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40년 역사의 수사 전문지 『수사연구』 편집장,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2005년 장편소설 『수상한 식모들』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7년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로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에어비앤비의 청소부』 『빙고선비』, 청소년 장편소설 『환상박물관 술이홀』 『나의 아메리카 생존기』 등을 출간했다.
거대한 세계를 객관적으로 조감할 깜냥은 없어서 정공법 대신 나는 에둘러 간다. 그래서 서울을 녹인다. 몽상의 손가락으로. 깊은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으면 어둠이 찾아와 두런두런 귓가에 들려줄 법한 속삭임으로. 잠들기 전 떠올리면 먹먹하고 짠하고 아름답고 우스꽝스럽고 그리운 추억이지만 날이 밝은 후엔 까맣게 잊히는 내가 없는 세월의 이야기를.
내가 없는 세월
그녀, 베릴 마크햄은 아프리카를 비행한다. 검은 대륙 위를, 원주민의 삶 속을, 아프리카에서 자란 그녀만의 감각을 깨달아가며. 원주민의 언어를 배우고, 원주민과 함께 사냥을 하며, 아프리카의 자연 속에서 산 그녀의 글에서는 아프리카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느껴진다. 또한 유년시절에는 반려견과 함께, 독립한 뒤에는 갈색 말 페가수스를 타고, 훗날에는 조종사로 아프리카를 누볐던 그녀의 이야기에는 뜨거운 모험심과 명쾌한 판단력이 공존한다.
하여튼 나는 음주로 인한 취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ㅣ 12층과 7층을 오가면 일어난 이 연쇄살인사건이 만치에 의한 살인사건이란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러기엔 계획적이고 목적이 선명했다. 범인은 오히려 술과 분노를 핑계로 댔다. 일단 술에 취해서 범행을 시작했고, 그 후 진술에 의하면 자신은 화가 나면 스스로를 컨트롤 큰한 수 없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허나 그의 살인은 취기나 광기가 아닌 그 극히 이기적인 마음과 절제할 수 없는 물질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살인으로 느껴진다. 술이 사람을 먹은 게 아니라, 결국 물질에 대한 탐욕이 그를 살인귀로 이끌었을 것이다.
소년의 죽음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그날도 키 작은 소년은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부름에 신나서 달려왔을 것이다. 작고 약한 몸에 강인한 타투가 그려지면, 모두에게 좀 더 강해 보일 거란 기대에 부풀 었을 것이다. 그 부푼 마음 그대로 소년은 한 야산 지대에서 타투이스트와 만났다. 단 그의 몸에 새겨진 것은 멋진 타투가 아닌 잔혹한 죽음에 이르는 상처였다.
그 후 나는 한 가지 마음먹은 게 있다. 누군가에 대해 크게 분노한다면, 정말 복수가 하고 싶다면 순간적인 복수가 아닌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복수를 해야겠다는 것. 혹은 비생산적인 복수 대신 상대를 내 편으로 끝어들이기 위한 생산적인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복수 의 끝은 수갑을 차는 일이라는 길 수사 전문지 취재 과정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수사연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은근히 토막살인사건을 자주 접한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죽이지?리는 생각은 이미 이곳에서 일하면서 사라졌다. 그 생각을 넘어서 사람을 어떻게 자르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수사 기자들이 사체 앞에서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게 것처럼, 살인자들 또한 사람을 죽인 두 사체 처리에는 좀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변해가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그렇게 생각해보니 오히려 더 섬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