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유월의 살구나무와 봉숭아꽃을 지나 숙녀가 되고, 숙녀는 속절없이 녹는 눈밭을 지나,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지나, 히라이스의 마음을 얻었다. 히라이스(Hiraeth), 더는 돌아갈 수 없게 된 곳으로 다시 가고 싶어지는 마음이란다. 다 내려놓고 지우고 떠나왔을 것인데, 그리움은 이국의 말을 빌려서라도 여전히 그녀에게 머물게 되려나 보다. 그러니 김애리샤의 시들을 그리움의 연대기라 이름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리움이란 사랑의 결핍과 부재가 지나간 뒤에 가슴 밑바닥에 마지막까지 남는 감정이 아닌가. 그리움에 무슨 힘이 있겠는가만 자연과 인간을 향해 제 몫의 빛을 내며 반짝이는 그녀의 시편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이 여정에서, 때로 그녀가 죽음을 언급할 때조차도 그녀의 시들은 탄탄하고 고요한 그늘을 거느리고 있으니.
히라이스, 떠나온 곳으로 다시 갈 수 없을 때 인간은 오직 그리움으로만 다리를 놓고 그 어둠을 건너가 볼 수 있다. 그녀가 써 내려갈 그리움의 연대기를 우리는 지금 확인할 수 없으나,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시편들이 우리에게 그 길의 입구를 미리 터 주고 있으니 기특하고 다정할 뿐이다. 아직 오지 않은 그녀의 시들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심 어린 애정으로 그녀의 문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