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1부
웃는 사람들 잉어떼 시청자가 TV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 다들 어디로 가나 아파트가 운다 최씨 종친회 석회암지대 미륵님이 오신다 친구야, 혼자서 가라 여기에 없는 사람 가난한 아버지들의 동화 무법자 애국가를 추억하며 소년 가장 매트릭스 혹은 우리들의 산타 공화국 개 저수지 가까운 동네 돼지에게 묻지 마라 즐거운 나의 집 팝니다, 연락주세요 제2부 수레 오래된 결혼식 책 읽는 여자 태풍 속에서 달과 함께 흘러가다 어떤 전과자 조용한 가족 자매 따스한 구멍 징글벨징글벨, 겨울비는 내리고 무엇이 그녀를 역전에 박아놓았나 여행자 과일가게 앞의 개들 브래지어 고르는 여자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제3부 바다거북 천 개의 손 할렐루야 소주와 함께 끝없는 길 뱀 봄날은 간다 구멍난 양말짝을 사랑하다 잠수함 새발자국 꽃을 따 먹다 모른다, 캄캄하다 지상의 방 한 칸 고흐와 함께하는 달빛 감상 검은 비닐봉지를 보다 전화 단풍의 사상 제4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피아노가 울었다 배나무꽃 소년 떠돌이별의 탄생 과부 삼대 물려받은 집 여자들의 이름 악의 꽃 월식 모래무지를 생각함 거미의 눈 커다란 허물 악령 내겐 너무 불행한 잠 돈 키호테를 만나다 새들의 역사 어둠 기타를 위한 변주곡 해설 · 이경수 시인의 말 |
崔金眞
최금진의 다른 상품
|
침통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의 풍경과 삶의 단면을 다루면서도 그 절망감을 자유롭고 균형있게 조형해내는 시적 능력을 인정받아 2001년 제1회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한 최금진의 첫 시집 『새들의 역사』가 출간되었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소외의 현실을 자본주의와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확장시켜 시화하는 작업을 꾸준하게 해온 시인은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내공과 결기를 선보인다. 잔혹한 현실을 그로테스크한 상상력과 이미지로 그려낸 시편들은 “고통과 공포를 다루는 기왕의 언사들을 한 단계 갱신하고 있음이 분명”(김사인)한 작품들이다.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작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에서 시인은 ‘나는 당신의 무엇이었을까’라는 메모 한 장과 함께 한달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자동차 트렁크 속의 여인을, “너무도 완벽했으므로 턱뼈가 으스러진 해골은/반쯤 웃고만 있었다 […] 움푹 꺼진 여자의 눈알 속에 떨어진 담뱃재는/너무도 흔해빠진 국산이었다”라고 그린다. ‘그로테스크’가 이질적인 것들이 만들어내는 극도로 낯설고 흉측한 분위기, 또는 불가해한 세계를 영상화하는 기법을 말한다면, 최금진의 시는 분명 그로테스크하다. 그러한 그로테스크 미학을 통해 최금진은 잔혹한 현실을 환기한다. 슬프고 외롭고 안타까운 풍경이지만 비극적인 숭고미보다는 그로테스크한 살풍경을 그린다. 자신의 가난이 한없이 부끄럽지만 어쩔 도리가 없고, 어린 자식을 보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가난의 배를 발고 걷어”차는 아버지(「가난한 아버지들의 동화」)는,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까닭도 없이 제 마누라와 애들을 패”는 가장(「아파트가 운다」)이기도 하다. 가난이 유전처럼 대물림되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현실이요 생리이다. 그 질긴 가난을 물려받은 인생은 “영토, 국민, 주권……한평의 땅도 없는/굶은 것과 자는 것 말고는 어떤 권리도 없”이 시골 구멍가게의 삼대독자로 태어나(「애국가를 추억하며」), “화장실 변기통에 앉아서/콩팥을 팝니다 전화주세요”를 보면서도 카드빚과 통장을 생각해야 한다(「팝니다, 연락주세요」). 전지구적으로 팽창한 한국형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분상승이나 계층이동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기란 고단한 일임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그럼에도 어리석게도 “자신의 행복이 매년 진보하고 발전한다고 믿”는 우리 자신은 ‘산타공화국’의 링거줄에 연결된 ‘꿈 기계’들이다. 세상의, 자본주의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지만 세상을 바꾸거나 움직이기는 어렵기에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따뜻한 서정과 화법 대신, 최금진의 시편들이 보여주는 가능성은 세상에 대한 의심의 눈길로 한 발 떨어져 “거친 숨을 내뿜는 직설적 언어와 현실에 대한 독기어린 눈”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꿈꾸고 지향한다. 냉소적인 시적 태도와 현실을 환기하는 그로테스크한 미학으로 최금진은 이미 새로운 돌파구에 성큼 다가서 있음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