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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없이 빛난 아침
최현우
창비 20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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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 통증 없이도 이토록 멍들 수 있는가

영원한 햇빛
손과 구름
서른
지금이에요
민들레가 떠돌고
적운을 두고
충돌 지점
나의 실패
백혈구가 필요합니다
유년
나의 차례
어쿠스틱
악마적으로
무사
지나가고
마지막 빙하

제2부 - 몰래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목숨을 돌려주고 올게


외면하는 기쁨
별과 오목
주인공
버스
분장술
파반느
습관
미로
거울 열상
밥이 잘못한 적 있습니까
디어 마이 프렌드
그들의 신
가느다란 순간
펫 숍
사육

제3부 - 이 반복은 찻물이 마르고 나면 멈추겠지만


체리를 씻는 저녁
하나가 아닌 발자국
올드타운
결혼
낮잠 속의 씨앗
다식
너의 날개
숲과 숨
때가 묻는다는 것
오전 미사
파수
12월 30일
하얀 후회
벚꽃잎 흩날리면
이제 이 방을 나가자
너는 언제 파도를 키웠지

해설|성현아
시인의 말

저자 소개 1

1989년 겨울에 태어났다.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당선하며 등단했다. 시집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산문집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등을 지었다. 시를 쓰는 밤, 기지개를 켤 때면 냉큼 달려와 무릎으로 뛰어오르는 코코와 함께 살았다. 여전히 한밤중에 글을 쓰고 아침에 잠드는 야간생활자이며, 무언가 생각할 때 입술을 뜯는 버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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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66g | 125*200*10mm
ISBN13
9788936425173

책 속으로

그런 일이다
책장과 벽 사이에 끼어 있던
쓰다 만 공책을 발견하는 일
이곳에 살다가 저곳으로 옮겨본 적 있다는 것

보이지 않는 곳
볼 수 없는 곳
그늘의 인대가 끊어진다

(…)

사각형 햇빛 한칸만 그 자리에 있다

중단할 수 없는 이 빛
자꾸만 대신하여 맨 위에 포개지는
끔찍해서 아름다웠던

햇빛
--- 「영원한 햇빛」 중에서

한번쯤 찾아오겠다던 사람이 온다던 여름에
사람은 안 오고
오지 말라는 일들만 다시 일어났습니다
서글픈 이야기는 아니고요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적은 언제인가요?”
살지 않아도 될 때요

그렇게는 대답 못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척하다가
그런 삶은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좋지 않았던 건 아니고요

무엇이든 더이상 반복할 수 없다고 확신했을 때
오월 햇빛 어디 안 간다는 사람 생겼습니다
그늘처럼 결혼했고요

(…)

온다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고 일어난 일입니다
--- 「지금이에요」 중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고작 그런 영원이란
생명을 초월할 순 없겠지만
평범하게 아득한 일입니다

(…)

사라지십시오
그러면 아름답습니다

매일 살고 다시 슬픈 우리는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것입니다
--- 「주인공」 중에서

가는 애들 밥 한끼는 먹여야 할 것 아니냐며 골목에 밥상을 놓다가 울어버린 사람과 그 밥상 위에서 가파른 골목보다 더 가파르게 기울어져 쏟아질 것만 같은 사발 속의 국물을 본 적 있습니까. 세상은 그토록 평평한 밥상입니까. 그래서 그보다 먼저 쏟아지고 아직도 쏟아지는 사람 같은 건 쏟아진 적 없다는 듯 보이지 않도록 하루빨리 닦아버렸습니까.

밥을 끊는 결심이란
생명이 생명이 아니라는 말이므로.

대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숟가락 대신 손가락을 들이대며
우리는 왜 작은 영혼으로 거대하게 배부릅니까.
--- 「밥이 잘못한 적 있습니까」 중에서

봄이 여름을 열도록 두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겨울을 알도록 가을은 가을의 일을 하게 두었다

사람이 살게 하려고
사람을 두었다

너를 위해 만든 세상은
너를 덮고
치우기 위해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무어라 불러야 할까

한번도 소원한 적 없었는데
온통 어두워진 너를
--- 「디어 마이 프렌드」 중에서

슬픔은 뛰지 않는 사람에게 오고
죽음은 뛸 수 없는 사람에게 온다

그렇다고
슬픔과 죽음을 주걱으로 휘저으며 만드는 혼합물을
미래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아

(…)

어쨌든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하기
네게도 주겠다고 말하기
그러면서 시간당 얼마라고 말하기
계급은 없다고 말하면서
가리키지 않고 가르치기
귀를 자르면서 듣고 있다고 말하기
착각도 취향이라고 말하기

잘은 모르겠다
신이라면 시를 쓰지는 않겠지
적어도 슬픔과 죽음은 없겠지
--- 「그들의 신」 중에서

오후 두시의 티테이블
얇게 잘린 볕이 컵에 매달린 물방울을 핥고 있을 때
네가 잠시 목을 축인 거라고 알고 있을게

쓸쓸해서 못 견딘 바람이
바다를 밀어 발을 적실 때
그곳이 네가 자던 해변이라고 알고 있을게

(…)

너무 많은 말을 했는데
하고 싶은 말은 한 적이 없다

이 말을 끝내지 않으려고
다른 곳에 마침표

--- 「너는 언제 파도를 키웠지」 중에서

출판사 리뷰

“매일 살고 다시 슬픈 우리는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것입니다”

“고통과 상처를 감지하는 예리한 촉수”(안미옥, 추천사)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곳까지 들여다보며 “통증 없이도 이토록 멍들 수 있는”(「충돌 지점」) 불완전한 세계의 아픔을 직시한다. 그러나 고통받는 이들의 “통곡은 몸에서 멀고”(「나의 실패」), 타자의 고통을 지각할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의 상처를 온전히 위로하고 치유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히 안다. “사랑할 수 있는 일들만 사랑하고/용서할 수 있는 일들만 용서”(「숲과 숨」)하는 것에 익숙해진 영혼은 “부드러운 증오”(「외면하는 기쁨」)만을 드러내며 비참한 삶의 비애를 견디어낼 뿐이다.

깊은 미로 속을 헤매는 듯, 전망도 구원도 없는 세상은 참으로 비정하다. “매연으로 부풀어”(「나의 실패」)오르는 거리에 “하루에도 몇번씩/떠밀려와 눕지도 못한 채로 썩는 자들”이 널려 있어도 “모두가 신이 난 것처럼”(「가느다란 순간」) 병든 세계는 건재하다. “현생과 전생까지 순식간에 끌려 들어와/박살이 나는 찰나”(「충돌 지점」)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세상은 순서도 도리도 없이”(「다식」) 무심히 흘러간다. 비극을 목격하고도 섣불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과 무력감 앞에서 시인은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고통을 기록하고, 이를 외면하며 살아온 날들을 치열하게 뉘우친다. 결국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슬픔이 남긴 것은 “울음이 묻을까 피해 다닌 날들”(「벚꽃잎 흩날리면」)에 대한 반성이다. 타인의 아픔에 가벼운 위로의 말을 건네며 적당히 공감하는 것에 익숙한 세상에서, “그냥, 네가 울면 나도 울게”(「너의 날개」) 된다는 시인의 고백은 우리가 주고받았던 애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계절의 속력을 스스럼없이 좋아하던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영원이 될 찬란한 마음들에게


시인은 ‘혼자’라는 말의 쓸쓸함과 두려움을 알기에 “멍든 것처럼/어깨를 두드리면 자꾸만 우는 사람들”(「12월 30일」)을 외면하지 않고, “서럽고 저린 것들”(「너의 날개」)을 “혼자로 두지 않으려”(「충돌 지점」) 한다. 그들에게 다가가 가만히 곁에 있어주고, 고단한 삶의 그늘 속에서 반짝이며 “자꾸만 대신하여 맨 위에 포개지는”(「영원한 햇빛」) 영원의 빛을 발견한다. 그리고 “미래의 아름다움”(「나의 실패」)을 믿으며 어쩌면 들리지 않고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노래를 계속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슬픔이 외골격인 사람”(「유년」)이 되지 않으려고, “매일 살고 다시 슬픈 우리”(「주인공」)의 삶을 “오래 사랑하려고”(「손과 구름」). 시인은 더 나은 위로를 완성하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 또 고르며 영원한 “햇빛의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거기, “너를 위해 만든 세상”에 “사람이 살게 하려고/사람을 두었다”(「디어 마이 프렌드」)는 진실한 고백이 빛나는 아침을 준비해두고 우리를 기다린다.

시인의 말


들꽃을 주워 화병에 담아 기른 적 있다.
밟혀서 짓무른 줄기가 곧잘 살아나기도 했는데

너는 왜 없는 것들만 적어두냐고 묻는다.

그래도 오늘 아침,
한번만 더 물을 주면 안 될까요?
다시 피고
좀더 살지 모르잖아요.

빈 병을 품에 안고 차례를 기다린다.

멀리 누군가 햇볕을 끼얹으며 까르르 놀다가
말없이 옆에 와서 같이 늙어준다.

2025년 봄
최현우

추천평

어떤 시는 읽어야 할 특별한 이유를 말하기보다 그저 읽어보라고 말하게 된다. 『우리 없이 빛난 아침』은 그런 시집이다. 자기도 “혼자이면서” 그리하여 혼자의 두려움과 고달픔을 알기에, 누군가를 혼자 두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 곳곳에 담겨 있다. 시의 화자들은 내가 겪은 슬픔과 고통을 방관하지 않고 함께 분노하고 아파하는 친구 같다.

최현우의 시는 깨지고 부서진 것을 보는 눈을 가졌다. 날카롭게 다친 빛을 만지는 손을 가졌다. 고통과 상처를 감지하는 예리한 촉수가 있어서 세상의 폭력을 쉽게 납득하지 않는다. 그 눈과 손은 “통증 없이도 이토록 멍들 수” 있는 세계에서,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려 한다. 자기 내면에서 비롯된 무수한 찔림을 외면하지 않고 품고 있는 만큼,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 세상에게 받는 고통도 외면하지 않는다. 세상의 울음은 기꺼이 자기 안으로 들이고, 나의 울음은 번질까봐 꾹꾹 참아낸다. 디디는 곳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세상에서 “슬픔이 외골격인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마음에 섣부르게 마침표를 찍지 않으려고 곁을 살피는 마음의 파수꾼이다. “매일 살고 다시 슬픈 우리”를, 우리의 삶을, “오래 사랑하려고”. - 안미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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