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대구가톨릭대학교 이탈리아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인문·문학·예술·종교 분야의 책을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가재걸음』 『적을 만들다』 『60개의 이야기』 『금테 안경』 『눈물을 만드는 사람』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비극』 『지구의 미래』 『깊은 곳의 빛』 『악령에 사로잡히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등이 있다.
"아이들에게 다른 개를 선물하고 싶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토는 여전히 집 안에서 움직였고 나는 오토가 발톱으로 바닥을 긁어대는 미세한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는 불편한 기운을 손바닥에서 날려버리고자 두 손을 모아 천천히 양 손을 맞대고 비볐다. "난 뭘 대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그날 저녁 마리오가 돌아가고 난 뒤에, 나는 죽음을 향해 가는 안나 카레니나의 페이지
더욱이 오토가 어떤 이유로 죽게 되었는지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이제 개는 사건들의 그물을 찢고 멀리 달아나 버렸다.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생각하면서, 태만에 대한 자책을 그 그물에다 남겨 두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들어오고 흘러나가는 것들이 아니라 나를 지탱하며 유지하고 있는 그 망, 그물의 조직일 것이다.
텅 빈 무대는 희미한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은 살아 있는 살덩이를 밝게 관통하는 어두운 혈관처럼 기쁨에 들떠 무대를 가로지르는 오토의 그림자같이 보였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미래는 온통 이와 같으리라고 생각했다. 생명의 삶과 저승의 축축한 냄새가 공존하고, 주의와 부주의, 격정적인 심장의 박동이 갑작스러운 의미의 상실과 함께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보다 더 나빠지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생각, 행동, 말투, 기호, 성적 습관이 얼마나 많이 내게로 옮겨졌을까? 그 당시 나는 이러한 질문들로 종이를 채우고 채웠다. 지금 마리오는 떠났고 나를 사랑하지 않으며 나 역시 그를 사랑하지 않는데, 왜 그의 많은 것들을 내 몸에 달고 살아야 하나? 내가 그에게 넘겨 주었던 것은 은밀한 기간 동안 카를라에 의해 이미 삭제되었다. 그에게 동화된 모든 흔적들
그렇게 나는 두 번의 임신을 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의 씨앗들을 자궁에서 키워 그에게 아이들을 넘겨주었다. 말은 그렇지만 사실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이 자식들은 나의 것이고 언제나 내 육체의 범주 안에서, 내 보호의 대상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절대적인 본성이 아이들 안에 잠재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피할 수 없었다. 마리오는 불시에 아이들의 뼈 안에서
이제 정면의 모습을 비출 수 있는지도 확인해 보았다. 거울은 내 정면을 담아내지 못했다. '날 바라봐. 나는 거울을 향해 한숨과 같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거울은 내 상황의 일부를 복제하고 있었다. 거울 속의 영상이 정면의 이미지였다면 내가 '올가'라는 것을 알려주고, 결국에는 성공적인 하루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 안심시켰을 것이다. 그렇지만 두 개의 윤곽은 이를 부정하고 있
나는 신경질적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이름 없는 나무들의 숲은 현실보다는 수채화 그림에 가까웠다. 내 옆에 내 뒤에 서 있는 나무들의 이름은 무얼까? 포플러? 삼나무? 아카시아? 로비니아?나는 떠오르는 대로 아무 이름이나 댔다. 우리 집 아래에 있는 나무들의 이름도 모를 정도로 나는 식물에 무지했다. 내가 나무에 관한 글을 쓴다면 아마 한 줄도 쓰지 못할 것이다. 나무의 기둥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것이 모두가 찾아야 할 '겊은 곳의 빛'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는 시련의 경험에서 축복을 찾아야 한다. 우리른 불안케 하고 의문을 품게 하는 것에 숨겨진 선함을 찾아야 한다.우리가 저주와 대립, 패배를 경험했던 것에서 축복을 받아야 한다.
자비는 우리의 모습 ㄱ대로를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는 경험이ㅏ. 자비를 베푸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즉 우리가 되어야 하는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하고 추한 모습까지 기꺼이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변화와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기세등등하던 비판의 소리는 이제 무의미한 메아리가 되어 잦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