은 다양한 행위자들의 관계 속에서 기술과 사회의 접점을 이해하는 과학기술학(STS)의 핵심 문제의식을 충실히 구현한다. 특히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미래를 예언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래는 이미 결정된 운명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어떤 기술을 만들고 어떤 제도를 설계하며 어떤 관계를 구축하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다시 쓰이는 사회적 산물이다. 따라서 상상력은 그저 현실을 벗어난 공상이 아닌, 현실을 변화시키는 실천의 출발점이다. 더 나은 인공지능을 상상하는 일은 더 나은 사회를 설계하는 일과 다르지 않으며, 그 상상은 연구실과 기업, 정책과 시민사회,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 실천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얻는다. 인공지능의 미래를 두려움이나 환상 속에서 소비하는 대신, 그것을 함께 만들고 책임지는 공동의 과제로 전환시키는 힘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바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기여이다. 지금 우리 삶에 깊숙하게 침투한 인공지능을 더 깊게 이해하고 싶은 독자는 물론, 기술과 사회가 서로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자신 있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