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물들인 날
엄마의 빛 그 집에는 집의 조건 그기 머라꼬 파문 가이드 발문 김남일 | 소설가 장남수의 첫걸음 작가의 말 |
장남수의 다른 상품
|
■ 작가의 말
소설이 아니면 쓸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와글와글 치밀면서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렵게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내 그림자 안에서 맴돌고 있는 내 글이 익숙한 독백 같기만 했다. 이걸 소설이랄 수 있을까? 멈칫거릴 때마다 “젊은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읽을 만한 작품”이라고 말해준 한참 전의 어떤 격려를 떠올렸다.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지닌 만큼의 이야기들을 그저 쓸 수밖에. 되지도 않을 허영이나 허명에 기웃대지 않는 우직함이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이 나이에 비로소 깨닫는다. 쓰기를 놓은 적은 없지만, 작가라는 명칭은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도 놓지 않았기에 한 편 한 편 모을 수 있었다. 부끄러움은 남지만, 한 문장을 다듬기 위해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던 몰입의 시간은 큰 기쁨이었다. 말은 뱉고 나면 뒤끝이 편치 않은 적이 많다. 쓸데없는 언어로 내 비루함만 드러낸 것 같아 뒤척이기도 한다. 입을 닫고 글을 쓰는 데 더 열중하자고, 다짐해보는 계절이다. |
|
고등학교 1학년 때 구로공단 입구로 이사를 갔다. 부실시공으로 철거가 결정된 시민아파트 대신 얻은 시영아파트는 공단으로 들어가는 길 바로 옆에 있었다. 아침이면 공장으로 들어가는 내 또래들이 대로를 가득 메운 채 밀물처럼 공단으로 밀려갔다. 나는 교복을 입고 그 행렬의 반대 방향을 향해 학교로 갔다. 그때마다 불편하고 불안했다. 내가 입은 하얀 교복이 불편했고, 나 역시 저 행렬을 따라 공단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닐까, 불안했다. 그 불편과 불안의 갈등 속에서 겨우겨우 고등학교를 마쳤다. 엄마가 대신 공장에 다닌 덕이었다.
그 행렬 속에 장남수도 있었다. 그녀는 전설적인 원풍모방 노동조합 출신이다. 학교 대신 간 공장에서 원 없이 책을 읽고, 탈춤을 추고, 노동자도 인간이란 걸 가르쳐준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노동 탄압에 맞서 싸우면서도 이미 가족이 돼버린 동지들이 있어서 서럽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장남수의 소설 속엔 오빠와 남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가난한 살림에 한 입이라도 덜기 위해 가방공장으로, 방직공장으로 올라온 우리의 언니들이 있다. 언니들은 나약하지만 한없이 강인하고, 섬세하지만 누구보다 대범하다. 가족을 위해 가장 먼저 희생되었지만 끝내 자신의 자리를 찾아 우뚝 선 여인들. 우리의 엄마이며, 언니이며, 나이기도 한 여인들. 이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 소설가 장남수의 새 출발에 응원의 말을 보탤 수 있어 영광이다. - 김이정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