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 해부를 한 의사의 생생한 수기와 반성. 731부대를 포함, 비윤리적 의학 실험과 실습을 했던 수천 명으로 추산되는 의사들은 대부분 처벌받지도 반성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대학에 남고 전쟁 전의 의국 체계를 유지하고 또 정부에 들어가 전후 일본 의료계 지배 블록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의료계만 그런 것이었을까.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만주 점령부터 2차대전까지의 15년 전쟁 중 일본군이 행했던 전쟁범죄의 구체적 실상을 전범들의 고백과 여러 자료로, 그리고 그들에 대한 정신분석으로 생생히 드러낸다. 이 책의 미덕은 전범들의 개인적 정신분석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의 분석에까지 나아간다는 점이다.
저자는 왜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가 침략전쟁의 부인과 한 세트”인지, 왜 일본은 반성하지 않는 사회,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는지 묻는다. 그리고 일본의 반핵평화운동 세대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원서 출간 25년이 흘러, 피폭국임을 그토록 내세우던 일본 정부가 오히려 전 세계를 향해 핵오염수를 방류하면서 핵 가해국이 되려고 하는 오늘, 훨씬 더 생생하게 읽힌다. 전범들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해 일본 사회 정신분석에까지 나아간, 반핵평화운동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저자의 충격적이면서도 동시에 감동적이고 희망의 울림이 있는 역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