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 구로공단 입구로 이사를 갔다. 부실시공으로 철거가 결정된 시민아파트 대신 얻은 시영아파트는 공단으로 들어가는 길 바로 옆에 있었다. 아침이면 공장으로 들어가는 내 또래들이 대로를 가득 메운 채 밀물처럼 공단으로 밀려갔다. 나는 교복을 입고 그 행렬의 반대 방향을 향해 학교로 갔다. 그때마다 불편하고 불안했다. 내가 입은 하얀 교복이 불편했고, 나 역시 저 행렬을 따라 공단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닐까, 불안했다. 그 불편과 불안의 갈등 속에서 겨우겨우 고등학교를 마쳤다. 엄마가 대신 공장에 다닌 덕이었다.
그 행렬 속에 장남수도 있었다. 그녀는 전설적인 원풍모방 노동조합 출신이다. 학교 대신 간 공장에서 원 없이 책을 읽고, 탈춤을 추고, 노동자도 인간이란 걸 가르쳐준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노동 탄압에 맞서 싸우면서도 이미 가족이 돼버린 동지들이 있어서 서럽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장남수의 소설 속엔 오빠와 남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가난한 살림에 한 입이라도 덜기 위해 가방공장으로, 방직공장으로 올라온 우리의 언니들이 있다. 언니들은 나약하지만 한없이 강인하고, 섬세하지만 누구보다 대범하다. 가족을 위해 가장 먼저 희생되었지만 끝내 자신의 자리를 찾아 우뚝 선 여인들. 우리의 엄마이며, 언니이며, 나이기도 한 여인들. 이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 소설가 장남수의 새 출발에 응원의 말을 보탤 수 있어 영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