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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수목 거기에서 만나 시드볼트 겨울영원 야광 인간과 손 맞잡고 걷기 거짓나무소리 홰와 나무 진입금지 Farewell 버려진 이름전(展) 최신세 두꺼운 책 이곳은 영원히 자란다 이전의 목록 거북이는 도착한다 wave 물길 폭풍우 제2부 불꽃놀이 구멍 올나이트 스탠드 쇼 공원의 모양 굿것 종점과 건축가와 언덕 우리가 잠깐 죽었을 때 돌 수집가가 문을 두드렸고 오리는 혼자서 잘 자랐다 공원으로의 복원 옥수수를 가진 사람 김치 스마일 똠얌꿍 녹나무 아래 혀 내밀고 있는 것은 예언이 될 때까지 밤 없이도 거짓말을 해 빈 병 줍기 제3부 미로에 초대되었습니다 발명 뮤지컬 스타 호문조 밤의 물속 낮의 물속 영웅이 된 이후에 비실재 들개의 자라지 않는 친구들 크리소카디움 추락을 위한 안내서 우리에게 있는 빈방 점점 빠르게 쓰는 돌 아래 놓인 벌거벗지 않은 사랑 찾기 낙과 햇빛 걷어내기 이후의 세계에서 해설|김영임 시인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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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 극장에서 만나. 이 말은 정해진 미래가 된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였으므로. 나는 언제나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극장을 향해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한다. (…) 여전히 극은 상설 중이다. 매일 조명이 꺼지고 조명이 켜지고 대사가 울리고 대사가 울리지 않고 관객이 있고 관객이 없다. 우리의 취향이 찢어진 청바지에서 멈추었다는 이유로 더이상의 미래가 없다고 말할 거니? 우리는 자주 연극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극장 로비에서 걸어 나오곤 했다. 우리는 사실 연극을 본 적 없다. 우리의 삶이 연극 같지 않았으므로. 상설 극장에서 만나. 끝나지 않는 연극 속에. 거리에. 벽과 벽 사이에. 타오르는 골목에.
--- 「거기에서 만나」 중에서 전쟁과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언제가 가장 끔찍할 거 같아 라는 노르웨이에 가고 싶대 거기에 자신을 묻을 거라고 했어 나는 Green Day의 「Holiday」를 들으면서 반역자! 반역자! 죽어버린 사람들의 피가 흘렀어 아 곧 종말이구나 그래서 라는 노르웨이에 가고 싶구나 두개의 음 두개의 박자 머리 위로 떨어지는 십오층의 사람과 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차 사람의 바싹 마른 피부와 솟구칠 힘도 없는 피 물 물 물 전쟁이 끝나지 않은 곳에 다 녹아버린 얼음의 흔적과 끈적한 더위가 있어 (…) 추워, 라는 시드볼트로 들어가 문을 닫았어 이건 한세기 전 살아 있던 사람의 눈알이구나 계속 걸었어 뚝 뚝 흘리면서 걸었어 끊어진 다리 뒤집힌 배 치지 않는 파도 하늘에서 떨어진 새 검은 새 검은 눈동자 뽑힌 눈알 굴러가는 심장 굴러떨어지는 법을 배운 나 깔깔 웃는다 --- 「시드볼트」 중에서 밤눈이 환한 인간들에게서 나는 배우고 싶은 것이 있었지 비틀거리지 않는 방향감각을 가지기 위해 무엇을 갖춰야 하냐고 야광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 해줄까 불이 꺼지고 시야가 순식간에 닫혔을 때 시작되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야 (…) 모두 본 적 없다 말해도 나는 보았지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빛의 춤 속에서 처음부터 비틀거리지 않는 방향감각 같은 건 없는 것이었는데 있는 힘껏 비틀거리다 잠들어도 되는 것이었는데 이제 나에게 야광 인간은 보이지 않지만 알고 있지 눈부시게 환해질 때 앞이 흐려지면 잠시 그들이 다녀간다는 사실을 --- 「야광 인간과 손 맞잡고 걷기」 중에서 바다에 빠진 잠수부를 구하기 위해 잠수부가 바다에 뛰어들었다 누가 먼저 바닥과 가까워졌는지 알아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첨벙 다음은 파도 더 거세졌을까 돌멩이 하나가 먼발치에서 무거웠다 --- 「wave」 중에서 지옥에는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벌이 있었지 관객 앞에서 몇십시간이고 말을 해도 아무도 웃지 않는 무대였어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야 했네 이게 원래 살던 삶과 무엇이 다르냔 말이야 더이상 웃긴 이야기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고 난 말했지 당신들은 모두 죽은 모기와 죽은 나방이오 이곳에서 나의 재미없는 스탠딩 코미디를 듣는 것이 당신들의 벌이오 그때 그들은 처음으로 웃었지 (…) 저 멀리 들려오는 재즈 소리에 떠날 때가 되었다는 걸 안다 죽기 전 묵은똥을 다 싸고 간다 부질없는 것에 천착했던 아주 검은 것들을 떠날 곳에 대한 생각을 멈출 길이 없다면 시시한 스탠딩 코미디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시길 갈 때가 되어서야 피식 웃게 될지도 모를 일 그런 웃음으로 난 죄를 씻고 마지막으로 힘껏 일어나 --- 「올나이트 스탠드 쇼」 중에서 대체 겨울은 언제 와? 지난해에는 가을이 길어졌으면 좋겠다고 해서 시월을 늘이고 늘이다가 영영 겨울이 멀어져버렸어 끝나지 않는 가을 속에서 낙엽에게 뺨을 맞으면 은행이 떨어지는 내내 기분이 울적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성대를 갈아 끼우기 심장도 그렇게 할 수 있고 쓸개도 가능하지 모두 사이보그가 되자 사람도 지구도 새로운 부품을 하나씩 껴안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 귤꽃은 희다 마음은 얼룩덜룩하다 사라진 목소리를 간절히 기다렸다 크고 튼튼한 새것을 몸에 지닌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헌것들 어떤 마음은 장식품이 되고 어떤 마음은 재활용되는 중 곧 겨울이 될 거야 흰 입김을 내뱉는 사람으로 남아서 아직 끝나지 않은 드라마의 결말을 멋대로 지어내보자 매번 똑같이 재생되는 영상을 거꾸로 틀어보기도 하자 --- 「빈 병 줍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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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하나의 생의 여러갈래”
가라앉더라도 다시 뛰어드는, 연대의 역설적 희망 시집은 엄습하는 재난의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풍경으로 거침없이 돌입한다. “전쟁과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언제가 가장 끔찍할 거 같아”(「시드볼트」)라는 질문은 파국 이후의 세계까지 바라보는 시인의 예민한 감각과 날카로운 예지력을 보여준다. 이때 시인이 그려내는 파국의 장면은 단순한 허구적 상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와 맞닿아 있으며, 요동치는 사회와 개인의 불안한 내면을 동시에 비춘다. 그러나 암울한 세계는 절망에 갇혀 있지 않다. “악몽 또한 꿈이어서 좋다”(「이후의 세계에서」)라거나 “굴러떨어지는 법을 배운 나 깔깔 웃는다”(「시드볼트」)와 같은 담대한 발언을 통해 절망은 오히려 웃음과 유머로 전환된다. 이는 “유토피아적 기다림이나 구원의 약속”(해설)에 기대지 않고, ‘지금-여기’의 불안과 혼돈을 끝내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가려는 다짐이자 용기이다. 죽음 이후의 장면들은 독특하게 변주된다. “바다에 빠진 잠수부를 구하기 위해/잠수부가 바다에 뛰어들었다”(「wave」)라는 아이러니한 장면은 자기 자신조차 구할 수 없는 세계의 모순을 적실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시인은 그 속에서 언어와 의지의 지속을 발견하며, 종말을 목전에 두고도 삶에 대한 애착과 연민을 놓지 않는다. “첨벙 다음은 파도/더 거세졌을까”(「wave」)라는 질문은 절멸의 순간에도 언어로 세계를 붙잡으려는 시적 몸부림을 보여준다. 세상의 무너짐을 그리면서도 끝내 언어를 포기하지 않는 시인의 태도는 종말을 두려움의 상징이 아니라 견뎌야 할 현실로 받아들이는 담담한 인식과 맞닿아 있다. 한편 시집 속 세계는 일상과 비일상이 끊임없이 겹쳐지는 낯선 장면과 이미지로 가득하다. “떨이로 나온 오이를 사서/씻고 깎아 소금에 재워두는” 일상의 공간은 “홰 위에서 아이가 울고/오이 냄새가 밴 손을 내밀어도/여전히 홰 위에 서 있는”(「홰와 나무」) 기묘한 풍경으로 변하고, “길게 늘어진 불행”의 “잿더미 위에서 밥을 먹는”(「거기에서 만나」) 그로테스크한 공간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처럼 시인은 일상을 위태롭고 불안정한 상상의 공간으로 뒤틀며 긴장과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귀신, 야광 인간, 신화 속의 새 호문조 같은 비인간적 존재들을 호출하면서 현실이 얼마나 쉽게 뒤집힐 수 있는지 보여주기도 하는데, 일상의 익숙한 풍경이 비현실적 장면으로 바뀌는 묘하고 낯선 순간 우리는 시대와 내면에 깔린 불안의 본질에 한층 가까워진다. “이 말은 정해진 미래가 된다” 재난의 시대를 체화한 ‘지금-여기’의 사유 오산하의 시는 종말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면서도,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드러낸다. “없음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벌거벗지 않은 사랑 찾기」)는 삶에 대한 끈질긴 애착을 보여주며, “맞잡고 걷자/사라지지 않을 불빛을 찾아 걷자” “서로를 바깥으로 꺼내면서 걷자”(「수목」)라는 구절에는 따뜻한 연대의 마음이 배어 있다. 나아가 “여기 망가지고 짓이겨진 기쁜 우리가 있다”(「빈 병 줍기」)라는 선언은 끝내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단호한 의지를 전한다. 무너져가는 세계 속에서 절망을 웃음으로 바꾸고, 언어로 버티며, 연대를 모색하는 오산하의 시는 ‘지금-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가히 신선한 충격과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인류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지 묻는 엄중한 시대적 물음 앞에서 서성이는 모든 이에게, 자기만의 목소리를 확고히 보여준 오산하 시인의 첫 시집을 자신있게 권한다. 시인의 말 쑥대밭 진창 뒤죽박죽의 세상에서 초를 켠다 영혼은 뼈와 살이란 등피를 입고 더 밝게 빛난다 그러니 말이야 우리는 오래 살아서 더러워질 것이다 꿈틀거리며 와락 뒤집어버릴 것이다 초가 녹으면 새로운 초를 만들기 망가지고 짓이겨져도 기쁘게, 기쁘게 2025년 여름 오산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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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하의 등단작 「시드볼트」라는 근사하고 단단한 종말의 노래를 기억하는 이라면 그 이후 시인의 감지력이 어떻게 상승했는지 이 시집에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시집에는 조난, 공해, 기후위기, 폭풍우, 산불, 싱크홀 사고, 교통사고, 투신자살과 같은 사회적 현상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시인은 그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해 애써 고심하는 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몽 또한 꿈이어서 좋다”고 태연하게 발설한다.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세계의 모순을 파헤치려고 팔을 걷어붙이던 세대와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MZ세대 시인의 출현이라고 해야 할까.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어떻게 “죽은 이의 등에 업혀 울” 생각을 하며, 어떻게 “죽은 자의 차 보닛 위에서 잠들었다 깨어났다”는 상상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하루 동안 잠깐 죽는 체험을 했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가. 삶을 지배하는 죽음을 자각하는 동시에 죽음에서 이어진 삶을 찾아내는 각별한 눈이 있기에 “여기 망가지고 짓이겨진 기쁜 우리가 있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이 서로 떼어져 있는 게 아니라 엮여 있다는 인식은 오래된 것이지만 그 관계망을 포착하는 오산하의 언어는 새콤할 정도로 새롭다. 그것은 언어의 세공술이 만들어낸 결과다. 언어의 세부를 만지면서 상상력이 활력을 찾고 사소한 반복에서 묘한 리듬이 발생한다. 시인은 사람을 가만히 앉혀두지 않고 무한히 걷게 만드는데, 그 걸음을 따라가다보면 또 “없음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같은 리듬이 생성된다. 그러니 우리 모두 그냥 “서로를 바깥으로 꺼내면서 걷자”, 그냥. -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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