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의 역사는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문학에 있어서도 그렇다. 주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나가지 못했다는 역사적 한정은 인간을 이해하는 상상력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젠더 문제에 있어서 특히 그러한데, 예컨대 우리는 싸우거나 고뇌하는 남성 인물과 상처 입고 인내하는 여성 인물을 오랫동안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체공녀 강주룡》은 이러한 오래된 상상력의 한계를 매우 명쾌하고 단호하게 돌파한다. 싸우고 고뇌하고, 일하고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이 살아 있는 인물은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를 사로잡는다. 거침없이 나아가되 쓸데없이 비장하지 않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으나 자기 연민이나 감상에 젖지 않는 이 인물을 통해 우리는 전혀 다른 여성 서사를 만난다.
여성 수난 서사도 피해자 서사도 아닌 이야기에 가부장제와 식민주의의 운명에 눈물지었던 할머니들과, 왜곡되지 않는 여성의 이름을 얻고 싶은 오늘의 손녀들이 함께 공명한다. 그래서 ‘주룡’은 과거의 인물이되 《체공녀 강주룡》은 지금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