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펼치니 산 자와 죽은 자와 아이들과 노인과 춤추는 눈사람과 귀가 접힌 고양이가 둘러앉아서 팥죽을 먹고 있어요. 아아, 팥죽이라니. 검고 붉고 뜨거운 그것 말인가요? 희고 둥근 새알심이 외롭게 박혀 있는, 어쩐지 목이 멜 것 같은. 이런 음식은 무섭지 않냐고 물으면 그들은 귀신 같은 얼굴을 들고 대답할 거예요. 이것은 ‘희망에 베이는’ 사람들이 삼키는 말이잖아요. 아프고 쓰리고 캄캄한 마음이잖아요. 참, 그렇군요. 이근화의 시에는 팥죽처럼 진하고 뜨거운 것이 많이 있군요. 허물어진 입과 개 없는 집과 낭자한 비린내와 잿빛 눈송이와 가난한 발과 까마귀와…… 이 핏물 흘리는 것들의 다정함을 복구하느라 그녀는 분주하군요. 비닐봉지처럼 찢긴 검은 세계에 입술을 주고, 눈동자를 주고, 호흡을 나누는 일. 그건 컴컴하고 냄새가 나는, 그러나 이 ‘엉망진창 아름다운’ 세계를 기어이 사랑하는 일. 그러니 오늘 당신이 귀신처럼 외롭다면, 그녀의 곁에 앉아 검붉은 팥죽 같은 시를 떠먹기로 해요. 그건 어쩐지 무용하고 슬프고 아득한 일 같지만. 불현듯 터져 나오는 뜨거운 웃음은 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