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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없는 데만 가게 된다
유승도
창비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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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유서
산그늘이 다가온다
자연의 손바닥
햇살이 뿌려지는 한낮
평평하다
변신술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연록의 시절
별 볼 일 없는 데만 가게 된다
비린내
나는 자신을 꽁꽁 감싸고 있는 당신이 답답하다
장수풍뎅이는 나를 닮았다
해변에 낚싯대를 걸고
무거운 옷을 입고 산다
가끔은 나도 정신을 어딘가에 놓아둔 채 살고 싶다
나의 돌
이가 없는 사람

제2부
꽃향기 날리는 밤에
이름
비웃음을 사다
할 일 많은 사람들
독사가 팔짝 뛰었다
봄은 백 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있다
가벼운 고독
어둠의 새와 놀다
늦봄
나의 집
아내의 큰일
파도는 바위를 치며 묻는다
그날의 학교
평화의 얼굴
통학 버스는 오후 4시에 학교에서 출발한다

제3부
창밖이 멀다
7월
여행 좀 다녀오라고?
옥수수가 익어가는 여름
솜사탕
좋은 일
새끼를 물리치다
조용히 살다 조용히 갔다
꼽등이를 먹었으면 꼽등이가 됐을까?
꼭 의미가 있어야만 사는가
내 집 앞 도랑물은 졸졸졸졸 흐른다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뒷다리가 하나 없던 어린 고양이가 어미를 따라 형제들과 함께 세상으로 나갔다가 홀로 돌아와 죽었다
봄비 소리
내가 바라보며 사는 소백산맥의 북면은 겨울 내내 하얀 얼굴이다
햇빛은 아무 데나 비춘다

제4부
2023, 맑은 봄날이었다
눈물
암병동 가는 길
죽음을 기다리다
하늘도 단풍으로 물드는가
단풍잎이 바람에 떨어져 산등성이 너머로 날아간다

뽕나무 아래를 지날 때
굴국은 공평하게 먹어야
나는 누워 있는데
갓난아기 손만 한 함박눈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오랜만에
어이하랴
얼굴
울음소리

발문|고형렬
시인의 말

저자 소개1

1960년 충남 서천 출생. 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정선 구절리 폐광촌에서 쓴 시 「나의 새」 외 9편이 199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 생활을 시작하였다. 등단작인 「나의 새」를 발표하고부터 자연의 모든 것이 자신의 일부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였으며, 이는 이후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자연’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영월의 망경대산 중턱에 정착하여 창작활동을 이어왔다. 그간 시집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 『차가운 웃음』, 『일방적 사랑』, 『천만년이 내린다』, 『딱따구리가 아침을 열다』, 『수컷의 속성』, 『사람도 흐른다』,
1960년 충남 서천 출생. 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정선 구절리 폐광촌에서 쓴 시 「나의 새」 외 9편이 199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 생활을 시작하였다. 등단작인 「나의 새」를 발표하고부터 자연의 모든 것이 자신의 일부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였으며, 이는 이후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자연’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영월의 망경대산 중턱에 정착하여 창작활동을 이어왔다. 그간 시집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 『차가운 웃음』, 『일방적 사랑』, 『천만년이 내린다』, 『딱따구리가 아침을 열다』, 『수컷의 속성』, 『사람도 흐른다』, 『하늘에서 멧돼지가 떨어졌다』와 수필집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 『고향은 있다』, 『수염 기르기』, 『산에 사는 사람은 산이 되고』, 『달밤이 풍성한 이유』 등의 작품집을 발간했다. 『진달래꽃 아래』는 유승도 작가의 첫 번째 동화로, 어린이 독자들을 상대로 ‘자연’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담긴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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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92쪽 | 136g | 125*200*5mm
ISBN13
9788936425364

책 속으로

시를 쓴다며 가까운 이들에게 폐만 끼치다 간다 남의 몸을 먹으며 살았으니 육체나마 숲의 동물들에게 돌려줘야겠다 찾지 말아라 내 뜻과 달리 사체가 발견된다면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고, 평소에 걸치던 옷으로 감싸 밭 가장자리에 묻어다오 봉분은 만들지 말아다오
훗날 생각이 나면, 묻은 곳에 네가 좋아하는 과일나무를 심어다오
--- 「유서 전문」 중에서

손오공이 날아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고 했나?

부처는 날아봤자
자연의 손바닥 안이다

너도 나도
자연이란 몸의 세포 하나하나이니

벗어나려 하지 않으며 산다
--- 「자연의 손바닥 전문」 중에서

여름휴가를 맞아 가족여행을 온 형님이 근처 어디 좋은 곳으로 가자는 것을, 바라보는 맛도 나지 않는 그저 그런 물가로 데려갔다
좋은 곳은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북적이니 그들과 부딪칠 마음이 없는 내가 형님을 모시고 갈 곳이 남아 있지 않은 까닭이다
내 삶이란 게 늘 이런 식이다 이것도 병이려니 생각하면서도 고치려 하지 않으며 산다
--- 「별 볼 일 없는 데만 가게 된다 전문」 중에서

대통령은 국가권력의 인자함으로 얼굴을 치장하고 군수나 국회의원은 지역 주민이 건네준 힘을 어깨에 걸친 채 살고 검사 판사는 법의 칼을 휘두르며 산다
나는 시라는 겉옷을 입고 살아간다 오늘 만난 교수여, 네가 입은 지식이란 옷의 무게는 몇근이나 될 것인가?
--- 「무거운 옷을 입고 산다」 중에서

아내가 집을 비운 날
나뭇가지에서 나뭇잎이 떨어진다
투툭, 풀잎을 치고는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이 왜 이리 고요한가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산과 산 사이를 울린다
가만히 가만히 살자
--- 「가벼운 고독 전문」 중에서

앞산이 머리와 가슴팍에 구름을 두르고 섰다
매일매일 희한한 세상을 마주하게 되니 산다는 게 좋은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사 새끼 한마리를 지겟작대기로 두들겨 수풀에 던진 뒤였다 이제 세상맛을 좀 보려는 뱀을 죽이면서 우리 가족이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할 만큼 나는 억척을 떨며 산다
--- 「좋은 일」 중에서

형님이 죽어 묻히니 땅이 한층 가깝게 다가온다 발걸음을 떼는 것도 조심스럽다 발을 멈추고 바라보면 웃음 짓는 형님의 얼굴이다
남은 형과 누나도 가야 하고 나도 가야 하고 아내도 아들도 가야 하는 자리
사랑도 미움도 전쟁도 평화도 돈도 내려놓고 가야 하는 머나먼 집
평생 떠나지 못하고 살아왔으면서도 땅과 내 몸이 붙어 있는 걸 보지 못했다
--- 「땅」 중에서

사십구재 전날 밤, 형님이 지내던 방에서 잠들었다가 뜨거운 소리에 눈을 떴다
사방을 살폈으나 보이는 사람은 없다 문밖에서 스며들고 있다
초상을 치르는 데 사용한 사진을 벽에 걸어놓았다는 조카딸의 방에서 불빛과 함께 흘러나오는 소리다 문틈으로 어찌어찌 나와서 어둠을 먹고 있다

--- 「울음소리 전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가 있는가?
나는 이 물음에 대해 답을 얻지 못했다”
자연의 일부라는 생생한 실감


시인이 지향하는 세계는 인간과 자연의 위계가 사라진 '평평한' 공간이다. 그에게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연 위에 군림하는 주인이 아니라, “너도 나도 자연이란 몸의 세포 하나하나”로서 “자연의 손바닥 안”(「자연의 손바닥」)에 깃들어 사는 미미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 자연은 포용이나 배제의 의도 없이 “아무 곳으로나”(「햇빛은 아무 데나 비춘다」) 향하는 햇빛과 같다. 시인이 자연 생명들과 맺는 관계 역시 사람들과 맺는 관계와 마찬가지로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구석이 없다. 그는 그 자체로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넘어 뭇 존재들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허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인간의 오만함과 가식을 꼬집고, 생활을 위해 살생을 저지르는 자신마저 있는 그대로 서술한다. 때로는 “좀 사귀어보자”고 하는 밤 부엉이의 유쾌한 울음소리에도 “그런 맘 없다”(「어둠의 새와 놀다」)며 홀로 숲길을 걷기도 한다.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단독자로서 자신을 끊임없이 가다듬는 일이다.

한편 시인은 북적이는 사람들을 피해 “별 볼 일 없는 데만 가게 된다”고 자조적으로 진술하며, 간혹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고치려 하지 않으며 산다”(「별 볼 일 없는 데만 가게 된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이는 세속적인 욕망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희한한 세상을 마주하게 되니 산다는 게 좋은 일”(「좋은 일」)이라고 감각한다. 평범한 일상 속 소박한 만족감이 돋보이는 시편들은 산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충만하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 너무 많은 연결에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 모양을 하고 있는지조차 흐릿해지는 때에, 시인의 정갈한 언어는 “산과 산 사이를” 울리는 “닭 울음소리”(「가벼운 고독」)도 들릴 만한 고요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삶이 죽음을 향해 가고 죽음이 삶을 바라보게 하는
처절하게 쓸쓸하고 아득하게 밝은 세상의 순환


시집에는 간혹 비릿한 “피와 살의 냄새”(「비린내」)가 풍기는 죽음의 그림자가 얼비친다. 특히 “바람이 불어도 흩어지지 않고 비가 와도 씻기지 않는 얼굴”(「어이하랴」)이라며 떠난 형님을 그리워하는 시편들은 유독 아프게 다가온다. 모든 것이 순환임을 받아들인 시인에게도 가까운 친지의 죽음은 통절하고 애틋하다. 그러나 시인은 결국 죽음조차도 삶의 한 과정으로 껴안는 넉넉함을 보여준다. 첫 시 「유서」에서는 “남의 몸을 먹으며 살았으니 육체나마 숲의 동물들에게 돌려줘야겠다”면서 죽음을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지는 순환으로 받아들이는 자연회귀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함박눈 내려 환해진 겨울에는 아들의 탄생과 아버지의 젊은 시절에 관한 추억을 되새겨보기도 한다. 마지막 시 「울음소리」에서 형님의 “사십구재 전날 밤” “어둠을 먹”는 조카딸의 통곡을 들으면서, 처절하게 슬퍼하는 마음이야말로 죽음을 밝히는 아득한 등불임을 상기시킨다.

충만한 봄의 기운이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시인 역시 “봄은 죽음의 또다른 얼굴”('시인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시인은 늦겨울 봄을 기다리는 꽃눈과 잎눈의 조바심을 관찰한다. 가장 서늘하고 낮은 땅에서 가장 환하고 높은 햇살을 살펴보고, 보도 공사에 다치게 될 수선화를 걱정한다. “드러나지 않게 피어나는 꽃”에서 “죽은 사람들의 얼굴”(「꽃향기 날리는 밤에」)을 발견하는 시인의 감각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산중 세계의 진경을 고스란히 전한다.

유승도의 시는 화려한 수사나 난해한 은유 대신 직설적이고 일상적인 문장으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든다. 고형렬 시인은 발문에서 이번 시집을 “절묘한 구성을 얻은 한편의 삶”이라 평하며, “문명의 반대편에 서 있는 수많은 우울과 자책의 저녁을 보낸 자의 아침 노래”라 이른다. 시인이 결국 도달하는 지점은 '비움'과 '순응'의 상태이다. 시인은 “자신이 산산이 깨어지는 소리”(「파도는 바위를 치며 묻는다」)를 들으며 자아를 성찰하면서, '인간 중심'에서 '자연 중심'의 새로운 길을 열어 보인다. 세속의 화려한 중심보다는 '별 볼 일 없는' 풍경 속으로 잦아들며, 비워냄으로써 비로소 풍요로워지는 무위의 미학을 성취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역설적으로 평정심과 평안함을 불러일으킨다. 끝없는 자연 앞에서 삶으로부터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으로부터 생명의 빛을 틔워내는 시인의 발걸음이 우뚝하고, “시라는 겉옷을 입고”(「무거운 옷을 입고 산다」) “가만히 가만히 살자”(「가벼운 고독」)고 읊조리듯 다짐하는 마음이 사뭇 겸허하다.

시인의 말

‘유승각’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둘째 형님이 돌아가신 지도 오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올해도 예전과 다름없이, 봄기운이 돌자 생강나무와 산수유가 꽃을 피웠다. 뒤질세라 수선화와 제비꽃도 피었다. 벌과 나비를 부르며 자신도 꽃나무임을 알리던 회양목은 며칠 사이에 꽃을 떨구어낼 태세다. 꽃대를 올리고 노란 꽃을 피운 꽃다지가 ‘나도 있다’며 마당가를 쓰다듬는 바람 따라 일렁인다. 죽은 이들이 다시 일어선 모습이다.

봄은 죽음의 또다른 얼굴임을 생각한다.

2026년 4월
봄꽃의 향기가 오가는 산 중턱 오두막에서
유승도

추천평

유의 시는 문명의 반대편에 서 있는 수많은 우울과 자책의 저녁을 보낸 자의 아침 노래이다. 아침은 어둠을 통과한 사람에게 찾아온 빛과 해후한 언어이다. 이 노래가 망경대산에서 홀로 영원한 노래가 된들 외로울 까닭이 없다. 시인은 보상받지 않음으로써 보상받는 자이다.

이 시집은 절묘한 구성을 얻은 한편의 삶이다. 시인은 끝없는 자의식 속에서 자기를 부정하며 만물로부터 진 채무를 당당하게 갚아내며 자기를 정화해왔다. 시집을 다시 읽으면 역으로 첫번째 시 「유언」이 에필로그가 되고 형의 딸의 「울음소리」가 프롤로그가 된다. 이 시집에서는 대극의 양의兩(儀)를 아름답게, 그러면서 정신 나게 하는 하나의 단으로 묶은 예의 아침 이슬을 맞은 풀 냄새로 가득하다.

시인과 시가 한 몸이 된 그 산가山(家)를 상상할지라도 우리는 겨우 불가능과 한계 앞에서 결국 슬픔의 창고가 된다. “바라보는 맛도 나지 않는 그저 그런” “별 볼 일 없는 데만 가게 된다”고 하지만 그 뜻이 유의든 무위든 소요든 칩거든 모든 시는 못내 그물을 흔들고 가버리는 바람이 된다. 그 가버린 바람만을 우리는 또 기억할 것이다.

유는 “처마 밑” “새끼들의 울음소리” 아련한 그곳에서 “자신이 산산이 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가만히 가만히” 살아갈 것이다. - 고형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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