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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
반양장
유병록
창비 20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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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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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돌봄
여름 편지
선물
여름비
물사람
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
너의 일
낮잠
다시 마음이 되어
신혼
참외
너의 거실에서
올해의 뿌듯

제2부

우리 곁으로 슬픔이 착륙한다
너를 위한 노래는
거리의 기도
때로는
세상은 아름답고 인생은 찬란하다
내 곁은 아니지만
부부
배웅
누운 자
슬픔이 간다
환절기
속수무책
날마다 조금씩
비관과 낙관

제3부

여기까지 온 게 어디냐
옥천
처마의 슬하
어제의 비를 오늘 멈추게 할 거야
내 심장은 돌로 되었으니까
나에게 묻는다
밤의 혼잣말
아무도 없지만 아무도 없는 건 아니다
다정으로 버텨라
파도가 온다
수긍
근속
신입

제4부

당신의 자랑이 되지 못하고
모자
나의 고요
모가지 간수하려거든
어떤 사랑
멈칫
내 멱살을 잡고
죽은 듯 조용히 살게요
나의 농사
안부
파주
아는 사람



해설|김나영

시인의 말

저자 소개1

1982년 충북 옥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농사짓고 소 키우는 집에서 여러 동물과 어울려서 자랐다. 읍내로 이사해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고향과 소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경기도 일산에서 글을 쓰고 책 만드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동안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산문집 『안간힘』을 냈다. 내일의 한국작가상, 2014년 제21회 김준성문학상(21세기문학상,이수문학상), 2021년 제21회 노작문학상, 2021년 제23회 천상병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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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15일
판형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68g | 125*200*8mm
ISBN13
9788936425371

책 속으로

조막만 한 돌을 주워다가
잘 씻어서
햇볕 드는 곳에 두고
자주 쓰다듬었다

바라는 대로 될 거야
걱정하지 마
틈날 때마다 말해주었다
--- 「돌봄」 중에서

봄은 짧고
우리의 걸음이라면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여름이 오는 게 아니야
우리가 가는 거야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여름이 많으니까
여름으로 걷자
--- 「여름 편지」 중에서

마음이라는 게 내 안에 있고
그걸 꺼낼 수 있다면

무엇에 쓰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너에게 주어야겠다
마음먹었다
--- 「선물」 중에서

한집에 살고 한 침대에서 잔다고
같은 꿈을 꾸는 거 아니더라

손잡고 걸어간다고
같은 곳에 도착한다는 보장은 없더라

조금 닮았고
많이 달라서

나란히 앉아서 일하고 점심 먹는다고
저녁 풍경이 비슷하지는 않더라
--- 「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 중에서

대낮에
햇살 비껴드는 창가에 누우면

아무리 큰 일이라도
힘을 쓰지 못하는 법이어서
며칠 무거웠던 마음
차츰 대수롭지 않아지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여기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야
--- 「낮잠」 중에서

밖으로 나서면
마음은 다시 상처투성이가 되겠지만

마음아,
그것이 너의 운명이다

마음의 주인아,
그것이 너의 일생이다
--- 「다시 마음이 되어」 중에서

선물이 비록 슬픔이어도
네가 주면 받아야지
기념품처럼 오래 간직해야지
--- 「우리 곁으로 슬픔이 착륙한다」 중에서

빗속에서 혼자 떨고 있는

소년아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등을 어루만지면

소년은 일어서서
영원할 것 같은 빗속을
씩씩하게 걸어서

비를 멈추게 할 내가 되겠지
--- 「어제의 비를 오늘 멈추게 할 거야」 중에서

세상 따위야 어떻게 되어도 좋다
함부로 말하고 싶어질 때
다정으로 버텨라

남에게
더욱 나에게
다정으로 버텨라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

믿고 의지할 게
그 말뿐이어서

---「다정으로 버텨라」 중에서

출판사 리뷰

“다정으로 버텨라”
견뎌내는 우리 모두의 눈부신 아름다움


시인의 사랑은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을 향한 따듯한 ‘마음’과 지극한 ‘돌봄’에서 시작된다. 자신은 물론 곁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지키는 일에 몰두함으로써 시인은 삶의 의지를 북돋우며 마음을 다잡는다. 시인은 “도무지 힘이 나지 않거든/무엇이라도 돌보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듣고” 길가의 작은 돌멩이를 주워 와 볕 좋은 곳에 두고 보듬은 끝에 “사랑에 대하여 조막만큼 알게”(「돌봄」)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정성의 마음은 타인을 향한 다정함으로 확장되어 “우는 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눈물을 닦아”주고 “온통 젖도록 껴안아”(「물사람」)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고, “마음이라는 게 내 안에 있고/그걸 꺼낼 수 있다면” 기꺼이 “너에게 주어야겠다”(「선물」)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너’에게 건네는 마음이 “다시 상처투성이가 되겠지만” 시인은 “그것이 너의 운명”이고 “그것이 너의 일생”(「다시 마음이 되어」)이라며 사랑의 필연적인 아픔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시집의 표제이기도 한 ‘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라는 선언은 이처럼 세상과 다정하게 시선을 맞춘 상태로 서로의 ‘다름’과 ‘오해’를 인정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시인은 “한집에 살고 한 침대에서 잔다고/같은 꿈을 꾸는 거 아니더라”는 일상의 사소한 발견을 통해 우리가 겪게 되는 수많은 오해와 어긋남을 예민하게 포착하면서 마침내 “오해는 반복되고/그리하여 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라는 통찰에 도달한다.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소멸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넘어, 서로의 고통과 슬픔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종의 본질과도 같으며, 그 본질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그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아픔을 받아들이고 나누며 살아낼 수 있다는 굳센 믿음의 표현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지나온 삶의 흔적을 되새겨보는 성찰의 시간 속에서도 슬픔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긍정의 태도를 보여준다. “선물이 비록 슬픔이어도/네가 주면 받아야지” 다짐하면서 슬픔을 “기념품처럼 오래 간직”(「우리 곁으로 슬픔이 착륙한다」)하는 법을 제시한다. 자신의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다 “내 뺨을 때리는 것은/내 손”(「여기까지 온 게 어디냐」)이었음을 발견하고 고통의 근원이 자기 안에 있었음을 자각하기도 한다. “견디어라 견디어라” 되뇌며, 또 “견디는 나를 오래 견디면서”(「나에게 묻는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누가 나를 도우러 오리라 기대하지 말아야지”(「밤의 혼잣말」) 다짐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감당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절망과 체념이 극한에 다다른 지점에서 오히려 “나는 삶을 사랑하기로 했어요”라고 말한다. 삶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삶은/너무나 보잘것없”고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아무것도 아니”(「어떤 사랑」)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남에게/더욱 나에게/다정으로 버텨라”(「다정으로 버텨라」) 북돋우는 주문은 중요한 메시지로 읽힌다. 여기에서 ‘다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특별할 것 없는 “세상 한 귀퉁이 아름답게 하자는 마음”이기에, 그럼에도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때로는」)의 실천이기에 그렇다.

오늘을 내일로 인도하는 따뜻한 주문

비관이 온 마음을 뒤덮는 궂은 날에도 시인은 기어이 “살 만한 날씨”(「비관과 낙관」)를 찾아 낙관의 자리를 마련해둔다. “결혼식에 가서 박수를 치고/장례식장에서 몇 마디 위로”(「올해의 뿌듯」)를 건네는 일상의 소소한 행위들이 모여 슬픔을 이겨내는 다정함이 된다고 믿는다. 살아오며 “무성해진 것은/슬픔과/안간힘”(「신혼」)뿐이지만 시인은 그 슬픔을 견디며 “나는 나의 자랑이 되어야겠습니다”(「당신의 자랑이 되지 못하고」) 다짐하고, 마침내 “오늘을 건너서 내일로”(「밤의 혼잣말」)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 걸음이야말로 우리가 끝내 멸종하지 않는 생명력의 증거일 것이다. 어쩌지 못하는 ‘나’를 끌어안고 ‘나’로서 살아가는 일 자체가 곧 존재의 의미임을 생각하게 하는 이 시집은 어긋날지라도 끝내 손 놓지 않고 함께 걸어가는 우리 모두를 지탱하는 든든한 마음의 버팀목이 될 것이다.
어쩌면 시인이란 곳곳에 숨어 사랑을 안내하는 사람 아닐까. ‘이렇게 사랑을 해보세요, 이렇게도 깊어져보세요’ 손짓하는 사람, 유병록 시인은 『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에서 또 한번 가없이 펼쳐지는 사랑의 전개를 보여준다.

시인은 우리의 ‘다름’과 ‘오해’가 우리의 존속 조건이 된다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유병록이 얼마나 또 어떻게 이 세계를 사랑하고 있는지, 시인의 사랑을 증명하는 배경이 된다. 만질 수 없으나 사라지지 않는 향기, “달콤한 참외 향”(「참외」)으로 전환된 사랑의 존재는 결코 멀어지지 않는 사랑의 메타포가 된다. ‘망가짐’은 끝이라는 단순한 오해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유병록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랑의 방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향으로 존재와 부재를 뒤섞으며 슬픔마저 사랑으로 뒤덮는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사랑의 전개와 사랑의 도약, 오직 사랑만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이야기.

시집의 끝을 넘길 땐 잠깐, 혼잣말했다. 유병록에게, 그리고 시를 사랑하는 우리에게 언제까지나 시를 허락해달라고. “사랑의 끝에는 기도가 있었다”(「끝」)라고 알려준 시인에게 제일 먼저 되돌려주고 싶었다. 이 봄, 혼몽하리만치 보드랍고 단 사랑이 우리를 찾아왔다고. 창을 열고 손짓하는 마음으로.

최지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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