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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국내작가 예술/여행 저자
출생
1937년 08월 06일
출생지
강원도 홍천
직업
영화인
작가이미지
김동호
국내작가 예술/여행 저자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1961년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문화공보부 기획실장을 비롯하여 문화정책을 조정하는 생활이 주를 이루었고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는 ‘영화’를 보는 평범한 관객이었다.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해외의 영화를 모아 상영회를 가졌다. 임권택 감독과 함께 해외영화제를 다니며 한국영화 홍보에도 힘을 썼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들지도 않았지만 이 시절부터 그의 삶에 영화가 함께하기 시작했다.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4년을 일했다. 이후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닐 조던의 '크라잉게임'이 검열 없이 개봉되게 했고 구소련의 영화를 해금시켰다. 영화에 대한 사전검열이 강하던 시절에 많은 영화들이 햇빛을 보기 시작했다.

1995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초석이 되는 만남이 시작되었다. 국제영화제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절이었다. 칸을 비롯한 국제영화제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출범을 알렸다. 모두가 말렸다. 아무도 미래를 장담하지 않던 해였다. 1996년 제1회 영화제를 시작으로 영화제는 점점 커지면서 다양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해 세계 곳곳의 다양한 영화제를 찾아다녔고 수많은 영화인을 만났다. 작품을 만드는 감독들, 영화 축제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사람들, 자원봉사자들,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모여드는 관객들, 모두가 그의 벗이었다. ‘미스터 킴’은 어느새 국제영화제의 공식적인 이름이 되었다. 아무도 그를 ‘동호’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국에는 무수한 김씨들이 있지만 국제영화제와 세계영화계에서 그는 ‘킴’이 되었다. 베를린과 칸의 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밤을 알리는 파티가 열리면 언제나 행사장에 한 시간 일찍 도착해 파티장의 문을 지킨다. 지난 15년간 그는 한국영화 앞에 서 있는 한결같은 문지기이자 세계영화로 들어가려고 하는 시골사람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이면 그의 일정은 항상 30분 간격을 두고 빼곡히 짜여 있었다. 49년간 기록을 쉬지 않았던 수첩에는 미래를 약속하는 갖가지 일정이 지금도 빼곡히 담겨 있다.
1961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1992 제22대 문화부 차관
1993 공연윤리심의위원회 위원장
1995 MY-TV 대표이사 사장
2006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 홍보대사
2006 세계영화제작협회 이사
2008 외교통상부 문화외교 자문위원
2009 제11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지도자문위원
2010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명예 집행위원장
2010 제12회 타이페이영화제 국제청년감독 경쟁부문 심사위원
2011 강원문화재단 이사장

수상경력

2000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기사상
2001 대한민국 국회과학기술대상 특별상
2005 제4회 대한민국영화대상 공로상
2005 제7회 시네마닐라 영화제 평생공로상
2006 프랑스 파리시 훈장
2007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오피시에
2007 제3회 앙드레김 베스트스타어워드 특별상
2007 제30회 황금촬영상 특별상
2008 아시아그라프 인 상하이 공로상
2009 유네스코서울협회 선정 올해의 인물
2010 제13회 디렉터스컷 시상식 공로상
2010 제23회 도쿄국제영화제 우정상
2010 자랑스러운 영화인상
2011 제2회 올해의 영화상 영화인상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그는 이미 8~90년대에 전 세계영화제를 섭렵함으로써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국제영화제를 경험했던 유일한 영화인이었다. 나는 공사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1988년과 1990년에 몬트리올영화제와 1989년에 모스크바영화제에 참석하면서 영화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한국에서 국제영화제를 개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때였기 때문에 그의 자문과 역할이 필요했었다. 한국에서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중의에 따라 국제영화제 개최계획은 중단되었지만 자문회의 마련 등 김대현의 조언과 역할이 컸었다. 영화계를 위해 할 일이 많은 ‘영화인 김대현’을 잃은 것은 영화계의 큰 손실이며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로 걷다」가 출간된 것은 김대현이 활동했던 다양한 활동 중의 한 면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 이 회고록은 오로지 영화만을 위해서 살아온 그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우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진솔한 기록’이면서 70년대에서 90년대를 거쳐 도약해온 우리 영화사의 생생한 기록이고 야사(野史)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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